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말] 타이밍 | 이갑수 |

[7월의 말] 타이밍 | 이갑수 |

leegapsu   여자 친구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코엑스에 간다. 영화를 보기도 하고, 전시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여자 친구는 아쿠아리움을 좋아한다. 그녀 덕분에 아쿠아리움에 열네 번이나 갔다. 여자친구는 바다거북을 좋아한다. 나는 흰 수염고래를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아쿠아리움에는 흰 수염고래가 없다. 나는 해양생물을 보는 게 싫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긴장감이 없다. 수족관 안은 무균실처럼 철저하게 괸리되는 안전한 세계다.
   코엑스에 가면 나는 반드시 게임센터에 들른다.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있다. 모든 게임을 지배하는 단일한 원리는 생존이다. 어떤 게임이든 게이머는 살아남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실수하거나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죽는다. 끝까지 살아남으면 엔딩을 볼 수 있다. 나는 어떤 게임이든 엔딩을 볼 때까지 한다.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센터에는 내게 유리한 규칙이 한 가지 있다. 이어하기다. 돈만 넣으면 캐릭터는 계속해서 부활한다. 어려운 게임이라도 3만 원이면 엔딩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돈을 쓴 게임은 <스트라이커즈 STRIKERS 1945>라는 슈팅게임이다. 11만 8천5백 원을 썼다.
    나는 게임센터 안에 있는 모든 게임을 엔딩까지 클리어했다. 한 번 클리어한 게임은 다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계속 게임센터에 가는 이유는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기고 싶은 상대는 조금 특별하다.
    그녀는 <철권5>의 전설적인 챔피언이다. 그녀도 나처럼 일주일에 한 번 게임 센터에 온다. 100승을 하고 돌아간다. 아니, 100연승을 하고 돌아간다. 8개월 동안 그녀가 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녀를 이기는 것을 게임센터의 최종 미션으로 정했다. 게임센터에는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나는 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집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야채를 판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더 깨끗해.
    여자 친구는 그녀가 파는 야채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젊은 아가씨가 보는 눈이 있네.
    그녀는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날 나는 그녀가 파는 야채를 전부 샀다. 그녀의 야채는 맛있었다. 정말로 그랬다. 그 후로 나는 종종 그녀가 파는 고추와 파, 상추 같은 것을 사 먹는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그녀와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여든 둘.
    그녀는 내가 파 한 단을 사면 고춧잎을 덤으로 준다.
    그녀는 나를 글 쓰는 총각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녀를 야채 할머니라고 부른다.
    야채 할머니는 전라남도 어딘가에서 평생을 농사만 지으면서 살았는데, 몇 년 전에 아들의 빚 때문에 땅을 팔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요즘은 남한산성 아래에 있는 텃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완전히 유기농이야.
    야채 할머니는 좌판에 놓인 야채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야채는 마트에서 파는 것과 비교하면 크기가 작았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았다.
   —유기농이랑 무균실의 차이가 뭐에요?
    내가 물었다.
    —무균실이 뭔데?
    야채 할머니가 되물었다.
    —세균이 하나도 없는 방이요.
    —적당히 벌레도 먹고 그래야 더 건강하게 잘 자라.

    게임센터에서 야채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는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게임센터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야채 할머니는 <철권5>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자 옆에는 팔다 남은 야채가 놓여 있었다. 게임센터의 강한 조명 탓에 야채가 시들시들해 보였다. 버짐이 핀 손으로 조이스틱을 잡고 있는 모습은 조금 기이했다.
    야채 할머니는 게임센터에서 이미 유명인이었다. 게임센터 직원들은 야채 할머니가 오는 날에는 <철권5>를 비워 놓고, 키에 맞는 의자를 따로 준비해 둔다.
   나는 줄을 서서 야채 할머니와 대전을 한다. 한 사람당 세 번밖에 기회가 없다. 누가 그런 규칙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문율처럼 다들 그렇게 한다. 도전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철권5>의 고수들이 몰려든다. 야채 할머니는 언제나 손쉽게 이긴다.
    할머니의 승리패턴은 아주 간단하다. 우선 상대의 공격을 피한다. 그리고 발차기나 어퍼컷으로 상대를 공중으로 띄운다. 공중에 뜨면 그걸로 승부는 끝이다. 콤보 공격으로 마무리된다.
    도전자들은 필승패턴에 걸리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시도한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가드를 굳히고 앉아서 발차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큰 효과는 없다. 할머니는 가드를 굳히면 잡아서 던져 버리고, 하단 차기는 공중 공격으로 무력화시킨다.
    나는 야채 할머니와의 대전에서 유일하게 K.O.패를 당하지 않는 도전자다. 나는 회피와 막기를 반복하면서 버틴다. 물론 결과는 같다. <철권5>의 캐릭터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도 HP가 조금씩 떨어진다. 나는 늘 판정승으로 패배한다.
    하루는 케이블TV의 게임 방송에서 야채 할머니를 취재하러 왔다. 할머니는 방송국에서 데려온 프로게이머 다섯 명을 상대로 순식간에 30연승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할 수 있어요?
대전이 끝나고 리포터가 인터뷰를 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농사짓는 것과 똑같아. 타이밍만 잘 맞추면 돼.
   야채 할머니는 방송국 사람들에게 그날 팔고 남은 야채를 줬다. 나는 야채 할머니가 말한 타이밍 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막상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되면 확신이 없어서 머뭇거린다.

    얼마 전에 야채 할머니가 죽었다. 사고도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다해서 게임이 끝난 것이다. 장례식장은 분당의 작은 병원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그동안 할머니와 대전했던 수백 명의 도전자들이 조문을 갔다. 게임센터 사장이 근조화환을 보냈다. 할머니의 아들은 조문객이 너무 많아서 당황한 것 같았다.
    도전자들은 조의금 함에 계속해서 봉투를 넣었지만, 할머니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나는 타이밍에 대해 뭔가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뭘 해야 하는 지 깨달았다. 한글 창을 열었다. 이제 다시는 코엑스에 가지 않을 것이다.

1983년 서울 출생,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