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주말: 어두움과 비 | 김엄지 |

[12월의 칼럼] 주말: 어두움과 비 | 김엄지 |

kimeomji1. 점심

순하고 부들부들하고 담백한 것.
낙지비빔밥과 짱뚱어 탕을 먹기로 했다.
왜 그렇게 썼어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어요, 라고 대답했고, 좋은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저녁

언어 이전의 의미,
언어와 결별한 의미.
이건 어때?
자유에 대해서.
자유에 대한 공부 말이야.
그것도 좋지.
M과의 대화는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맹세와 선언 중에, 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는 무엇인가.
맹세다.
선언이다.
몇 가지 근거가 오고가다가,
맹세고 선언이고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마.
결론을 내린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3. 결론

내 발목을 잡는 것은 내 두 손이다.

4. 어두움과 비

무언가 변했다.
꿈속에서 나는 내 방이 낯설어 어리둥절했다.
조금 더 넓고, 천장은 낮았으며, 벽이 약간 기울어 있었다.
방안은 먹구름처럼 어두웠다.
나는 침대 밑을 들추었고, 숨어있던 귀신과 기어이 눈이 마주쳤다.
귀신은 내 방안에 모든 전구를 훔쳐 달아났다.
사라진 전구 하나, 둘, 셋. 넷.
경찰을 불러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무슨 수로 귀신을 잡는단 말인가. 꿈속에서 깨달았다.

잠에서 깨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고, 어젯밤 밖에 세워둔 자전거가 떠올랐다.
맥주를 몇 잔 마시는 날에는 종종 왕십리역 근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오곤 하는데, 어제도 그랬다.
비를 맞고 있겠지. 녹이 슬겠지.
자전거에 박힌 몇 개의 나사, 바퀴 휠, 그런 것들을 헤아리고 있을 때, 윗집에서 마늘 빻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어요. 마늘 빻는 소리만도 못했던가.

5. 마냥

이 지경이 되었는데,
너는 왜 마냥 태연해? 어제 나는 M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스테이크, 햄버거 먹으니까 여기가 미국인 줄 알아. 자기가 미국 사람인줄 안다고. 여기는 미국이 아니고 너는 미국인이 아니야. M이 내게 말했다.
M과 나는 자유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6. 미래

폭주하지 마라.
뒤를 돌아볼 때이다.
오후 여섯 시에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였고, 오늘의 운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엄마, 오늘의 운세를 저녁에 알려 주면 어떡해요. 아침에 전화 하셨어야죠. 저는 이미 폭주 중이에요. 엄마와 나는 통화 중에 몇 번 웃었다.
이제 뭐 할 거니? 전화를 끊기 전에 엄마가 내게 물었다.
자전거를 가지러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1988년 서울 출생. 2010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하였고,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