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I 형에게 |조강석|

[9월의 칼럼] I 형에게 |조강석|

jogajogangsukngsuk-1401.
I 형은 그랬다,
사업하는 사람이 애초, ‘홍익인간’은 안 되는 거더라…,
인자 마인드를 좀 바꿔야겠다.
나는 멀뚱거리며,
그래요, 우리 재미주의자 아닙니까,
우리도 인자 ‘협익인간’ 합시다.
그러자 H형은,
기를 써보고도, 안되면 또 무슨 수가 있겠지.
그래요, 그땐…,
음, 그땐-

2.
I형, ‘무익하게’ 잘 지내시는지요? 이런 농담으로 어색한 시간을 견뎌보던 게 언제쯤인지 기억나는지요? 아마도 성마르고 사납던 날들과 재기로 가득한 날들도 다 보내고 그렇다고 ‘강남봉이구년’ 어쩌구 하기에는 아직 이른 어느 시절이었겠지요. 커플 소리까지 들으며 20대 내내 함께하고도 어쩌자고 또 같은 동네에 모여 살기까지 했을까요? 글쎄요, 지루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틀림없이 기다리는 철이었으니까요. 생활하는 문학도와 사람 좋은 사업가가 같이 하기 좋은 일로는 기다리는 것이 제일이지요. 아니요, 고도는 말구요.

 

3.
형, 아직도 가벼운 흥분 없이는 대화하지 못하던 그 시절에도 삶은 정확히 자기 속도를 지니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얼간이쯤은 됐지만 특히 속도에 대해서는 백치였지요. 1989년의 속도로 2000년을 살아보려고 제가 택한 것은 문학이었지만 형은 사업하는 홍익인간을 택했지요. 에이 형, 그게 뭐에요…….
그러고 보니 형과 제가 88학번이나 89학번들의 평균적 대학생활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우리는 장가를 들 수 있었지요. 형수는 지금도 택시기사에게 “1988년도로 전속력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형은 어떠신가요? 아니요, 88도로 말구요.

4.
그러니까 남들 다 장전한 치기와 격정 말고도 형과 제가 공유했던 것은 상대속도였지요. 형과 제 아이의 예정일이 같았던 것은 바로 그것의 징표였지요. 어쩌면 그렇게 정확히도 같은 속도로 다닐 수 있었는지요. 에? 위반이라니요? 우리가 또 약속은 잘 지키잖아요. 길을 갈 때도 왼 쪽으로, 화장실 노크도 왼 손으로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쩌면 우리가 장차 ‘무익인간’을 하기로 공모한 바로 그 날에야, 각자 다른 속도의 벡터를 갖게 된 것이겠지요. 형이 그랬듯이 저도 그때 형의 속도를 잃었나 봅니다. 너무나 빤한 얘기지요. 우리가 자주 이야기 했던 하우스만 시의 한 구절처럼, 선술집에 앉아, 도대체 어떤 짐승같은 불한당이 이 세상을 만든 거야 하고 저주하던 게 우리가 처음은 아닐 테니까요. 아니요, 오늘은 시는 말구요.

 

5.
형, 아도르노 알지요? 예, 그 아도르노요. 그런 말을 했다네요.
“40대에 사람들은 보통 기이한 경험을 한다. 그들은 함께 자라왔고 지금도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지금까지 그들이 유지해오던 습관이나 의식에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은 도대체 일을 돌보지 않아 사업을 망치고, 어떤 사람은 부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횡령하기도 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사건을 저지르지는 않아도 ‘분해’의 조짐을 보인다. 그들과의 대화는 피상적이 되고 겉돌거나 쓸데없는 허풍이 된다.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자신만이 대상에 대한 자발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느낀다.” (「개인적인 관찰」)

그러니, 바야흐로 우리도 “이제는 자신만이 대상에 대한 자발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느끼는” 시절의 한 가운데 있네요. 그래서 불혹일까요? 자신만이 대상에 대해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진다고 속고 있어서요. 여하튼 요즘은 뭐라 뭐라던 중심들이 다 멀어 보이네요. 형은 어느 중심에 계신가요? 오늘 몽골로 가신다지요? 몽골의 무엇이 형의 자발성 넘치는 시선에 포착되었는지요? 저는 그냥 자발적으로 바쁘답니다. 우리가 지리멸렬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요, 모처럼 왔는데 얼굴도 못 내밀어서 이런 걸 쓰고 있는 게 아니구요…, 아닌 게 아니구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