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냉각 | 오한기 |

[12월의 칼럼] 냉각 | 오한기 |

ohanki   그동안 내게 변화가 있었다. 지난 10월 결혼을 하면서 성남에서 중곡동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군자역. 중곡역. 능동. 용마사거리. 이런 낯선 지명들. 나는 산책을 좋아하는데 중곡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산책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겁이 많아서 낯선 거리 걷는 것을 싫어한다. 이탈리아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는 낯선 거리를 잘도 돌아다녔는데, 한국에서는 싫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한달 동안 간신히 집과 마켓과 카페만 오갔다.
    한 달이 흐르고 어느 정도 중곡동에 익숙해졌을 무렵, 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종종 봤다. 오랜만에 싸우는 장면을 보는 것이었다. 다 큰 어른들이 카페에서도 싸우고 거리에서도 싸웠다. 듣기 싫어도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같이 돈 문제였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와 난생 처음 몸싸움을 한 뒤로 싸움을 한 적이 없다. 빌라 옆동에 사는 친구였는데, 그의 부모와 나의 부모는 서로 친하게 지냈다. 그의 부친은 복싱 선수 출신이었는데, 신문보급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매일 아침 우리 집에 팔고 남은 스포츠신문을 갖다 주었다. 나는 그 신문들을 읽으며 자랐다. 되돌아보면 친구의 부친이 복싱 선수 출신 치고는 주먹이 그렇게 크진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친구와 나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 글에 수영장이나 수영하는 장면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11월에 들어서 아내와 함께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생전 처음 수영을 배웠고, 아내는 몇 해 전에 삼 개월 정도 배운 적이 있었다. 아내는 수영을 곧잘 해서 금세 상급반으로 옮겨 갔다. 나는 팔을 젓고 호흡을 하는 연습을 하다 힘이 들면, 물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은 풀장에 몸을 담근 채, 거대한 풀장에서 수영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난 주엔 수영을 한 뒤 머리를 잘 말리지 않는 바람에 아내와 나는 감기에 걸렸다. 그 이후 수영장을 가지 못했다.

#2. 동물원

새벽.
이 동물원에는 단 하나의 우리밖에 없다.

우리 속에는
젊은 남자가 악어처럼 기어 다니며 꽃을 뜯어 먹고 있다.

그때,
라이, 우리 앞에 앉는다.

라이 : 메이, 메이.

우리 속 젊은 남자, 라이에게 다가온다.

라이 : 당신은 누구입니까?
젊은 남자 : 나는 대관령이다.

그때 라이 옆에 무바가 앉는다.
무바, 한동안 라이를 노려본다.

라이 : Who are you?
무바 : I’m Siddhārtha.

그때 저 멀리에서 메이 다가온다.
메이, 라이와 무바에게 다가오다가 솜사탕을 파는 가판대 앞에 멈춘다.

메이 : 라이, 라이.

점원, 메이에게 솜사탕을 건넨다.

메이 : 라이, 라이.

메이, 솜사탕을 한입에 구겨 먹는다.
이어서 자신의 손을 씹어 먹기 시작한다.
메이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라이와 무바,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남자가 귀를 막는다.

메이,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넣고 자른다.
입을 우물거리다가 손가락을 입에서 빼 내 우리에 던지는 메이.

휙 하고 큰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는 손가락.
우리 속 풀숲에 떨어지는 손가락.

젊은 남자, 허겁지겁 그곳으로 달려가 손가락을 먹기 시작한다.

무바, 입 속에서 총을 꺼낸다.
메이에게 발사.

자막 : 망명과 월북

   조금 있으면 12월이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작년에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3씬까지 쓴 뒤 아직까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시나리오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질서>라는 제목으로, 휴전선 인근에 기거하는 쌍둥이 메이와 라이, 그리고 불가리아 출신 흑인 무바가 나오는 시나리오다.

소설가. 1985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1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고, 소설집 『의인법』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