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데칸고원에서 | 황유원 |

[3월의 칼럼] 데칸고원에서 | 황유원 |

hwangyuwon그날은 내 기억의 금자탑 가운데서도 최상부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러나 그날은 여전히 최상부에 머문 채, 운해, 아니 차라리 오래된 수첩에 쌓인 먼지와 찌든 때 같은 것에 가려 점점 그 실감을 내게서 회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거기 그대로 있다는 믿음만은 변치 않았지.
   오늘 나는 그날 기록했던 몇 줄의 메모에 의지해 다시 그곳으로 걸어 올라가본다. 좁고 어두운 통로와 길고 가파른 계단…… 잠깐, 그 수첩을 어디 뒀더라. 네가 준 수첩. 그러고 보니 이인성 선생님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를 처음 들은 건 너에게서였지. 네가 여행 전 내게 줬던 수첩. 내가 인도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이것저것 써 놓았던 수첩. 선생님은 이제 네 이름만 기억난다고 하시고. 네가 누군지 잘 모르시고. 그러나 네가 준 수첩. 그것을 찾아봐야겠다. 거의 10년 전의 수첩. 앞 커버 한가운데에 크게 300g이라고 적혀 있고 하단부에는 morning glory라고 적혀 있는 붉은색의 그것. 그 글의 일부가 이제 곧 내 문서창에 적힐 것이다. 일부는 그대로, 일부는 변형된 채. 나는 내가 이 얘기를 네게 했었는지 하지 않았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러나 어찌 됐든 너에게 이 얘길 다시 들려주고 싶어졌다.

   그래, 그날 인도의 다울라따바드. 데바기리, 즉 신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한때 쉬바신이 머물렀다고 믿어지는 언덕. 그곳에 나도 잠시 머물렀었다. 그날 내가 요새 꼭대기에서 내려다봤던 데칸고원. 나는 인간이라는 것은 모른다는 듯이, 그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그냥 거기 통째로 무관심하게 펼쳐져 있던 데칸고원. 서쪽 아라비아 해 쪽으로 펼쳐져 서고츠 산맥을, 동쪽 벵갈 만으로 펼쳐져 동고츠 산맥을 일으킨 괴력의 데칸고원.
   거기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멀리 장난감처럼 기어가는 열차밖에 없었고, 나는 모종의 혼돈 자체인 인도 기차역내의 내용물 전체가 저 열차에 다 들어가 있으며, 결국 저 열차는 북적거리는 대합실과 플랫폼 등을 전부 삼켰다 뱉었다 하는 커다란 위장, 거대한 헛것이라고 상상하며 그 압축된 전체를 내려다봤었다. 내 생애 가장 커다란 바람이었을 그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기르길 정말 잘했다고, 안 그랬으면 이 바람을 못 느낄 뻔 했어요, 라고 말했던 장발의 친구와 함께. 우리 눈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지평선이, 거의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은 채 거의 완전한 형태로 그어져 있었고……
   그래, 그날 인도의 데칸고원과 그곳에 불어오던 대용량의 바람. 한구석에 무료하게 앉아 있던 대여섯 명의 인도 남자들이 갑자기 등장한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더니 그들 중 하나가 문득 내게 “you smoke?”하고 물었고, 딱히 대답이 없던 내게 손으로 만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건네줬었다. 그러나 그건 담배가 아니었고, 이건 담배가 아니잖아, 라는 표정으로 반문하던 나를 쳐다보며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 한바탕 크게 웃었지. 그런 상태로 다시 바라보던 데칸고원.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그리도 엄청나게 느껴졌던 것은. 나는 데칸고원이 에고를 지니지 않았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어떤 물리적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그냥 거기 놓여 있을 뿐이었으니까. 자신의 주위를 끊임없이 오가는 현상들에 완전히 초연한 채로. 천 년 전에도 이 모습 그대로였고, 천 년 후에도 이 모습 그대로일 것 같다는 어떤 절대적 무시간성의 현현. 그것이 주는 희열감은 압도적인 것이었다.
   데칸고원은 할 일이 없었다. 데칸고원은 몇 시에 뭘 하고 또 몇 시에 뭘 하는 스케쥴이 없었다. 할 일도 없고 특별히 볼 것도 없는 그곳에서, 그러니까 시간만 있고 시계는 없는 그곳에서는 모든 게 날려가 버렸다. 나의 말도, 바로 옆에 있던 그가 내게 하던 말도.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자마자 바람에 날려가 버려 우리는 바로 옆인데도 거의 서로 고함을 쳐야 했지. 실은 데칸고원도 우리도,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모든 문제들이 사라지곤 했다. 그랬던 그곳이, 그날의 기분이 끝내 생생히 되살아나진 않는구나. 바람은 분명 여전히 불고 있는데 그것이 피부에 와 닿질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동안 그날에 대해 쓰길 주저했던 까닭이겠지. 실패하리란 걸 알았기에. 그러나 나는 너에게 편지 비슷한 것을 써보겠다는 걸 빌미로 그때를 떠올려봤다. 네가 줬던 수첩을 네게 처음으로 펼쳐 보이는 마음으로. 작가들이 연애하는 것도 다 그걸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라고, 너는 분에 차서 말했던 적이 있었지. 나도 지금 너와 내 얘기를 팔아먹고 있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네가 내게 원했던 걸 다 해 주고 싶어. 그땐 속이 좁아서 그러지 못했지. 다울라따빠드 요새 꼭대기에서 데칸고원을 보고 와서도 내 속은 좁았구나. 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었구나. 정말이지 그때는 종종 부아가 치밀어 올랐어. 그러나 이제는 그런 옹졸했던 기억들도 지나고 보니 귀엽게 생각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잠시 바람 부는 데칸고원에 앉아 이 글을 써봤다.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종교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던 네게. 그날 너의 혼란스러웠던 표정을 떠올리며. 지금 네가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네가 이 글을 읽게 되길 바라. 그리고 잠시 고통스러워하길. 너의 삶에 조그마한 균열이 되어 잠시나마 너를 괴롭히길, 진심으로 바라.

시인. 1982년 울산 출생.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