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칼럼] 담배와 작별 인사 나누기 | 조재룡 |

[1월의 칼럼] 담배와 작별 인사 나누기 | 조재룡 |

OLYMPUS DIGITAL CAMERA—예상되는 고통과 요구되는 인내와 그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것만 같은 막연하고 이상한 두려움에 관한 잡설

*

   담배가 마냥 좋았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이과였던 나는 국어를 담당하시던 담임선생(소설가가 되려다 실패를 하신, 그래서인지, 정확한 까닭을 알 수 없으나, 내가 몹시 따르고 좋아했던, 그 사실을 졸지 않고 집중하며 들었던 수업시간의 내 태도로 차후에 짐작하게 된)의 권고로 학교를 대표해서 전국 백일장엘 나간 적이 있다. 수업을 하루 빼먹는다는 저 기쁨에 잠시 들떠 모종의 거래를 했다고 해야 하나? 그곳이 덕수궁이었던가? 경복궁이었던가? 국립민속박물관이었던가? 왜 백일장은 이런 장소에서 열리곤 했는지, 그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이 지금에서는 오히려 놀랍다. ‘자유 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chojaeryong_201601_1산문’이 아니라, 그러니까 ‘시’를 택했다. 잠시 무엇인가에 홀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담배」라는 제목으로 십 여분이 채 걸리기 전에 내가 글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휘갈기듯 몇 줄을 썼을 것이다. 일찍 제출하면 자유 시간이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을까? 시는 어차피 산문보다 짧으니까. 서둘러 제출한 다음, 블랙홀 같은 고풍 지대를 빠져나오기 전, 주위를 잠시 둘러보았던가? 양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모두 열중하고 있었던 풍경이 지금도 눈앞에 가물거린다. 다른 학생들보다 행사장을 일찍 빠져 나온 나는, 경복궁 일대를 잠시 배회했고, 그러다 마당세실극장에서 연극을 한편 보았고, 그러다 종로서적에 들려 이 책 저 책 뒤적거렸고, 그러다 왠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바둑책(7~8급 사활)을 한 권 구입했다. (이 책이 아직도 책꽂이에 있다니!) 기억을 더듬어 그때 제출한 시를 재구성하……다가……, 아, 블로그에 메모를 해두었구나!

   처음 붙인 불빛에
   희망을 가득 담고
   뭉뚝 해진 공초에
   허무를 배려하는

   길고 가는 한 뼘
   남짓한 사랑이라
   하늘로 이내 흩어질
   애달픈 사랑이어라

   (…)

   그렇게 담배는 내 삶이요
   내 존재의 이유이어라

*

   행과 행을 잘 나누고, 사이사이 중복된 단어를 되도록 피해야한다는 최소한의 생각은 있었던 모양이다. 며칠 후, 학교 스피커에서 교무실로 오라는 방송이 나오자, 나는, ‘상을 받았구나’ 하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착각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여길, 이 일로 인해, 내가 들어야 했던 말들을, 지금, 논리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 ‘학교 망신도 정도가 있어야지’ :

   학교와 무슨 상관이 있었던 것일까? 누구나 거대한 조직의 한 퍼즐일 뿐, 그 시절에 모든 것이 개인적인 불행이나 개별적인 소사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학교는 고작 이 정도에, 망신을 당하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2. ‘아직 어린놈이, 벌써, 이렇게, 되바라지면, 나중에, 뭐가 되겠느냐’ :

2-1. 아직 어린놈이 :

   흔히들 그렇게 불렀다, ‘者’를 ‘놈 자’로 배웠으니, 큰 충격은 없었고, 더구나 이정도의 언행에 충격을 받을 만큼, 당시 고등학교는 허술하지 않았으니, ‘새끼’가 아닌 것은 또 얼마나 다행인가!

2-2. ‘벌써’ :

   내가, 함부로, 앞섰다는 것, 앞서 나갔다는 것이다. 제자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반영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2-3. ‘이렇게’ :

   강조를 위한 부사와 양태를 표현하는 형용사의 중간 어디쯤에 정박하고 있을,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을 때, 흔히 동원되는, 선생 특유의 이상한 어법이라 사료된다.

2-4. ‘되바라지면’ :

   나는 지금도 이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사전을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피동형과 능동형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의도를 존중해서 해석해보면, 1) 남들보다 조숙하다, 2) 남들이 잘 하지 않는 행동을 과감히 실천한다, 3) (그래서) 창의적이다 4) (더구나) 창의적이면서 유머 감각도 갖추었다, 정도를 내포한다.

