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믿거나 말거나 |안보윤|

[7월의 칼럼] 믿거나 말거나 |안보윤|

IMG_4751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에게 유독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믿지 않는다. 손발이 작고 뺨이 말랑말랑한 어린 아이들은 보통 귀엽다. 정수리 가르마를 따라 맺힌 땀방울이 햇빛에 자글자글 끓는 모습도 귀엽다. 발갛게 까진 콧등이라든가 무릎에 붙은 대형반창고 역시. 그러니까 내가 믿지 않는 것은 ‘귀여움 받다’ 부분이 아니라 ‘내가 유독’ 부분이다. 나는 보통의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만큼만 귀여움 받았을 것이다. 팔촌쯤 되는 친척 결혼식에 업혀간 아이가 받을 수 있는 관심만큼, 더도 덜도 말고 딱 인사치레만큼만.
솔과 라 음을 각각 다르게 소리 낼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엔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연도 했다고 한다.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네 사람 이상이 모인 장소에서 나는 가벼운 공황상태에 빠진다. 맥박이 지나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몸이 경직된다. 눈동자가 부산스럽게 굴러다니거나 아예 초점을 잃는다. 말을 더듬거나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빨라진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까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초성부터 종성까지 발음하는 일이 콩알에서 떡잎 틔우기보다 힘들었다. 마중물 없이 펌프질을 할 때처럼 마른 성대에서 힘겹게 끌어올린 목소리는 작고 거칠었다. 그런 내가 노래라니, 농담도 잘하시지.
아버지는 어린 나를 품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이 제일 못미덥다.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말이 없고 무뚝뚝한 사람이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말을 걸면 대개 단답형으로 대꾸하는데 그마저도 딱 부러지는 표현이 아니다. 헛기침하듯 말을 끌거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전부다. 그런 아버지가 내게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치던 시절이 있었다니 못 미더울 수밖에. 아버지가 나를 안고 업고 목마 태우고 다니는 바람에 내 신발에 모래 한 알 붙을 시간이 없었다는데. 밤이면 배 위에 올려놓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웠다는데. 잠든 내 머리맡에 조개 모양 초콜릿이 담긴 상자를 놓아주었다는데. 새로 산 오토바이에 제일 먼저 나를 태우고 안마당을 빙글빙글 돌던 아버지였다는데. 하필 그 오토바이에서 내가 떨어져 다치자 다음날 바로 오토바이를 팔아버린 사람 역시 아버지였다던데.

이런 식의 의심은 사실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어린 나를 품에서 떼어놓기 싫어해서 종종 직장에 데리고 가셨는데-당시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다- 그곳 분들이 나를 유독 예뻐해 과자나 음료수를 손에 쥐어주셨고, 그에 보답하듯 내가 노래며 춤을 선사했다는 그런 식의 문장. 나는 똑같은 문장을 어머니에게, 할머니에게, 삼촌에게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싶어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가 전봇대 그림자처럼 스윽 길어졌다 졸아들었다. 지금 나가는 거야? 으음. 커피 줄까? 으음. 아빠 나 머리 진짜 짧게 잘랐지. 으음. 그림자가 납작해진다 싶더니 벌써 현관 밖으로 나가있다. 이러니 믿을 수 있을 리가. 나는 덩달아 말을 아꼈다. 머리칼 7할이 하얗고 얼굴 곳곳 공평하게 주름이 분포해있고 팔뚝은 단단하지만 그래서인지 기댈 곳이 세면대밖에 없는 아버지는 질세라 더 말을 아꼈다.

새벽이었다. 동교동삼거리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집까지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가까스로 막차에 올라탄 나는 서울역에서부터 꽉꽉 채워온 사람들 틈에 다 녹은 치즈처럼 끼어 있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때였다. 안 와? 가고 있어. 말은 경쟁하듯 짧았고 전화 역시 금방 끊겼다. 사위가 새카맣게 잠긴 고속도로를 통과할 때 다시 전화가 왔다. 언제 와? 아직 멀었어. 짓다만 지하철역과 터널을 지날 때도 전화가 울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버지가 겸연쩍게 대답했다. 흐으음. 아니라는 뜻이었다.
집은 흐으음, 이란 대답대로 아무 일 없었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과 부대낀 결 그대로 주름이 잡힌 셔츠를 벗어 빨래통에 넣었다. 불편한 술자리에서 빠져나온 터라 두통과 허기가 극에 달해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 수에 무뎌지긴 했으나 테이블마다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면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와도 말하지 못했다. 방에 들어와 불을 켜니 책상 위에 오롯이 놓인 것이 보였다. 아래가 무겁게 늘어진 종이봉지. 두 시간 전엔 갈색 껍질 위로 기름이 자글자글 끓고 있었을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나는 닭강정보다는 후라이드 치킨을, 후라이드 치킨보다는 전기구이 통닭을 좋아했다. 김치만두보다 고기만두가 좋았고, 계절과 상관없이 계란빵과 붕어빵을 좋아했다. 모두 다 아버지가 무심한 척 들고 들어와 내 앞에 놓아주던 것들이었다.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기름에 젖어 투명해진 종이는 쉽게 찢어졌다. 앙증맞게 다리를 접은 닭이 새삼스러웠다. 나는 다 식어 꼬들꼬들해진 닭다리를 씹으며 생각했다. 이렇다는데 어쩌겠는가, 믿는 수밖에. 유독 귀여움을 받던 어린 시절의 내가 다리를 까부르며 노래를 부르더니 아빠 등에 답삭 업혔다. 신발 바닥이 갈린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