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미국 트럭과 사막 버스 | 송승언 |

[9월의 칼럼] 미국 트럭과 사막 버스 | 송승언 |

songseungeon   밤 운전 중이다. 블러드 오렌지의 <프리 타운 사운드>(2016) 앨범을 듣고 있는데 제법 밤 운전에 어울리는 것 같다. 드라이브 기분은 나지만 목적 없는 드라이브는 아니다. 업무차 트레일러트럭을 몰고 있는 중이다. 글쎄, 내겐 특수면허는커녕 2종 보통면허도 없지만 면허가 없어도 컴퓨터만 있으면 켄워스 W900를 몰고 캘리포니아를 종단해보는 게 가능하다.
   <아메리칸 트럭 시뮬레이터>(2016)는 최근 틈틈이 즐기고 있는 컴퓨터 게임으로, 트럭 운전 기사의 삶을 체험하는 게임이다. 내 아바타는 신디라는 이름의 백인 여성인데 ‘걸 크러시’라는 트럭 회사를 설립해 화물 운송업을 하고 있다. 아직은 직원도 없는 자영업자에 불과하지만 곧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일대에서 제일가는 화물 운송 회사의 사장이 될 것이다.
   딱히 스토리가 없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내용은 지극히 건조하다. 화물 운송을 필요로 하는 회사와 계약하고 트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게 전부다. 한마디로 게임이 일과 다르지 않다. 트럭을 거칠게 몰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레이싱 게임이 아니기에 막 달릴 수는 없다. 사고로 인해 화물이나 차량에 피해를 입으면 곤란하니 규정 속도를 준수해야 하고 신호도 잘 지켜야 한다.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를 찾아야 하며 장거리 운전으로 인해 피곤하면 모텔이나 길거리 휴게소에서 쉬어야 한다. 차량 조작법도 실제 트레일러트럭과 유사하여 주차가 매우 곤란하다(물론 면허가 없어서 처음엔 기어조차 제대로 못 넣었다). 도로 또한 실제 캘리포니아의 풍경을 재현한 모습이지만, 그나마 위안인 건 실제 캘리포니아보다는 훨씬 작다는 거다. 때문에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육체 피로가 덜한 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거리 운송 한두 탕 뛰고 나면 어깨로 전해지는 뻐근함이 상당하다. 이거, 게임 맞나.american_truck_simulator
    <아메리칸 트럭 시뮬레이터> 정도로 장거리 운전의 고통을 호소하면 아마도 <사막 버스>의 제작자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사막 버스>는 미국의 마술사-코미디언 듀오인 펜과 텔러가 참여한 <펜&텔러의 연기와 거울>(1995, 미발매)이라는 게임 속의 게임이다. 이 게임의 목적은 애리조나 주의 투싼에서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까지 버스를 운전하는 것으로, 이 버스의 최고 속도 45mph(약 시속 72km)로 달린다는 가정하에 투싼과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일직선의 사막 도로를 8시간가량 주행해야 한다. 물론 이 8시간은 현실 시간이다.
   라스베이거스로의 여정은 고행과도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게이머는 8시간 동안 액셀러레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 액셀 버튼에 절연테이프를 둘둘 말아둔다든가 동전을 끼워둔다든가 하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버스는 조금씩 우측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주지 않으면 버스의 바퀴는 사막에 처박히게 되고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버스를 몰 수가 없어 지금껏 얼마나 왔든지 간에 투싼으로 견인된다. 이쯤 되면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게임에는 저장 기능이 없으며 일시 정지 기능 따위도 없다. 즉, 라스 베이거스까지 가기 위해선 무조건 앉은 자리에서 8시간 동안 버스를 몰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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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모는 동안 심심파적할 거리라도 있으면 좋겠으나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통 모래뿐인 사막 도로를 지나가는 차는 오직 이 버스 한 대뿐이며,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객석마저 텅 비어 있다. 이 버스 기사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버스를(솔직히 자신도 타고 있는지 의문이다) 몰고 아무도 없는 도로를 8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음악조차 듣고 있지 않다.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까닭은 약 5시간쯤 차를 몰았을 때 모기 한 마리가 차창으로 날아와 부딪혀 죽기 때문이다. 이토록 고된 8시간가량의 정신적 투쟁을 통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다면, 게이머는 보상으로 1점을 얻을 수 있다. 그 1점을 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여러모로 너무나 가혹한 게임이다. 버스 기사의 고독과 고됨을 이보다 잘 표현한 게임은 없다, 라고 말하기 전에… 이거, 게임 맞나.
   ‘펜&텔러’는 <사막 버스> 제작 당시 한 라디오 쇼에서 “비디오 게임들이 지닌 폭력성으로 인한 도덕적 공황에 반대하기 위해 과도하게 현실적으로 디자인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글쎄, 물리엔진까지 동원되어 사실성을 추구하는 최신 AAA 게임들에 비해 당시 게임들이 얼마나 폭력적이었을지 내 어린 시절을 근거로 상상해보면 약간 어리둥절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과도한 현실적 디자인’으로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에 반대하고자 했던 그의 퍼포먼스는 오늘날에 와서야 최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을 영향을 끼쳤다.
   ‘안티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을 이 시뮬레이터는 그 기괴한 발상으로 인해 레트로 게이머들의 관심을 받아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다. 95년 당시 비디오 게임기인 ‘세가CD’ 용으로 제작됐던 <사막 버스>는 2011년 스마트폰으로 이식되었고 <사막 버스 게임>(‘http://desertbus-game.org/)이라는 웹사이트에는 자바로 이식되어 여건만 된다면 게임을 해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최신 기기인 VR용으로도 리메이크되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라스베이거스로의 고행길을 선택했으며 그 여정의 일부를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게임 동영상 관련 사이트에 중계했다. <사막 버스>로 전 세계의 불우 어린이들을 돕는 후원 마라톤까지 생겨났는데, <DESERT BUS FOR HOPE>(https://desertbus.org/)는 도전자들이 <사막 버스>를 완주하면 후원금이 누적되고, 그 후원금으로 어린이들을 돕는 특별한 기금 행사다.
   앉은 자리에서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것, 죽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 모두 좋은 일이고 시간을 죽여볼 수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그것들은 일종의 신적인 권능이다. 소개한 두 게임과 같은 성격의 게임들은―물론 시뮬레이터들이 필연적으로 ‘안티 게임’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권능을 가능하게 해준다.
   『문예중앙』 2016년 가을호의 신인상 심사평(당선작 없음)에서 한유주 소설가는 “인물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는데, 나 또한 소설을 읽어오던 와중에 유사한 갈증을 느껴오던 차라 그 대목에 눈길이 갔다. 그 대목을 읽고 나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트럭을 몰았다. 아무렴 독서보다야 게임이 움직이는 데는 더 능하다. 게임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인다. 상호작용이라는, 장르 자체의 기본 문법 때문에라도 정지해 있기만 하는 게임은 없다.
   자신의 삶에서 이미 가능하지 않은 선택지들, 그것들이 가능한 곳으로 가본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저 ‘과도한 리얼’을 향한 여정은 계속될 것 같다.

1986년 원주 출생. 2011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여 시집 『철과 오크』를 펴냈다. ‘작란’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