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꿈 속에서도 미안한 일 | 박상수 |

[10월의 칼럼] 꿈 속에서도 미안한 일 | 박상수 |

parksangsoo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줘요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
-신미나, 「오이지」 전문(『싱고, 라고 불렀다』)

    최근에 단비, 라는 이름의 아이를 알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다. 단비는 조용하지만 밝다. 자기 일은 스스로 잘 알아서 하는 편이다. 혈액형은 B형. 케이윌과 휘성의 노래를 좋아한다. 엄마는 전혀 모르지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소찬휘의 노래 〈Tears〉를 시원스럽게 부를 줄도 안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특히 극장판 <명탐정 코난>이 상영될 때면 빼놓지 않고 모두 챙겨봤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의학드라마. <싸인>, <골든타임>, 〈CSI〉와 같은 드라마와 ‘미드’ 보는 걸 좋아하다보니 한때 의사를 꿈꾸기도 했다. 최근에는 진로를 바꾸었다. 응급구조사. 지금은 종방되었지만 연예인들이 직접 119 소방대원 임무를 수행하는 예능프로그램 <심장이 뛴다>를 그래서 특히 좋아한다.
   단비는 뭐든 잘 먹는다. 어릴 때는 입이 짧았지만 크면서 편식이 없어졌다. 청국장, 고기, 치킨을 좋아하고, 특히 돼지고기를 썰어넣고 끓인 엄마의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잘 못 먹는 음식 중의 하나가 닭발이었는데 한번은 엄마가 시장에서 닭발을 사다가 갖은 양념을 해서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있다. 그 후로 닭발까지 잘 먹게 되었다. 친구들이랑 시내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면 그 집에 엄마를 다시 데려가는 아이가 바로 단비다. 집에서 가끔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
   자라면서 부모님 속을 썩인 일도 없었고 남들 다 거친다는 그 흔한 사춘기도 없었다. 딱 한 번, 부모님께 큰 걱정을 끼친 일이 있었는데 그게 중2 때의 일이다. 학교 끝난 뒤 친구네 들렀다 온다던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고, 겨우 친구와 통화가 됐다. 친구 말로는 자기 집에서 같이 놀다가 헤어졌다는데, 그 뒤로 아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엄마 아빠는 사방으로 단비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결국 실종신고까지 했다. 애를 태우며 그 밤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단비가 집에 돌아왔다. 알고 보니 부모님을 속이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온 것. 친구가 자기 집에 단비를 감추어주고 거짓말을 해준 것이었다. 단비는 일이 있기 한참 전부터 친구네서 하룻밤 자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아빠는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한 번 허락하면 습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모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서운한 마음이 더 컸으리라. 친구를 단단히 단속시켜 부모님 전화가 와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을 테고, 둘은 밤새 그 시절 여자아이들만 나눌 수 있는 비밀스런 수다를 떨며 깔깔거렸을 것이다. 문제는 다음날. 혼나기를 작정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온 단비를 보고 아빠는 뜻밖에,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온 가족을 데리고 갈빗집에 갔다. 가족들과 외식을 다녀온 이후로 단비가 다시 외박하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직장이 멀어서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두고 지낸다. 주말에만 집에 오게 되니 주중에는 아빠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단비가 엄마를 챙긴다. 장보러 마트에 갈 때 엄마 팔짱을 끼고 엄마와 동행하는 것도 단비다. 늘 엄마 옆에서 같이 잠을 잔다. 함께 누워서 잠을 청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남자친구 이야기도 한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남자 아이를 고1 때 사귀었던 이야기도 엄마에게 한 적이 있다. 남자친구가 자기 방 사진도 보여주고,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고 잔뜩 들떠서 엄마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단비가 중3 때 방이 두 개 있는 집에서 세 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자기 방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단비는 한동안 엄마와 따로 자기도 했다. 하지만 곧 다시 안방으로 와서 엄마와 같이 자게 되었다. 단비는 그런 아이다.
   하지만 단비는 이제 세상에 없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결국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몇 달 전 4월 26일은 단비의 생일이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단원고 2학년 10반 이단비를 알게 되었다. 사진속의 단비는 안경을 쓴 귀여운 얼굴, 작은 손으로 브이(V) 자를 그리고 있었다. 떠난 아이들의 생일날이 돌아오면 <치유공간 이웃>에서는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열어준다. 그때 아이의 목소리로 시를 적어 낭송하는 ‘생일시’ 순서가 있는데 그간 이 시를 쓰는 일을 여러 시인들이 해왔고 ‘생일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맡은 역할은 단비의 목소리로, 단비가 되어서 남은 가족과 단비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시를 쓰는 일이었다. 단비 어머님이 정리해주신 단비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단비를 알게 되었다. 시를 쓰는 며칠 내내 단비를 계속 생각했다. 걸어가면서도 눈앞이 자꾸 흐려졌다. 미안했다. 그냥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이렇게 생생한 한 사람이 지금 우리 곁에 없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그런데도 나는 썼다. 괜찮아요. 저는 잘 있어요. 엄마, 나 잘 있으니까 걱정 마…….
   얼마 전에는 단원고 교실에 다녀왔다. 2학년 아이들의 교실은 명예 3학년 교실로 바뀌어 있었다. 꽃다발, 사진, 과자, 음료수, 편지와 카드가 가득 쌓인 책상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열 개 반 교실 어디에도 예전의 그 아이들은 없었다. 꼭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데 아무데도 없었다. 3학년 10반을 찾아가 단비가 앉았던 책상에 앉아보았다. 단비가 살아있을 때 아침마다 꼭 챙겨 먹었던 것이 베지밀이었다고 한다. 아침은 안 먹어도 엄마가 꺼내놓은 베지밀 한 병을 마시고 학교에 갔다고 한다. 왔어요? 단비는 웃으며 나에게 베지밀을 건넨다. 미안하다. 꿈속에서도 미안하다.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서문학』에서 시로, 2004년 『현대문학』에서 평론으로 등단. 시집으로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귀족예절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