[8월의 말]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혹성 ‘이인성’에 불시착하다 | 서정학 |

[8월의 말]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혹성 ‘이인성’에 불시착하다 | 서정학 |

seojunghak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나는 참 할 말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뭐,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 같은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또, 이런 의지가 없이 글을 써도 될까. 역시, 뭐, 안될게 뭐 있겠어요라고 얼버무린다. 가끔 좌절감이 들긴 한다. 유유자적한(그런 느낌으로) 잘난 듯이 앉아 발이나 건들거리고 있는 느낌(그런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는 느낌). 하지만, 또 나와 같은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이 없지 않다는 것도 이젠 안다. 다들 전속력으로 진지하지는 않다.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 없진 않지만 모든 사람이 진지하지는 않다. 왜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 켠에 걸어두려고 하는가. 이 욕망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릴 때는 단순하게 ‘허영’ 정도로 생각했다. 이를 테면 동네에서 밥 가장 빨리 먹기 챔피언이 되는 것 같은 거다. 남들과 다른 한 가지. 스스로 자부심 가지는 ‘개성’. 여기서 포인트는 다름, 개성이 아니라 ‘스스로’다. 그래서 ‘허영’이란 단어가 나왔나보다. 지금까지 잘 유지되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룰, 즉, ‘문학’이란 장르에 살짝 올라타서 스스로 자부심 갖는 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이야기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멋지고픈 욕심. 하지만 가끔 부끄럽기도 하고, 열린 광장은 무섭고, 그렇지만 또, 뭔가 해 보고 싶기도 하고. 매일 꺼졌다가 켜졌다가 반복되며 그 즐거움의 크기를 잰다.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글 쓰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그런 게 있다면)을 발견(착각)하게 되기도 하고, 그리고 또 돌아서면 이게 무슨 짓이람, 우울해진다. 나는 대체로, 알기 쉽다. 알기 쉽고 쉽게 이야기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아쉽다. 어려운 이야기, 권위 있는 어려운 이야기에는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쉬운 이야기를 어려운 방식으로 써도 집중이 된다. 여기서 집중이란(형식이란) 권위(가치)다. 어려운 뭔가를 마스터 한 달인의 느낌. 하지만 쉬운 이야기를 쉽게 쓰면 그냥 그렇다. 이게 장르, 혹은 룰의 묘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계란프라이를 하는 건 그저 그런 일이다. 에피타이저로 에크르티망 드 파리를 내 놓게 된다면 꽤 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무리로 샹가르동(역시, 흡판상어 지느러미를 다진)을 완벽하게 해내면 좀, 특별한 일이 된다. 뭐라도 하자. 뭐라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켠에 걸어두자. 계란후라이(프라이라고 안 쓴다)면 어때, 라고도 그냥 생각해 본다. 키보드를 만지작거려도 사실, 아무 생각이 안 든다. 할말이 없어도, 아무 생각이 없어도 꽤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레시피는 다 알려져 있고 그냥 그대로 하면 요리는 된다. 생각보다 꽤 잘 할 수 있다. 익숙한 맛의 요리(어느 순간부터 그냥 글 쓰는 일을 요리하는 일로 적당히 대치하고 있다)에는 깊이가 분명, 있을테지만 둥글레찻잎의 새순으로 찜을 쪄 하와이안 스윗 소스에 절여 놓은 걸 뭐라 할텐가. 생각해보면 요리가 포인트가 아니다. 열린 광장,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 대충, ‘관객’이다. 글(시) 쓰는데 가장 좋은 관객은 자신이다. 싹! 한 단어만 써 놔도 그날, 책을 읽다 마음에 들지 않는 페이지를 잘라내려다 실수로 손가락 끝을 베어냈을 때의 아픔과 당혹감과 챙피함이 되살아난다. 시란 게 그런 거였나를 떠나서 짧고 간단하다. 시란 게 그런 거였나, 라고 해봐야 별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기에 ‘나는 그렇다’라고 우기면 된다. 우기는 대상은 타자. 관객이라고 앞엔 써놨지만 독자가 맞는 용어일테다. 일기 바깥에 있는 사람들. 딴사람들이다. 그래,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다보면 가끔 엉뚱한 곳에 불시착한다. 대부분은 목적지를 향해 나가지만 할 말이 별로 없을 때면, 목적지도 없이 헤메며(요리에서 슬쩍 바뀐 듯), 아, 너무 멋을 부리고 있다. 할 말도 없고 별 생각도 없지만 글은 써진다. 레시피대로만 따르면. 그냥, 이건 내 방식의 레시피면서 ‘개성’있는 몇 열린 광장에선 통한다. 일명, 업자들의 그 주방 말이다. 하지만, 많이 읽히려면 역시, 다들 아는 ‘그것’을 ‘잘’’깊이’’세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을, 아는 방식으로 알아듣게! 아님 포장을 좀 더 알록달록 하게 하던지. 아님 좀 싸게, 가격으로 승부하던지. 몇 개 더 껴 주던지. 요리사가 잘생겼든지. 결론: 불시착하기 전에 마케팅을 하자!

 
4컷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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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99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하여, 시집 『모험의 왕과 코코넛의 귀족들』과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