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엑스트라오디너리 인터섹션 | 정지돈|

[7월의 칼럼] 엑스트라오디너리 인터섹션 | 정지돈|

jungzidon    유리 올레샤는 러시아의 작가로 1899년 태어나서 1960년에 죽었다.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마호가니』라는 소설집에는 보리스 필냐크의 「마호가니」와 유리 올레샤의 「질투」가 나란히 실려 있는데 나는 필냐크를 보려고 책을 빌렸다가 올레샤를 발견했다. 이후 홍상희의 번역으로 「사랑」이라는 단편을 읽었고 김성일 교수가 쓴 올레샤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읽기도 했다.
    유리 올레샤는 「질투」와 「사랑」 외에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얼마 되지 않아 대숙청이 시작됐고 그의 작품은 소비에트의 정신을 위배한 작품으로 심판대에 올려졌다. 오데사 그룹 동료인 이사크 바벨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작품을 쓸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는 잡문과 공장 노동으로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다 흐루시초프 이후 해빙기가 되어서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No Day without a Line』은 그러니까 숨어 지내던 작가의 갱생 프로젝트 같은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완전히 맛이 갔고 그래서 글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작가가 되고 싶다. 그 방법은 아무 말이나 하루 한 줄씩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고 『No Day without a Line』은 파편들이 모인 책이 되었다.
   그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 올레샤의 유작을 보고 싶었던 나와 금정연, 홍상희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No Day without a Line』의 영문판을 샀고 이 책을 한 챕터씩 번역하기로 했지만 금세 그만뒀다.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영문 번역자의 잘못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올레샤는 정말 맛이 간 것 같았고 「질투」와 「사랑」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두 페이지에 한 줄 정도 반짝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슬프기보다 짜증이 났고 짜증이 난다는 사실에 슬퍼졌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번역하지 않고 창작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유리 올레샤의 일기를 내가 쓰는 것, 유리 올레샤가 맛이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썼을지도 모르겠다는 혼자만의 망상에 입각해 내 글도 아니고 그의 글도 아닌 글을 쓰기로 했다.
   이를테면 그건 다음과 같다. 아래는 내가 번역-창작한 『No Day without a Line』 2부의 시작이다.

   1913년 9월 또는 10월
    나는 따분하게 자랐다. 오데사. 보잘것없는 일상들이었고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지루한 작품들은 방향을 잘 잡았다. 프루스트. 그는 어디서 시작했나. 그는 흔하고 닳아빠진 마들렌으로 과거를 복원했다. 나는 랜턴의 현란하고도 투명한 색색의 빛으로 과거를 비춘다. 거기엔 울타리, 벽, 썩어가는 문틀, 손잡이, 늘어진 가방 끈, 깨어진 포석이 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조각들. 할머니가 나를 김나지움에 데리고 갔을 때 떨어지는 낙엽들. 침몰한 배처럼 공중을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낙엽들과 할머니의 안경테, 귀 뒤로 넘긴 흰 머리칼, 지친 표정으로 정원의 나무에 등을 기댄 할머니의 표정. 내가 기억하는 건 어떤 소란스러움과 고요함의 중간지대다. 요란하고 지루한 김나지움 입학시험 날, 아이들과 부모들은 길게 줄을 선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나무 아래 서서 해를 피했나? 그래서 우리 위로 낙엽이 끝도 없이 떨어져내렸고 심해에 잠긴 범선의 파편들처럼 낙엽들이 포석 위로 쌓여갔나?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가? 나는 어쩌면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렸을지도,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읽고 쓰기에 서툴렀고 수학에는 젬병이었지만 나를 가르치려 애썼고 나는 이미 그녀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잠자코 뒤를 따랐다. 내가 그녀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낙엽을 봤을 때, 데리바소프스키의 거리를 걸어내려가며 바잔스키야 상점의 커다란 시계를 봤을 때? 분침이 움직일 때마다 우리는 다음 시간으로 이동한다. 분침은 우리를 미래로 데려간다. 미래는 분침의 움직임을 따라 영원히 순환한다. 나는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미래를 복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학교에 입학할 때 시작되었나. 나는 가을이 시작될 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계절이 바뀔 때, 계절을 기억할 때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인은 계절을 기억하고 그것은 계절이 지나갔을 때도 계절이 시작될 때도 아니다. 언어와 인상이 서로를 가로지른다. 길고 투명한 선이 낙엽과 거리, 시계와 아버지의 손을 잡은 아이들의 줄 사이를 지난다. 그것은 지점이 아니고 선이며 나는 투명하고 빛나는 면 위에 서 있는 작은 소년이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어린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고 그녀는 뭔가를 봤지만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할머니의 영혼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전쟁과 공포 속에서도 끝없이 낙관성을 찾아 헤매야 했던 영혼, 러시아인의 영혼,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