2-5. ‘나중에’ :

   매우 막강한 표현. 요즘의 대학이 앞 다투어 모시려는 ‘브랜드’의 진정한 발견. 언젠부터인가 일제히 대학이 내 걸기 시작한 ‘미래’라는 슬로건, 가령 KU Future나 SKK Future Origin, 삼성학술관 Unique Future 등은 이 ‘나중에’를 표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미래’가 뿜어내는 이데올로기는 대학에 소속된 학생들이나 연구자들 모두에게 성실하게 살지 말고 허황된 시도에 매진하는, 그렇게 사기를 치라는 권고에 가깝다. 대학은 지식을 모으고 분류하는 일을 기본으로 삼는 곳인데, 그걸 내팽개치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래에 대한 병적 집착은 거북이 등에 올라 타 먹이를 매단 막대기 하나를 살짝 앞으로 뻗는 것과 닮아 있으며, 그 거북이는 당연히 교육자-피교육자 모두라 하겠다. 지금-여기를 구성하는 지적 체계에 대한 실증적 고찰 없이, 그저 남들보다 무작정 앞서 나가야한다는 강박에 내내 시달리라는 말이며, 이 강박증으로 현실의 당면한 일들과 현실에서 소화해야하는 사유의 절차들을 모조리 생략하라는 모종의 압박이다. 차분한 분석이나 자료의 발굴보다, 허황된 시도로 선점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으라는, 정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권고의 일종은 아닌가. ‘나중에’에 대한 집착은 오늘날 도처에서 발견되는 ‘미래를 향하라’는 슬로건으로 다시 탄생하여, 현실에서 공허한 헛발질을 조장하며 끊임없이 헛된 망상을 부추기고, 그렇게 현재를, 현재의 지식과 상황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따지고 보면, ‘미래를 향하라’는 ‘나중에’ 보다도 진부하고 유치한 슬로건이다. 지금은 라면만 먹으며 이를 악물고, 버티더라도, 내일을 위해 빚을 지고, 그 빚으로 저축마저 해야 한다, 뭐 이런 충고와과도 일면 상통한다 하겠다.

2-6. ‘뭐가 되겠느냐’ :

   추론인가, 물음인가? 나도 모르겠는 걸, 왜 굳이 나에게 물어보냔 말이다. 선생들이 태연히 자행하던 당시, 직무 유기의 한 방식.
 
3.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

3-1. ‘정신 차리려면’ :

   예의나 밥상도 아닐 텐데, 자꾸 차리라고 해서 엄청 짜증이 났다. 이 충고는 지금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되도록 정신을 ‘안’ 차리는 일에 오히려 집중해온 내 인생에 비추어 보면, 매 순간, 감사를 표해야 하는 말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정신을 되도록 차리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게 해준 원동력이었다고 한다면, 어쩔래?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예이~예이~’처럼 당시에 대중가요에서도 등장해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던, 당대를 가장 대표하는 문장이 분명했다.

3-2. ‘아직 멀었다’ :

   단정인가? 그럴 것이라는 추측인가? 뭐가 되었건, 물리적인 거리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학생이었던 나에게, 상처가 되기에 충분한, 한 젊은 청소년의 인격과 존재의 가치 전반을 비하하고 폄하는 것은 물론, 부정적 감정을 한껏 실어, 맘껏 저주하고, 무책임하게 조롱한, 폭력적 발화라 아니 할 수 없다.
 
4. ‘저거, 저거 성적 좀 봐라’ :

4-1. ‘저거, 저거’ :

   사람에게 적용한 사물화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아닌가. 간투사와 흡사해서, 하나마나 한 표현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고 여기면서, 나는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4-2. ‘성적 좀 봐라’ :

   명령문이라면, 누구에게 가해진 것인가? 옆에서 가만 지켜보던 수학 선생은 이 명령문이 자기를 향한 것으로 착각하여, ‘그러게요, 저 녀석, 이제 내리막길 위의 브레이크 없는 기차 탔어요!’라며, 적절치 못할 뿐만 아니라 적합하지도 않은 비유로 인문학과 언어 전반에 대한 무능을 과시했다.

