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비눗방울처럼 위태로운 방들 |박성준|

[10월의 칼럼] 비눗방울처럼 위태로운 방들 |박성준|

130124_22_3_59_20130124181704# 무지개

비눗방울을 분다. 조용히 입술 끝에, 빨대 끝에 공기를 집중하면서, 눈은 반쯤 게슴츠레, 우아하게, 그렇게…… 이곳과 잠깐 단절되어 있는 방을 하나 만들어 올려 보낸다. 곡선의 벽을 가진 방,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창으로 만든 방, 매끈한 무지개가 뜬 수많은 방들이 내 머릿속에서, 입속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그렇게 순간, 순간 떠오르는 순간의 방들은 단단해지지 못하고, 좀처럼 방이 되지 못하고, 멀리, 더 멀리 사라지려고 상승한다. 허공에 올라가서 빈자리를 찾아 무지개가 되지 못하는 저 방들이 툭, 내 날숨만 남기고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 손님처럼

하루 종일, 방을 구하러 다닌다. 서울시내 수많은 방 중에 왜 내 조건과 맞는 방만 없는 걸까. 방문을 열어보면 하나 같이 스프링이 망가진 침대가 있고, 오래된 책걸상과 빈 책장, 그리고 딱 사람 한 명 누울 만큼만 공간이 나 있는 방들이다. 어떤 곳은 베란다가 뚫려있는데 햇볕이 들지 않고, 어떤 곳은 창 골목으로 나 있어서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에 간섭을 받고 어떤 곳은 나 보다 먼저 곰팡이가 와서 세 들어 있는 반지하다. 햇볕이 좀 들고 1.5층이나 2층이다 치면, 또 부엌이 없어서 취사가 공동인 집이거나, 화장실이 없어서 세면이 공동인 집이다. 그도 아니면 우풍이 심한 옥탑이거나 너무 조건이 좋은데 주인집과 대문이 같은 하숙형 원룸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수많은 방을 본다. 아니 방을 내가 본다기보다는, 방과 나는 첫 만남을 통해 서로 죽을 맞추는 것이다. 이제 제발 좀 죽이 맞아야 하는데 보는 곳마다 내가 머물 곳은 아니다 싶어 오전부터 이 고생이다. 매번 꼭 방이라는 녀석이 나라는 낯선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다. 특히나 주인아줌마가 세입자가 외출한 빈집을 열쇠로 따서 보여줄 때 더 그렇다. 방바닥에 속옷이 널려 있거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식기들이 싱크대에 빠져있는 그런 방이 나를 맞이할 때, 나는 손님처럼 엄숙해져서는 방문 앞에 선다. 신발도 최대한 가지런히 벗어놓고 이 방에 머물다간 냄새들에게 나는 최대한 나의 냄새를 낮춘다. 사는 이의 허락 없이 빈 방에 왔다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렇다. 살던 사람의 얼굴을 보면 괜히 방이 친근해지고 믿음이 간다. 벽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물을 틀어보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가계를 구석구석 만져보는 느낌이다. 혹은 찬 바닥에 손바닥으로 쓸어보면서 나는 방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겨울 내내 가라앉은 물줄기들이 따뜻한 기운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나도 그 기운 앞에서 같이 맨 바닥에 어떤 기운이 되어보는 것. 그것이 나는 방과 내가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계속 내가 머물러야 할 방은 나타나지 않고 저녁이 든다. 내 머릿속에는 지나쳤던 수많은 방들이 가득 차오른다. 그러다가 둥둥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다. 제 각기 다른 자리에서 방이라고 나를 맞았던 공간들이 이미 하나의 공간이 되어, 나는 내 머릿속에 한 나절 만에 건물 하나를 짓는다. 저 건물의 문을 열면 반지하나 옥탑방이 뒤엉켜있고, 아직 사람이 빠지지 않은 집과 주인 대신 빈 방의 낯선 냄새가 나를 맞이해주던 집들이 즐비하고 있다. 건물과 건물 틈으로 손바닥만 한 햇살이 바닥으로 내리 쐬던 방이 아른거리고, 지나쳐왔던 방들이 울렁, 울렁거리면서 하루 종일 방을 찾으러 다녔던 내 길을 붙잡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손님처럼 외로워졌고, 앞으로 다시 볼 방들이 나를 잘 알던 사람처럼 나를 친근해하고 있다고, 그렇게 나는 방들과 멀어져 갔다.

 

# 담벼락

복비를 아끼려고 골목골목 전봇대며, 담벼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전단지를 본다. 연락처마다 가위질을 해둔 모습이 꼭 오징어 같다. 죄다 마른 오징어의 쿰쿰한 냄새가 나는 방들, 바람 속으로 주인을 기다리는 방들의 연락처가 출렁거린다.

하숙, 원룸, 자취, 풀옵션, 고시텔……

중앙대 중문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는 언덕길에는 담벼락 전체가 저런 오징어들로 가득하다. 여기는 고시촌도 아니고 그저 대학교 인근일 뿐인데, 서울에 다른 지역보다 방이 싸다는 이유로 담 전체가 광고판이 된 셈이다. 때문에 이곳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 집을 구하려는 학생들이 담벼락에 붙어 있는 오징어들만큼이나 덕지덕지 붙는다.
그 중에는 이런 여학생도 있었다. 페키니즈 강아지를 안고 한 손에는 트렁크를 쥔 학생. 저 모습은 여기 어딘가에서 쫓겨난 모습일까. 여기로 상경한 모습일까. 하늘은 우중충하고 비가 내리려고 하는데 저 강아지 꼴이나 주인 꼴이나 말이 아니다.
나도 이 낯선 서울 땅에 방 하나를 얻으려고 하는 건데 저 학생은 방 안에 또 방 하나를 더 마련해야하니 얼마나 버거울까. 나는 말을 걸지도 못하고 같이 내게 맞는 방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척, 최대한 그 학생을 관찰한다. 나도 이 방, 저 방 둘러보다가 다시 담벼락 앞에 섰는데 저 여학생도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방이 이곳에 그리 많지 않은가 보다. 만나려고 애쓴 것도 아닌데 마치 만나야할 사람처럼 같이 담벼락에서 연락처를 적고, 오징어 다리를 뜯고 있다.
나는 자취 생활 5년 만에 짐이 된 책 때문에 더 넓은 방을 찾으려는 건데, 저 여학생은 강아지의 울음소리를 막아줄 방을 찾아야 하니, 울음을 책처럼 쌓아 둘 수도 없고 창고에 때려 넣을 수도 없고 고민이 많을 게다.
나는 그렇게 그 여학생과 말없이 자주 마주쳤고, 우리 앞에는 벽이 있었다.

# 다시, 무지개

비눗방울을 분다. 창문을 열면 무지개가 뜬 하늘을 보고 싶었다. 방을 구하러 다닐 때면 꼭 그런 기분이다. 어릴 적 물려받은 크레파스로 무지개의 색을 다 채우지 못해서 무지개를 그리려고 짝지가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음 같은 것. 그러다가 무지개를 다 그리고 나서도, 내 무지개는 도무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아 그림 속에 창문을 닫아두고 싶은 마음 같은 것. 그럴 때 느끼는 마음. 뭐 그런 느낌이다.

방을 구해야하는데 나는 비눗방울을 분다. 내가 구해야할 방은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내 전신이 날아갈 것만 같은, 흔들림을 멈추지 않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