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칼럼] 미친 펭귄 |김승일|

[11월의 칼럼] 미친 펭귄 |김승일|

130131_22_1_59_20130131191122이 펭귄은 미친 펭귄이다. 배트맨 영화에 나오는 펭귄처럼 미친 것은 아니다. 연쇄 살인범처럼 미친 것도 아니다. 미친 펭귄은 남극에 산다. 펭귄은 저 혼자 700Km 앞에 있는 설산을 향해서 걷는다. 거긴 서식지가 있는 곳도 아니고 먹잇감을 구할 수 있는 바다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 펭귄은 죽을 것이다. 남극에서는 자주 이런 펭귄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방향 감각을 잃은 펭귄들, 정신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펭귄들 귀엽게 걸어가는 펭귄들, 혼자 죽으러 가는 펭귄들, 왜 죽으러 가는지 알 수 없는 펭귄들.
다큐멘터리에서 미친 펭귄을 처음 본 날부터 나는 매일 미친 펭귄을 떠올렸다. 그게 벌써 몇 년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펭귄이 왜 죽으러 가는지는 비교적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펭귄이 설산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만 계속 떠오르게 되었다. 자기가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펭귄은 갑자기 멈추어 선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린다. 그리고는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간다. 그뿐이다.
올해 초부터 예술고등학교에 개설된 영재 교육원이라는 곳에서 중학생 애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명작읽기라는 수업이다. 애들이 책을 읽고 오면 어땠는지 물어보고 같이 토론도 하고 그러는 수업이다. 애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귀엽다고도 하고 멋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애들은 나한테 자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은 미친 사람 같아요. 선생님보다 미쳤겠어요? 선생님이 제일 미친 거 아니었어요? 그러면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친구들이 나더러 처음 그랬다. 너는 미친 사람이야. 만나는 사람마다 나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너는 미쳤어. 집에 갔는데 엄마가 울고 있었다. 애들이 왜 너보고 미쳤다고 하니? 체력장을 했는데 내가 제일 잘했어. 오래달리기를 하는데 내가 다른 애들보다 세 바퀴나 더 빨리 결승선에 도착했어. 내가 너무 미친 사람처럼 잘 뛰니까 애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그랬어. 엄마 나는 왕따도 아니고 인기도 많아. 반에서 반장도 하잖아. 나는 공부도 곧잘 하고 책도 많이 읽잖아. 엄마는 계속 울었다.
중학교에 갔는데 애들이 미쳤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갔는데 애들이 미쳤다고 했다. 대학교에 갔더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한 말이나 행동들을 돌이켜보았다. 이상하게 행동한 적도 있는 것 같았다. 자주 그랬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철이 들었나? 나는 예전보다 말도 덜 하고, 행동도 덜 한다. 그런데도 내 학생들은 나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그런다. 예전에는 누가 나더러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 가끔 기분이 좋았다. 가끔 너무 싫었다. 그리고 자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또 미친 사람이라고 그러는구나. 그뿐이다.
나는 이번에 <인신론>이라는 시를 썼다. 어떤 재앙이 일어났는데 무슨 재앙인지는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닌다.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아는 척 하는 사람도 없다. 인간들이 아주 순진하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그러던 중, 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어떤 머리 좋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내게 같이 사람들을 관찰하자고 제안한다. 그 순간 머리 좋은 사람의 머리통이 터져버린다. 나는 그것을 관찰한다. 나는 계속 길을 걷는다. 어떤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사람은 별로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머리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리통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머리 없는 사람이 자기가 신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기이한 사람이다.
열심히 썼는데 한 친구가 구절구절만 좋고 시는 별로라고 그랬다. 나도 그런 것 같았다. 뭐가 잘 안 된 거지? 그래서 시를 가지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꺼내 읽었다. 처음엔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왜 신이라고 주장하는지 알고 싶었다. 머리가 터졌는데 살아있으니까 자기가 신인 줄 아나? 아니면 진짜 신인가? 머리는 왜 없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런데 너무 자주 읽으니까 머리 없는 사람도 별로 기이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어떤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머리 없는 사람이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한다. 자기가 신이라고 그런다…… 그가 계속 내 머릿속을 걷고 있다. 종로 3가에서 종로 4가로 걸어간다. 그뿐이다.
학생들에게 미친 펭귄 얘기를 해줬다. 같이 펭귄 그림책을 만들자고 했다. 미친 펭귄이 산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각자 한 장씩 그림으로 그리고, 펭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그 밑에 조금 쓰면 된다. 그걸 모아서 책으로 만들자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을 했다. 수업 제목은 ‘명작에 나오는 미친 사람들’이었다. 모든 명작에는 미친 사람들이 등장한단다. 오이디푸스는 마부가 자기한테 욕을 했다고 마차를 뒤집어엎었어. 거기 탄 사람들을 모두 죽였지. 페드르는 자기 아들을 사랑했어. 음…… 선생님이 저번에 말했던 펭귄을 보여줄게.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컴퓨터랑 프로젝터가 좀처럼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기다렸다. 컴퓨터랑 프로젝터는 끝끝내 연결 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미리 연결해 놨어야 하는 건데. 오늘 영상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구요. 나는 학부모들에게 미친 펭귄 얘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하얀 칠판에 커다란 설산을 그렸다. 그리고 교실 끝에서 칠판까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펭귄처럼. 중간에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끝까지 걸었다. 칠판 앞에 서서 이소라의 노래를 하나 불렀다. 저는 이 펭귄을 보면 이 노래가 생각나요. “남다른 길을 가는 내게 / 넌 아무 말 하지 못했지/ 기다림에 지쳐가는 걸 다 알고 있어 / …… / 오늘 널 멀리하며 혼자 있는 날 믿어줘 / 내가 차마 네게 할 수 없는 말 그건 / 사랑해 처음 느낌 그대로” 나는 문학작품에 왜 그렇게 미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지도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참관 수업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이 귀엽네요. 펭귄 얘기가 좋았어요. 문학작품에 왜 미친 사람들이 나오는지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 하지만 애들하고 학부모들이 기억하는 건 펭귄 흉내 내는 선생님이다. 그뿐이다. 그뿐일까? 그뿐이면 또 어떻단 말인가. 내가 글로 쓸 수 있는 것도 단지. 펭귄을 흉내 내는 사람. 그 사람뿐이지 않은가.

[시인]

출생 1987년 (경기도 과천) / 나이 27세 / 데뷔 2009년 현대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