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문학실험실과 『쓺』 창간 | 세계일보 | 2015. 10. 13 |

∎ 한국문학, 상업주의적으로 흘러… 저항적 실험정신 되살려야
—조용호의 나마스테!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결국은 인류가 망하고 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너무 자주 듭니다. 한편으로는 사는 한, 남들과 얽혀서 살고 있는 것이니까 그 삶이 난장이 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의미 없이 그냥 살라 하면 약육강식 동물의 삶으로 가는 거니까, 없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라도 질적인 가치가 있는 삶을 추구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 이 세계의 무의미와 싸워야 한다’고 썼던 스승 김현(1942∼1990)의 생각에 대해 소설가 이인성(62)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이다. 이 세계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무서운 질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승이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그쪽으로 자신을 던지는, 일종의 내기를 건 것일지 모른다”고 부연했다.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문학’이어야 하는 절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은 근본적으로 언어를 사용해서 되풀이 생각하고 반성하는 걸 기본으로 하는 기록이고, 그 기록을 다시 보면서 세계를 그려보는 상상이 동원됩니다. 영상매체도 물론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세상을 느끼고 사유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시청각 매체는 테크닉이 더 발달할수록 압도적으로 그 기능을 소비하는 쪽이라면, 언어는 해독을 해야 하고 머릿속에서 앞뒤 짜맞춰야 하니까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사고나 상상을 조금 더 주체화시킨다고 할까, 그런 힘이 더 강한 것이죠. 문학이 이 지점에서 더 기여해야 합니다.”
이인성을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혜화로 ‘문학실험실’ 사무실이었다. 그는 올봄 김혜순 성민엽 정과리와 더불어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을 만들고, 지난달에는 반연간 순수문예지 ‘쓺-문학의 이름으로’ 창간호도 펴내면서 작금 피폐한 한국문학 판에서 적극적으로 실험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는 창간호 권두언에서 편집 동인들을 대표하여 “우리는 무엇을 쓸어내 버리고 무엇을 쓸어 모으려 하는가?”라고 자문하며 “이 시대의 문학 제를 거의 기능 정지시키다시피 녹슬게 만들고 있는 패배적 순응주의와 이를 합리화하려 드는 허위의식을 걷어내고, 그것을 다시 작동시키게 할 윤활유로서의 저항적 실험정신과 이를 밑받침하는 부정의 의식을 채우자는 것!”이라고 자답했다.
“패배주의란 문학도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허위의식이란 결국 그런 식의 상업주의에 편승하면서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태도를 지칭한 겁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명백하게 답이 주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시도하고 도전해야 하는 과정 자체를 실험정신이라고 본 거죠.”
한국문학이 너무 상업주의적으로 흘러 본격적으로 추구할 문학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인성이 나름의 구상을 하기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였다. 이 생각을 언젠가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지난가을 우연히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해 고심 끝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사학자 이기백(1925∼1974)의 장남으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을 13년이나 남긴 시점에서 2006년 교수직을 던지고 전업으로 소설 쓰기에 매진해왔다. 대학 시절부터 대학신문 문예 공모에 당선돼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그는 1980년 ‘문학과사회’에 ‘낯선 시간 속으로’를 발표하면서 본격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멈칫거리고 두리번거리면서도 정곡을 향해 언어를 정련해 깊숙이 파고드는 그이만의 문체와 작법은 쉬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스타일로 각광받았다. 그는 “진정한 문학은 눌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면서 “달변을 믿을 수 없으므로, 그것은 ‘저들’의 체계이자 함정이므로, 문학은 더듬거리며 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일찍이 첫 소설집 뒷표지에 명기했다. 더듬거리는 만큼, 서사보다는 언어를 붙들고 더 씨름하는 만큼 그의 소설이 독자에게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이야기는 사람이 가진 본능적인 자기 정리 방식이기도 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소설 속에도 이야기가 있지만 소설은 이야기를 언어로 특별하게 다루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루는 언어 쪽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서사보다 언어의 빛깔과 사유를 더 기대한다면 이인성의 소설은 분명 색다른 독서의 즐거움을 보장할 수 있다. 그의 글쓰기에 대해 비판하는 쪽도 만만치 않았다. 엄혹한 정치 사회적 환경이 도래한 1980년에 등단, 그 시절 내내 언어의 유희에 가까운 방법론을 선택한 그이에게 고운 시선이 꽂히긴 힘들었을 테다.
“욕 엄청 먹었죠. 예상을 하고 시작했으니까 상처받진 않았습니다. 언어가 구호는 될 수 있지만 구호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언어 자체의 갱신이 문학적으로 필요한 것 아닌가, 언어를 통한 사고나 상상 자체가 바뀌어야 길게 보면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아닌가, 비록 당장 사회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진 못해도 그런 것들이 쌓여나가면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의 힘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소설 쓰기에 환호하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만큼 그들의 충성도는 더 각별했다. 이인성은 “누가 뭐래도 당신의 소설을 좋아하기로 했다”고 전혀 모르는 독자가 군대에서 보낸 편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내 소설을 전혀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다면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면서 “문학을 하다 보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옆에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여름 신경숙 표절 파동을 지나오면서 대다수 문단인들이 겪었을 ‘심리적 실어증’에 대해 묻자 “참혹할수록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상실하고 있는 문학적 자의식, 작가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이인성은 답했다. 그는 후배 문인들이 “좁은 차원에서 자기 이야기 쓰고 원고료 받고 그런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면서 “그냥 팔아먹을 수 있는 것만 쓰라는 상업주의 영향이겠지만, 자기와는 다른 문학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관찰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고민들 대신 그냥 문학을 일종의 기술로 생각하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확대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독자와 문학을 어떤 식으로든 가깝게 연결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한쪽으로만 쏠리는 게 문제입니다. 사람이 아프면 아프게 만드는 조건을 바꿔야 하는데, 아프기 전 상태로만 돌려놓자는 게 지금 유행하는 힐링의 사고방식입니다. 근본적인 바탕을 바꿔야 합니다.”
더듬거리며 자주 뒤돌아보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배경에는 ‘소명의식’을 무의식으로 전수해준 부친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강 이승훈(1864∼1930)으로부터 이어지는 ‘계몽주의’ 학자 집안 출신 서울내기 이인성은 수더분한 촌사람 분위기였다. 돌아와 사진을 보니, 귀공자풍 우수와 자존이 눈매에 설핏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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