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말] 부끄러움의 자리 | 이향 |

[5월의 말] 부끄러움의 자리 | 이향 |

leehyang어느 아침은,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 아침은 나에게는 없는 첫 순결의 한 송이 꽃이 처음으로 피어나서 파릇한 봄 하늘을 마구 흔들며, 자신의 가장 정결함을 강렬하게 뿜어올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왜 저로 하여금 그토록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을까요. 어쩌면 오랫동안 손에 쥐어 준 부끄러움을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어딘가 한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나 봅니다. 공부해라, 공부하지 않으면 죽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어른거렸습니다. 아침 창으로 올라오는 저 순백의 뿔 같은 말씀에 부끄러움은 떨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마치 멀리서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처럼 한 송이 꽃은 단정하고 또렷했습니다. 부끄러움에 눈을 들 수가 없었지만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가는 것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시의 자리가 그 자리라고 하셨지요. 부끄러운 순간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시라고 하셨습니다. 시는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혹은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을 찾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잃어버린 것이 부끄러움만은 아니어서 창을 흔드는 꽃송이에 다시 제자리를 살펴보는 아침입니다.

어느 아침은,
세상의 빛이 사라지고 오로지 세상의 빛 아닌 빛만 타올라서 나의 가장 부끄러운 곳에도 빛은 와서 제 몸을 닦아주고 있었는데, 마치 로렌스가 노래한 바바리아의 용담꽃처럼 푸른 빛이 횃불같이 타올라 오히려 아침을 어둠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빛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모두 태워버리고 오로지 고개 숙여 제 안을 들여다보는 불화하는 말들의 아침이었습니다. 공부란 결국 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어서, 긴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드는 것도 결국 자신의 내면을 뚫고 나가는 것이라 하셨지요. 그러나 아직 제 안의 어둠에서 방향도 없이 주저앉은 저에게 아침은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 날은 언젠가 맨발로 몽골의 풀밭 새벽이슬을 함께 밟았던 그 순간이 잠시 맺혔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아침은,
가장 순정한 꽃잎부터 먼저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꽃이 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 어찌 할 수 없는 불가능 앞에 서 있습니다. 짧은 삶이지만 온몸으로 뒤척이다 지는 꽃이 저에게 부끄러움을 다시 쥐어줍니다. 떨어지는 순간까지 방황하는 흔적이야말로 꽃이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겠지요. 어쩌면 시도 그 안에서 고민한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 전부이며, 시의 본래면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데 끝도 없이 내리는 그 눈을 치우는 것이 공부와 다르지 않으며, 눈을 치워도 그만 안 치워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그저 그 행위가 공부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별이 될 수는 없지만 별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처럼, 그치지 않는 눈을 끝도 없이 치우는 행위야 말로 모두가 잠든 시간에 시가 해야 할 몫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아침이면 선생님 말씀이 시린 손끝에 입김으로 와 언 손을 녹여주곤 하였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걸어온 공부의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는데, 이 아침 공부는 흔적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낯선 얼굴을 아침 창에 비춰봅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뿌리내린 이곳을 떠나 거처를 옮기십니다. 깊이를 가늠 할 수 없었던 그늘을 뿌리 채 뽑아가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늘이 선생님을 따라 옮겨 앉겠지요. 그동안 선생님과의 시간은 꽃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꽃에 이르렀다고 해서 영원한 것도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터널을 뚫고, 끝도 없이 쌓이는 눈을 치우는 그 자리를 지켜야겠지요.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흔적이 부끄러움을 불러오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리며, 오늘 아침은 검게 타버린 꽃을 주워들고 선생님께서 가신다는 그 쪽을 바라봅니다.

시인. 1964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시집 『희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