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말] 테이크 온 미 | 오현종 |

[6월의 말] 테이크 온 미 | 오현종 |

ohyunjong   소설가가 되고 나서 영향 받은 작가나 작품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마가렛 애트우드, 재닛 윈터슨 등 몇몇 소설가의 이름을 번갈아 대곤 했다. 다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이름들이었다.
    내가 호명한 작가들의 작품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소설이라면 다 그렇듯 그들의 소설 역시 나에게 울림을 주었고, 그들의 소설 중 몇 권을 편애한 것도 사실이다. 거짓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상을 문학작품으로 국한하지 않았다면? 아마 답은 달랐을 것이다. 내가 좀 더 솔직한 사람이었더라도 답은 달랐을 것이다. 열네 살 때 본 <테이크 온 미(Take on me)> 뮤직비디오만큼 내게 충격을 준 소설은 없었기 때문이다.
    만화(comics) 속으로 빠져 들어간 소녀와 만화 속 남자주인공의 모험. 결국 만화를 찢고 현실세계로 나온 만화 주인공. 밴드 ‘아하(A-ha)’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만남, 현실과 환상의 상호작용을 4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브스토리에 담아 보여주었고, 이후의 어떤 아티스트도 당시의 그들만큼 내게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진정한 크리에이터는 뮤직비디오 감독 스티브 배런과 만화가 마이크 패터슨일 수 있지만 그때는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현실과 환상의 접점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때 발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찢남’의 마력에 빠진 날부터 나는 월간 『음악세계』를 구독했다. 하교 후에는 FM 라디오를 틀어놓고 영어 숙제를 하는 여중생이 되었다. 책장에 놓인 지구본에서 아하 멤버들의 고향 노르웨이에 싸인 펜으로 표시를 해두고 하루에 한 번씩은 찾아보았다. <테이크 온 미>가 들어있는 앨범 <헌팅 하이 앤 로우(Hunting high and low)>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뮤직비디오 속 소녀처럼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왜냐하면 다음날 학교에 등교를 하면 내 의자에는 또 허연 운동화 자국이 찍혀있고, 뒷자리에서 껌 좀 씹는 패거리들이 쌍욕을 하며 깔깔댈 테니까. 등 뒤에서 괴롭히는 아이들이 싹 사라진 교실이란 이 세계에 존재할 리 없을 테니까. 말하자면, <테이크 온 미>는 나에게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헤드폰을 쓴 채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노랫소리를 듣는 동안은 나도 교실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었다.
    카세트레코더 속의 테이프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던 시간도 흐르고 흘러 마침내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나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던 무리들을 벗어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이전만큼 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다. 마이마이 카세트도 책상 맨 아래서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내가 어른이 되려고 서툰 노력을 기울이는 사이 아하의 멤버들도 소란스런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했다. 그들을 잊고 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들이 열 번째 앨범을 만들었고 여전히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어떤 위안을 받는다.
    아홉 번째 책을 준비하던 지난 연말, 나는 그들의 투어 소식에 2018년 1월에 있을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 내년이면 60세가 되는 리드보컬이 죽기 전에, 또는 내가 죽기 전에 한번은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킷 리스트의 첫 번째 줄을 지우겠다는 의지로.
    물론, 그런 마음이 전부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마음만으로 일 년 뒤에 있을 프랑크푸르트 공연 티켓을 배송받아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유튜브에서 라이브 공연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아하의 보컬이자 프론트맨인 모튼 하켓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노르웨이어를 모르는 탓에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 영상에 대해 누군가 설명해놓은 게시글에는 유년 시절 오래 괴롭힘과 구타를 당했다는 모튼의 고백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해자들보다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그 시절을 이겨냈다고. 언제나 단련된 미소만을 보여주던 오십 대의 팝스타는 영상 속에서 잠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모튼은 최근 학교폭력방지를 위한 활동으로 상을 받기도 한 모양이었다. 환경과 인권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유년기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는 상처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한 듯 보였다. 그 자신의 바람처럼 강한 사람으로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모튼과 같이 외톨이였던 시절에 대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던가? 모르겠다. 뭔가 쓰고 싶은가? 아직 모르겠다. 만약에 쓴다면 쓸 수 있을까? 누구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날 느꼈던 외로움에 대하여. 혹은 오래전 누가 “너는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춘 사람 같다.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거니?”라고 물었을 때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에 대하여.
   만약에 내가 열네 살에 사랑했던 이들의 공연을 보고 온 뒤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그 아이와 손잡을 수 있다면, 그 순간 쓰고 싶어질 소설의 제목은 분명 이것일 것이다.
   모튼과 나.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장편소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거룩한 속물들』, 『달고 차가운』,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