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내게 남겨진 최후의 책 | 조현 |

[6월의 칼럼] 내게 남겨진 최후의 책 | 조현 |

chohyun    프랑스의 모리스 블랑쇼는 “보르헤스에게 있어서는 우주가 곧 책이고 책이 곧 우주”라며 “만일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면 모든 책은 세계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인간의 지성이 자아낸 이 신비로운 발명품─책이라는 현상─을 나 역시 좋아한다.
   우연인지 숙명인지 지성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 경외의 마음으로 무한한 우주를 올려다볼 때 책은 우리가 속한 라비린토스의 미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애로운 나침판이 된다. 그러나 수없이 다채로운 음조 속에서 때로는 견고한 침묵을 찾듯 지금까지 내가 서재에 모아 둔 많은 책들을 떠나보내고 딱 백 권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한다면 난 아마 스티븐 킹의 소설 중에서는 중편 『시체』만을 남기고 아쉽지만 나머지는 모두 떠나보낼 것이다. 영화 『스탠 바이 미』의 원작이 된 중편 『시체』의 첫 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사람의 시체를 보았다. 그것은 1960년에 일어났으므로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내게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우박이 그 시체의 눈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는 밤에는 더욱 그랬다.” 이 짧은 문단에는 스티븐 킹이 추구하는, 인간의 공포에 대한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이 짧은 중편 하나만 제대로 읽으면 나머지 스티븐 킹은 포기해도 좋다.
   정삼각형 하나만을 취함으로서 다른 모든 삼각형의 본질을 터득할 수 있듯이, 하나의 대표작을 선택하여 그 작가의 개성을 직관하는 것은 파스칼 키냐르에게도 해당한다. 다만 파스칼 키냐르라면 취향에 따라서 『은밀한 생』과 『떠도는 그림자』 혹은 『섹스와 공포』 사이에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나는 비주류라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아침』을 선택하고 싶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래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과연 화음─즉, 예술─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한 어떤 심오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들의 협연 후에 동 터오는 세상의 모든 아침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한 작가에게서 고갱이를 얻은 후에 이번에는 비슷한 색감을 지닌 작가들을 견주어본다. 아마도 난 사르트르와 카뮈를, 귄터 그라스와 하인리히 뵐을,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우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비교할 것이다. 작품을 우열로 따질 수는 없으나 선호의 차이는 존재할 것이니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추려내는 게 가능할 터이다. 지금 예감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나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혹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이나 세이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 같은 게 틀림없이 포함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각자의 시대와 인종, 성별과 신념을 깊게 숙고한 후에 어떤 보편적인 ‘인간 현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 권을 선정한다면 나머지 책들은 누군가에게 주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할 일은 그 백 권마저 하나씩 나의 품에서 떠나보내는 일이다. 이를테면, 분명히 백 권 중에 포함될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같은 것은 지하철 선반 위에 던져 놓는 것이다. (그럼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우연히 집어 들어 자신 내면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겠지.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메를로-퐁티라면 병원의 휴게실에 놓아둘 테고, 질 들뢰즈라면 무작위로 딱 한 쪽만 찢어 대형쇼핑몰의 반짝이는 화장실 거울에 붙여놓을 것이다. 그러면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짧은 잠언만으로도 한 인간이 구축한 장엄한 형이상학의 세계로 기꺼이 인도되리라. 이오네스코의 희곡이라면 사춘기 시절 우리 또래 중에서 처음으로 마스터베이션을 했던 친구에게 주고 싶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내게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직장 동료에게 주어도 될 듯싶다. 어떤 책은 떠들썩한 야구장에 놓아두고─이를 테면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같은─, 또 다른 책은 다시 서점에, 또 어떤 책은 봄비 내리는 공원 벤치에 놓아두어 내가 끝내 소화해내지 못한 어떤 사유를 실컷 물에 불어터지게 만드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그렇게 백 권을 하나씩 내 품에서 떠나보내도, 끝내 남는─혹은 버리지 못한─ 책이 한 권 있으리라. 나는 항상 그 책이 궁금했다. 내게 남겨진 최후의 책은 무엇일지. 아마도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지성의 이데아가 식물 섬유인 펄프의 옷을 입고 현현한 것이리라. 더 욕심을 부린다면 딱딱한 종교경전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광휘와 부드러운 유머를 동시에 지닌 것이라면 더욱 좋겠지. 그런데…… 그렇다 해도 궁금증은 더 남는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내가 그 마지막 책까지 떠나보내면 나는 무엇이 될지에 대하여.
   그러니까, 그 견고한 집착으로 이루어진 최후의 세계마저 품에서 보낸다면─세계는 곧 한 권의 책이므로─ 과연 나는 어떤 생물로 진화해 있을지에 대해서.

소설가.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였고,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