4-2-1. 추가 :

   수학 선생, 이 인간은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그 명성이 전교에 자자했다. 가령, {[1번 나와, 풀어!] + [못 풀어?] × [퍽~퍽~퍽]} ⋂ {[2번 나와, 풀어!] + [잘 풀었어!] ÷ [자리로 들어가!]} = ∑ {[모두 잘 봤지!]} ⁂ √{[3번 나와!]}, 이런 식이었던지라, 우리 모두 [P∧~P] or / [P∨~P] 라는, 그러니까 자체로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P와 ~P(not P)의 교집합과 합집합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에만 속하는, 좀 더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 즉 공집합, 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 편입된, 그렇게 교육의 주체도 객체도 아닌, 유령과도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참고로 P는 확률론의 개연성(probability)이나 수의 치환(permutation)을 뜻하는 순열이다. – 나는 이과였다고 앞서 말했다.

   나는 그런 폭언들을 통한 판단, 단죄, 규정, 폄하, 비하의 대상이 되었고, 나에게 쏟아진 이 모호해서 독창적이라고 할 만한 저 말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아니 바로 잊힐 정도로,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찾아온 것은, 가혹한 육체적 체벌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날 이후로, 그 이전까지 호기심에서 몇 번을 뻐끔거렸을 뿐인 담배를, 내가 본격적으로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사실 그 날, (그렇다), 바로 그날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담배를 끊은 적이 없으며, 끊으려고, 노력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무슨 일을 해도, 담배와 함께 한 순간과 순간들이었다. ‘담배-삶’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어디서나 언제나 나에게는 담배가 있었고, 예고된 두통을 제외하면 과도하다 할 흡연 자체로 나 자신이 큰 불편을 겪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꼭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유학 시절 프랑스는 특히 나 같은 애연가에게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남녀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좀 더 선호했고, 반드시 차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친근감은 물론 모종의 연대감이나 동지애를 느끼기조차 했다.

*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가? 흡연, 음주, 연애, 당구 같이, 당시 성인들이면 누구나 했던, 매우 평범한 행위가 고등학생에게는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학년이 하나씩 바뀔 때 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성인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평범함의 영역을, 자신의 고유한 권리인 것처럼 넘나들며, 탈선과 자유를 혼동하거나 같은 말로 여길 때, 또한 그 혼용의 징표로 그들이 콜록거리며 담배를 제 입가에 삐뚜름히 물고서, 멍청한 표정을 짓거나,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운 체를 할 때, 오히려 나는 굵은 시거를 입 왼뺨에 꽉 들어차게 문,『황야의 무법자』에서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는, 아니 그가 거친 입술로 붙들고 있는 저 담배에는 항상 전율이 감돌았다. 찡그린 미간의 아우라는 또 어떠했는가? 함부로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없는 고수의 면모를 풍겼던 그에게 담배는, 오늘날처럼 혐오를 주거나 약자의 소유물, 미개한 자의 전유물, 자본주의 사회에 부합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스마트하지 못한 자들의 나약한 의지의 징표가 아니라, 오히려 탁월성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해주는, 그러니까 인간 사냥꾼의 면모를 최대한 살리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상품성’에 최대치의 가치를 주는 도구가 바로 시가였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가를 문 저 표정이 어느 날 내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남겼던 것일까. (물론 그는 고수여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제 입에 물린 시가가 공포를 자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벌써 깨달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담배를 끊은 적이, 끊으려 시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chojaeryong_201601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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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심지어 담배를 주제로 삼은 글을 몹시 사랑하기도 한다. 쥘 라포르그의 아래 시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런 번역을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번역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다, 이 세상은 정말로 재미가 없다 : 다른 것도, 진부한 헛소리일 뿐.
   나로 말하자면, 나는 희망도 없이, 내 운명에 체념하고 말 것이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나는 늘씬한 담배를 저 신들의 코앞에서 피워댄다.

   나아가보라, 활발하게, 투쟁해보라, 미래의 불쌍한 해골들아.
   나로 말하자면, 몸을 비틀며 하늘로 오르는 푸른색의 꼬불거림이
   무한한 황홀의 지경으로 나를 빠뜨리게 할 것이며 나는 그렇게
   마치 수천 개의 향로 속에서 죽어가는 향기들처럼 잠을 청하리라.

   그렇게 나는 맑은 꿈이 피어난 천국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발정 난 코끼리들이 모기들 합창단과
   환상적인 왈츠에 맞추어 교미를 할 것이다.

   그러고 난 후, 내 시 몇 구절을 꿈꾸며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면,
   나는 감미로운 기쁨으로 가득한 마음을, 거위 엉덩짝 하나처럼
   구워진 내 친애하는 엄지손가락을 곰곰이 주시하게 될 것이다.