   원래 『No Day without a Line』 2부의 시작은 아래와 같다. 번역은 금정연이, 교정은 홍상희가 했다.

   지나간 인생을 되돌리고 싶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어디서 시작했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매직랜턴. 반짝이고 투명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매직랜턴의 이미지가 벽에 그리고 문에 그리고 문손잡이에 비추고 문손잡이와 합해져 그것은 골로(Golo) 기사의 이미지가 된다. 기타 등등. 아니면 아이들이 그들의 아버지와 함께 걷던 집에서 무척이나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던 산책길이거나… 그들은 낯선 장소 속에 있고, 그때 그들의 아버지들이, 마치 주머니에서 초대장을 꺼내듯(아니면 마술사용 카드?), 순식간에 어둠 속에서 그들 집으로 향하는 쪽문을 연다.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 내 기억은 끊임없이 나를 할머니와 함께 학교에 준비해서 학급 배정을 위한 시험을 치르던 어느 이른 가을날로 이끈다. 어쩌면 그때부터?
   솔직히, 나는 이 모든 것을 여전히 프로 작가로서 쓰고 있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회상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보는 누군가가 아니라. 무엇을 회상하는 거지? 삶? 데리바소프스키 거리에서 도둑이 잡히던 날? 나는 소리치며 마당을 향해 뛰었고, 거기서, 거의 십자가에 매달린, 젊은 남자가 붙잡혀, 몹시 창백한, 잘생긴 얼굴로, 다른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도둑들은 잘생기고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멍청하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경화증이었는지도. 어쨌거나 앞으로 할 놀이에 대한 창의적인 생각만큼은 제대로 돌아갔다. 멍청함은 한동안 내게 일어나는 비범하거나 초자연적인 일들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약 헤겔이나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작용을 참고한다면, 내 생각이란 건 지하철에서 주고받는 “어떻게 여기서 저기로 아니면 저기로 갈 수 있죠?” 같은 대화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영혼에 대해서 써야 한다. 공포에 질려 세계에 내던졌으나 낙관주의를 추구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모든 것은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부터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내게 러시아어와 산수를 가르쳤다.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엄마 아빠도 있는데, 왜 늙고 폴란드 출신에 사실 러시아어로 읽고 쓰는 데 능숙하지도 않고 러시아어 강세도 헷갈리는 할머니에게 내 입학시험 공부를 맡겼는지.
   나는 책을 베껴 쓰고 받아쓰기를 하고 사칙연산을 배웠다.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은 세부에만 있다. 발코니로 난 문과 창문을 마주보고 앉아 있던 식당 테이블, 혹은 귀 뒤로 넘긴 건조한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할머니의 관자놀이 같은…
   할머니는 나를 오데사 리슐리외 학교의 입학시험에 데려갔다.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서 기다리던 게 기억난다. 단풍잎들은 공기를 떠다녔고,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스쳐갔다. 지금 내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하지만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반복해서, 우리는 낙엽 하나를 눈으로 쫓다가 그런 다음 근처에서 부유하는 또 다른 낙엽에 시선을 뺏겼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면 몇몇은 고딕식 대성당처럼 생겼음을 알게 되리라.
   그것들은 푸른 하늘에서 우리 머리 위로 천천히 떨어져내렸고, 창문틀에 부딪치면 방향을 바꾸었다.
   그날 모든 것이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기나긴 여정을 포함한 모든 것이.
