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해몽하는 사람 | 김덕희 |

[2월의 칼럼] 해몽하는 사람 | 김덕희 |

kimdukhee    귀신 한 마리를 가정해본다.
   내가 잠들면 요놈이 어디선가 쓱 나타나 내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는다. 목적은 내 꿈이다. 요놈은 잠든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침을 삼킨다. 내가 꿈을 꾸기만을 바라고 있다가 꿈이 잘 빚어지면 호로록 빨아 마실 작정이다. 어떤 밤엔 아무 소득 없이 쫄쫄 굶기만 해서 자고 있는 내 머리를 괜히 툭 친다. 꿈도 안 꾸고 잘 잤는데 몸이 찌뿌듯하다거나 목덜미가 뻐근하면 이놈을 의심해봐야 한다. 흔히 “잠을 잘못 잤다”고 하는데 우리 잘못이 아니란 얘기다. 또 어떤 밤엔 요놈이 잔뜩 배불리곤 내 머리를 쓱 쓰다듬어주고 간다. 뭔가를 꾸긴 꿨는데 아침에 잘 생각이 안 나면 이놈이 말끔히 먹어치우지 않아 남은 찌꺼기라고 봐도 되겠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우리나라에는 꿈을 먹는 상상의 동물 ‘맥’이 있고 일본에는 악몽을 가져가는 ‘바쿠’라는 요괴가 있다고 한다. 뭐가 됐건 나는 이놈들이 달갑지 않다. 어쩌다 희한한 꿈을 꾸고 그 장면들이 생생히 기억나면 그날은 좋은 그림이나 영화를 본 것처럼 하루 종일 즐겁다. 단, 잘 납득되지 않는 꿈, 꿈을 꾼 나조차 재료를 짐작하기 힘든 꿈이라야 한다. 그런 꿈을 꾸기는 쉽지 않다. 꿈은 현재나 과거의 심리와 경험을 반영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해도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나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므로 내겐 꿈이 재료를 얼마나 기묘하게 왜곡했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실컷 꿈을 꾸고 나더라도 대개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뇌의 역량이 평균 이상이랄 순 없어도 붕어대가리는 아닌데 방금 경험한 그 매력적인 서사와 이미지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으니 맥이든 바쿠든 귀신이든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다.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생각나지 않는 꿈을 기억해내려 애쓰다가 다음부터는 꿈을 메모해보기로 했다.

   올해 메모한 첫 꿈은 용꿈이다. 용은 용인데 한참 모자란 용이라 정신이 아직 덜 돌아온 와중에도 잠시 피식거렸던 기억이 난다. 꿈에서 나는 내 입을 통해 기다란 뱀을 뽑아내고 있었다. 기억나는 부분의 시작은 이미 뱀이 한참이나 뽑혀 나온 뒤부터다. 분명하진 않지만 서커스의 광대 비슷한 역할이었던 것 같다. 관객은 고작 두엇 정도였는데 아주 가까이 붙어 서서 내 공연을 보고 있었으나 누군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뱀을 뽑아내다가 이상한 것을 봤다. 뱀에게 발이 달려 있었다. 그게 바로 용의 발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꿈을 용꿈으로 규정했다.
   두꺼운 발목에는 철갑 같은 비늘이 빼곡했고 그 아래 커다랗고 날카롭고 완강해 보이는 발톱이 세 개씩 달려 있었다. 어쩌면 다섯 개였을 수도 있다. 손가락 굵기의 뱀에게 어떻게 성인의 발목 크기의 발이 달릴 수 있었을까. 꿈은 생뚱맞을수록 끌린다. 나는 저걸 어떻게 도로 삼키나 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전에, 눈앞에 앞발 두 개만 보이니 내 배 속에 아직 뒷발 두 개가 더 있을 터, 그걸 또 어떻게 꺼내나 하는 걱정도 깊었다. 그러곤 끝. 잠을 깼다. 잠에서 깬 나는 급한 대로 스마트폰을 들어 메모했다. “뱀이 내 입을 통해 빠져나가는데 발이 달려 있음. 근데 그 발이 마치 용의 발, 발톱도 있음. 이후 다시 몸속에 집어넣을 일을 걱정하며 깸.” 이런 식으로 적어놓고서야 마음 놓고 음미할 수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꿈이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곱씹으며 즐겁게 끙끙댔다. 실마리는 엉뚱하게도 사람들과 건강검진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잡혔다. 나는 작년 내내 직장인 건강검진을 미루다가 연말에 다다라서야 받았다. 그때 집중적으로 고민했던 게 있는데 바로 위 내시경을 추가할지 말지였다. 2년 전에 비수면 상태로 받아본 경험이 있어 그 거북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시술실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아! 지금 생각난 건데, 이들이 내 꿈에서 두어 명의 관객으로 반영된 게 아닐까), 내시경이 식도를 통해 비집고 들어왔다가 나가던 무자비한 완력, 조직검사를 한다고 위벽을 꼬집어 살점을 떼어내던 겸자(鉗子)의 얄미운 악력, 술과 야식을 끊으라던 의사의 엄중한 경고가 구체적으로 되살아났다.

   시인하는데, 나는 콩 심은 데서는 반드시 콩이 나야 하는 사람이다. 팥이 나오면 안 된다. 그러니 무슨 정신분석가라도 된 양 꿈을 분석해대는 게 아니겠는가. 당연히 길몽과 흉몽을 구분하지 않고 예지몽을 믿지 않는다. 이런 갑갑한 기질이 소설을 쓰는 데는 별로 도움되지 않을 터, 그러나 생겨먹은 게 이래서 잘 바꾸지도 않고, 바꿀 생각도 별로 없다. 다만 꿈을 풀어가다 보면 내 무의식이 하는 짓에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걸 내 멋대로 나의 예술적 잠재력이라 믿어버린다. 내 안의 엉뚱하고 기발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이 나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이 올 것이다. 어쩌면 내가 꿈을 해석해대며 나의 무의식마저 통제하려는 건 그 단단함을 뚫고 나올 더 빛나는 왜곡을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1979년 경북 포항 출생.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