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칼럼] 나는 닭의 내장 |양선형|

[8월의 칼럼] 나는 닭의 내장 |양선형|

yangsunhyung   최근 우연한 기회로 일본 여행을 두 차례 했다. 한 번은 간사이였고 한 번은 나리타였다. 교토와 도쿄였다. 교토에서는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를 읽었으며 도쿄로 떠날 땐 새로 번역된 릴케의 『두이노 비가』를 챙겼지만 전부 읽고 오지는 못했다. 도쿄의 우에노 공원이 특히 좋았다. 우에노 공원의 울창한 습지에는 잉어들이 득실거렸고 잉어들 모두가 서울 도처의 불결한 저수지에 서식하는 잉어들보다는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잉어들 사이로 거북이가 헤엄치고 있었으며 청둥오리 몇 마리가 사람들이 다니는 한적한 산책로를 느리게 거닐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정신이 산만했고 뒤뚱거렸으며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청둥오리는 자신만의 소요를 즐기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질 때 나는 이 순간을 동물의 시점으로 재구성해보면 어떨까, 혹은 기계의 시점으로, 물레방아의 심경으로, 재봉틀의 심경으로, 아니면 거북이나 오리의 심경으로, 좀 더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며 공학적인 기계들, 혹은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동물들처럼 생각해보면 어떨까, 라는 허황된 생각을 품곤 한다. 이러한 망상은 거개 끝을 맺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그라지기 일쑤다. 이런 시도 자체가 하찮고 때론 아찔하며 줄곧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동물과 기계에 관한 꽤나 매혹적인 텍스트들을 알고 있다. 기계나 동물은 세계나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최소한 나와 같은 방식은 아니겠지. 사람의 경우 세계를 측량하고 자신을 규명하기 위해 학문에 의지하거나 타인을 향해 귀를 기울이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내면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 같다. 청둥오리에게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동물과 기계 앞에서 나는 거의 무력해지고 뒤통수를 긁적이는 소심한 인간이 된다.
   어제는 소설을 쓰다 내가 할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데ㅡ매양 지독하게 당도하는 깨달음이다ㅡ, 할 말을 찾아다니고 할 말을 위조하고 할 말을 적출하고 할 말을 시험하고 할 말을 빼앗기는 과정이 지긋지긋한 번잡스러움으로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입속이 텁텁해졌으며 자연스레 교토의 시장에서 먹었던 꼬치구이가 떠올랐다. 의뭉스러운 꼬치구이였다. 맛이 떫고 비렸다. 끔찍한 맛이었다. 내가 먹었던 일본의 다양한 음식들 중 단연 최악이었던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미의 리듬을 도축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의미, 그것이 마치 만질 수도 있고 손에 쥘 수도, 당장 목을 비틀 수도 있는 빈사 상태의 수탉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혹은 나는 나의 글쓰기에 의해 그런 수탉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겁에 질린 수탉. 혼미한 수탉. 몸을 뒤채는 수탉. 찢어지게 울어대는 수탉. 꼬치구이의 정체는 닭의 내장이었다.
   일본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해맬 일이 없었다. 도로는 구획이 반듯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길안내를 자청하는 친절한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나는 계획했던 장소들을 수월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숙소 주변을 게으르게 산책하다 낯선 동네로 넘어가도 숙소로 향하는 방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쾌적한 여행이었다. ‘닭의 내장’을 제외하고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그야말로 거지가 되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던 것이다. 나는 교토에서 목도했던 무수한 명승고적을 회상하며 집안에 처박혀 있었다. 교토의 대형마트에서 구입했던 쯔유를 맨밥에 뿌려 게걸스레 먹어댔다. 머릿속으로 여행지의 인상이 점점 구체화되는 동안 나는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요새는 아름다운 광경에 자주 노출되는데, 낮의 아름다움은 밤의 괴이함으로 쉽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열심히 이해하고 있다. 퇴락한 길거리는 낮엔 아주 아름답게 여겨졌는데, 마치 오래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일본이 아니라 며칠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내려갔던 광주에서 그랬다. 밤의 골목은 매우 길었고 모텔조차 닫혀 있었고, 망해버린 양장점 안에는 먼지 낀 마네킹들이 양복을 입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는 나쁜 생각이 든다. 나는 잘 감격하는 척을 하지만 잘 감격하지는 못하고, 그저 “감격할 가치가 있군.”이라고 누그러트려 생각하는 사람이다. 몰입하지는 못하고 물러서기만 하는데, 이렇게 물러서면서 나쁜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놓는 것이다. 나쁜 생각이야 쉽다. 그것은 생각이라기 보단 상태의 저글링이다. 나는 저글링에 재능이 있다. 나는 내가 가능성의 인간보다 잠재성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역능은 없지만, 나에게서 무언가가 자라기야 한다. 아니면 흘러나온다. 초록색, 이미지로 떠올리면 녹색으로 분열하면서 생식하는 액상 젤리의 이미지다. 그것은 마치 환상 같다.

1990년 광주 출생.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