   시적인 영혼을 가진 할머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아름다움을 이해했다. 그녀의 얼굴 속에서 순식간에 떠오르던 슬픔.
   나 말고도 시험 보러 온 남자애들이 많았다. 그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나랑 할머니처럼 나무 아래 서서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던 아이들, 벤치에 앉아 있거나 그 옆에서 기다리던 아이들, 그리고… 예를 꼭 세 개나 들 필요가 있나? 좋아, 세 번째도 있었다. 형이나 아빠와 함께 운동장을 걷던 아이들. 작고 영리한 소년들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가을, 운동장, 그리고 도시가 작은 안경알 가득 반짝였다.
   내 할머니가 데려간 건 다른 아이들처럼 작은 소년이었다. 전문 작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작은 소년은 작가가 지금 기억하는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중 실제로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는지 모른다. 아니, 물론 일어났다. 분명히 가을이었고 낙엽들이 지고 있었다… 분명히 낙엽들은 우리를 스쳐가면서 삐거덕거렸고, 서로의 옆구리를 배처럼 비볐다. 그리고 배처럼 그들은 빙글빙글 돌았다. 내 곁을 시처 아스팔트 위에 얌전히 내려앉기까지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의 나선을 그렸다. 아스팔트에는 이미 수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었다. 비참하게 쌓인 함대의 잔해였다. 때때로 돌풍이 불어와 그것들을 여러 방향으로 흩날렸다… 아니, 소년은 분명히 그 장면을 봤다. 그리고 작가도. 이런저런 회상 속에서 할머니의 손에 끌려온 소년이 보았던 것들을 순수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실제로 할머니가 데려온 게 한 사람의 작가, 한 사람의 시인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비록 엄청 작은 시인이긴 했지만. 그렇다면 실제로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순간에 소년은 보기 시작하는가? 어떤 순간에 그는 순수한 소년이었다가 곧바로 시인이 되는가? 그날 아침,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보았고 그리고 그는 알았다.
   지금 내게는 왜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때 나는, 보시다시피, 충분히 자라서 혼자서도 갈 수 있었다. 비록 내가 그 나이다운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이를테면 아무 데나 헤매고 다니고자 하는 열정 같은 것들 말이다. 굳이 말하면 할머니는 나를 감시하러 따라왔다고 하는 게 차라리 맞을 것이다. 할머니가 무슨 이유로 나를 따라왔건, 그날은, 내 기억 속에 다른 어떤 날들이 그런 것처럼 환하고 활기 넘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날은 그녀의 날이었다. 그녀를 추억하는 날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리슐리외가로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우리는 먼저 그레체스키 거리로 내려갔고(집에서 나온 다음에, 왜냐면 우리는 그레체스키와 폴스키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살았으니까), 그다음 리슐리외로 꺾어서, 이런저런 길을 거쳐 학교에 갔을 것이다. 다른 길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내가 갔던 길로 데려가졌으니, 데리바소프스키 거리에 있는 바르잔스키네 가게에 커다란 시계가 있었다는 얘기도 해야겠다. 마치 누군가 거기에 일부러 놓아두기라도 한 듯, 우리가 가는 길에 매달려 있던 시계. 고개를 들면 분침이 움직이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위에서 창작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게 진짜 창작인지는 모르겠다. 창작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No day without a line』의 마지막 챕터 제목은 「엑스트라오디너리 인터섹션」이다. 엑스트라오디너리 인터섹션. 마음에 든다.

소설가. 1983년 대구 출생. 2013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했으며,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