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Les Rallizes denudes |박솔뫼|

[6월의 칼럼] Les Rallizes denudes |박솔뫼|

박솔뫼_jamo97올 해 초에 교토에 다녀왔다. 교토에 가서 특별히 한 것은 없고 도시샤대(大)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열흘쯤 머무르며 주변을 걸었다. 교토에는 작년 봄에도 갔었는데 그 때 나는 도시샤대 근처에 70년대부터 있던 오래된 까페 주인과 조금 친해졌다. 그 근방은 걷기가 좋았고 앉아있기 편한 곳들이 있었고 그런 이유들로 결국에는 채 일 년도 안 되어 또 교토에 간 것이다.

그즈음 나는 Les Rallizes dénudés라는 밴드에 빠져 있었는데 이 밴드는 60년대 결성된 일본 밴드로 도시샤대에 다니던 학생들이 만든 밴드였다. 밴드 멤버는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이전 멤버 중 한 명은 적군파의 요도호 사건 실행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교토의 지하철에는 여전히 적군파 멤버와 요도호 사건 실행자들의 사진이 현상수배 포스터로 붙어있다. 나는 일본어나 영어나 애매하게 못하거나 잘해서 그 밴드에 관한 자료를 일일이 찾아 읽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조금은 읽을 수도 있었다. 허나 자료의 대부분은 ‘미스테리어스’하다는 말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래서인가 교토에 가야겠다 마음먹은 이후 도시샤 대 앞의 그 까페에 가면 그 밴드에 관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막연하게 갖고 있었다.

교토에서는 매일 열한시쯤 일어났다.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안의 식탁에 앉아 있으면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다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컵을 들었다 놨다 물을 끓이고 뜨거운 물을 컵에 부어도 대체로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나와 걷고 또 걷고 가끔 박물관에 갔고 대체로는 골목들을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러던 날들 사이에 커피를 마시러 도시샤대 앞 까페에 들렀고 아 오랜만이야, 절 기억하시나요 같은 인사를 하고 커피 주세요 하고 잠깐만 하고 커피를 주면 아주 진하고 검은 커피를 마시고 다시 안부를 묻고 그랬는데 그 커피는 정말 진해서 프림을 떨어 뜨리면 흰색 물감처럼 퍼져나갔다. 커피를 마시며 노트에 Les Rallizes dénudés라고 쓰고 이 밴드 혹시 알아요 물었다. 주인은 내가 밴드에 대해 설명하기도 전에 알아 알아 하고 대답하며 裸のラリ-ズ, Hadaka no Rallizes라고 밴드 이름을 고쳐 읽었다. 주인은 나랑 친하지 않았어, 그런데 친구들은 아마 알거야 라고 말했다. 검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웃고 창밖을 바라보고 나는 머릿속으로 그럼 친구들에게 물어봐주실 수 있나요 라고 질문을 만들고 질문을 연습하고 짧은 질문은 평범한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주인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그래그래 했고 나는 주인은 또 웃고 같이 커피를 마시고 다시 안부를 물었다.

Les Rallizes dénudés의 맴버들은 무얼하나. 이 사람들은 무얼하며 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교토 어딘가에 살고 있겠지 생각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그 까페에서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생각하다가 레코드점에 가서 Les Rallizes dénudés의 레코드를 샀다. 나에게는 턴테이블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레코드들을 넘기고 들었다 놓았다 하고 마지막에 고른 그것을 들고 돈을 내고 얇고 큰 사각형을 들고 그냥 들고만 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것이 기분 좋은 일인 줄은 이전에는 레코드를 사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게스트하우스 침대 옆에 레코드를 놓고 자기 전에 한 번 보고 손에 들어보고 다시 잠이 들고 일어나면 열한시거나 열두시였고 여전히 아무도 없고 나는 멍하게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산책하는 기분으로 도시샤대 앞 까페에 갔다.

음. Les Rallizes dénudés의 누구누구 씨는 어디어디에 있는 라멘집에 가끔 나타난대.
라멘집이요?
응.

나는 검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세 모금쯤 남으면 흰 물감처럼 보이는 프림을 떨어뜨리고 창밖을 좀 보다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까페를 나왔다. 열흘은 빠른가? 빠른 것도 같아. 누군가의 최근을 알기에 짧은 시간인 것도 같아. 교토를 떠나기 전 우연히 길을 걷다 까페의 주인을 마주쳤다. 그 날은 무슨 휴일인가 중요한 날이던가 해서 시에서 마라톤대회를 하고 있었고 사진작가인 까페 주인은 사진을 찍으러 가게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왔고 나는 사람들이 달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고 우리는 반가워하고 조금 놀라고 그랬다.

아. Les Rallizes dénudés의 누구누구씨는 어디어디에 있는 음악 클럽에 가끔 나타난대.
아. 라이브 클럽에?
그렇지.
음악을 하는 건가?
뭐. 뭐 그런.

까페 주인은 나더러 멀리서부터 걸어와 보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멀리서부터 걸어와 보았다. 그 사람은 저편에서 나를 찍어주었다. 나는 많이 웃었다. 저 사진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또 웃었다. 우리는 인사하고 우리는 안녕 하고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짐을 챙겨 교토를 떠날 준비를 했다. 그게 올해 초의 일인데 여전히 나에게 턴테이블은 없고 레코드가게에서 사온 Les Rallizes dénudés의 음반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레코드를 그냥 가만히 들고 있는 기분은 좋다. 그래서 가끔 방을 닦다 서랍 옆에 있는 레코드를 든 채로 가만히 서 있다가 방을 닦는 것을 까먹는다. 레코드를 또 사게 될까? 또 다른 레코드는 그 레코드대로 들고 서 있는 기분을 주겠지.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만다. 어쨌거나 벌써 여름이 되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