   —쥘 라포르그, 「담배」 전문

   이게 전부가 아니다. 나는 심지어, 「담배와 시」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내가 어떤 글을 써서,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려 네 통의 전화, 혹은 문자를 받았는데, 이처럼 보람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특히 어느 시인이 덕분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고 말했을 때, 나는 좀 황홀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 분께서 나에게 자신의 시집에 해설을 부탁한 것은, 오로지 이 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

   나는 담배에 항상 관대했으며, 지금도 면담 시 학생들에게 담배를 권하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지금도 내 연구실에서 함께 담배를 피운다. 올해 초, 이 정부에 부당한 세금을 낼 수 없다며, 아내가 먼저 담배를 끊었다. 나도 곧 동참하겠다고, 모아 놓은 담배만 다 피우고 끊겠다고 약속을 했다. 물론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내는 정말로/실제로 담배를 끊었다. 참으로 독한 사람이다. 아내를 존경한다. 내가 가끔 유혹을 하면, 한 대를 피우는 둥 마는 둥 한다.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는 정말 많을 것이다. 우선 좀 더러워진다. 옷에 스며든 퀴퀴한 냄새는 피우는 사람을 제외하고 참기 어려운 것임에 분명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위생상 여러모로 청결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건강을 따지자면, 물론 백해무익하다. 공초 오상순 같은 사람은 하루에 3~4갑, 그러니까 적게는 50개비에서 많게는 100개비를 피웠다고 한다. 얼추 계산을 해도,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 시간에는 항상 담배를 물고 있었다는 것인데, 나 같은 골초도 상상하기 어려운 초인의 경지다. 내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흔히 글쟁이들이 변명처럼 말하듯 담배 없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나도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는 평소보다 좀 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담배 없이 나는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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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거의 30년을 함께 했던 담배와 이별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의사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한다. 가벼운 시술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약물의 후유증이 적지 않아 내내 두통에 시달린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의사의 권고와 경고가 있었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뒤늦게 문단에 나와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문단에서 만난 친구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좀 더 오래, 그렇게 함께 글쟁이로 만나고 싶다며, 내게 했던 금연을 비롯한 건강관리에 대한 그간의 권고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인다. 그들의 얼굴이 하나씩 스쳐 지나고 있다. 별 일 아닌데, 괜히 마음이 심란하다. 거짓말을 하지 말자. 별일이다. 혼자 사는 삶이 아닐 것이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조금 덜 바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약간 더, 강해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응원한다거나 파이팅, 이런 말, 절대 듣고 싶지 않다. 한 모금을 내뿜는다. 아아,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두 모금 내뿜는다. 당장에 끊을 자신이 없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분명 구순기에 무슨 심각한 병을 앓았거나, 어릴 적 담뱃잎으로 만들어진 강보에 싸여 잠재기를 지나온 것이 분명하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집을 나온다.

*

   하루 종일 잠……. 또 잠……. 담배를 머리맡에 둔 채, 밀린 채무를 일시에 갚아나가듯 잠을 잔다. 몇 번 이상한, 이상하지 않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 아마 하늘을 보았을 것이다. 무언가 바삐 획, 하고 지나가는 저 하얀 공간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 하얀 연기 속에서, 나는 아마 소리 없이 젖어있는 내 삶의 슬픔과 이별의 정념을 보았을 것이다.chojaeryong_201601_3 보려 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붉은 색의 궤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하얀 색, 아니, ‘색’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백(白)의 막연한 흩어짐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었거나 최소한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 몇 방울을 흘렸을 것이다. 새삼 확인하게 된 사실 하나. 담배는 삶을 버거워 할 때마다 가장 친한 벗이었구나.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과거형으로 써야 한다. 담배 없는 삶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삶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러거나 그랬을 것이라는 사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잡으려 하면 한발 달아나 버리고, 보듬으려 하면 자꾸만 덧나는 상처 같은 시간들이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몽상에 젖은 사람만이 끈 떨어진 연을 쫒는 건 아니다.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붙잡아봐야 다시 하늘로 한없이 피어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없이 이 무정형의 백색을, 저 정념 덩어리를 따라 나선 사람이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다시 잠이 오려한다. 눈이 따갑고 머리가 무겁다.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이고, 그렇게 연기를 뿜어내면서, 담배를 끊어야 할 것 같다, 고 쓴다. 이인성 선생님, 저처럼 새해에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담배 끊지 말아주세요.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2003년 『비평』을 통해 등단하여 『번역의 유령들』 등 3권의 평론집과 연구서 『앙리 메쇼닉과 현대비평』, 그리고 다수의 프랑스문학 번역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