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칼럼] 굴뚝청소부 마이스터 | 진연주 |

[7월의 칼럼] 굴뚝청소부 마이스터 | 진연주 |

zinyeonzu실은 내가 그에게 갈 수도 있었다. 그는 궁핍에 물이 올랐다고, 도리 없이 궁핍하다고 말했다. 굴뚝청소부 마이스터인 그는 모든 게 도리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견습생으로 3년 일했고 숙련공으로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일했고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태어날 때부터 굴뚝청소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많은 길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는 왕자가 되는 행운도 대재벌이 되는 행운도 천재가 되는 행운도 누리지 못했다.
   비상출입구를 통해 사라진 아버지와 대피안내도 속에 갇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굴뚝 청소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번번이 돌아왔고 사라지지 않고 돌아왔고 사라질 수 없어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마구 망가뜨리며 비누칠을 했다.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힘을 주어서.
   많은 길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보다 많지는 않았던 길에서 그가 굴뚝청소부를 택한 것은 당연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에서 그가 매번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사라져버린 과거 생물들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었으나 과거로부터 가장 많이 물려 받은 것은 굴뚝청소부의 DNA였다. 더불어 그는 높은 게 좋다는 점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길은 굴뚝청소부의 것이었다. 그는 굴뚝청소부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먹고 꽉 끼는 옷을 입고 작은 신발을 신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굴뚝에 드나들기 좋은 몸집을 갖게 된 것이 그에게는 큰 행운으로 여겨졌다.
   그는 검은 양복과 검은 모자와 검은 구두와 검은 깃털이 달린 와이어를 입고 쓰고 신고 메고 굴뚝 위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더 이상의 슬픔은 없어. 난 아픔과 구원을 볼 수 있어. 그런 가사야. 그가 말했다. 나는 그가 굴뚝 위에서 Linkin Park의 「No More Sorrow」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오페라를 불러야 어울릴 차림새로 그로울링을 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떠올리기 힘들었는데 안타까웠던 것은 그 둘 사이의 이질감 때문이 아니라 그 노래에 위선자와 도둑과, 탐욕으로 인해 남용된 힘 따위의 가사가 끼어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른다는 데 있었다. 굴뚝 위에서 구원을 보려던 그는 사실, 있는 힘껏 위선자들과 도둑놈들을 외쳐댔던 것이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굴뚝으로 내려가. 그가 말했다. 그는 굴뚝을 타고 내렸다. 깃털이 굴뚝을 스치며 지날 때마다 검은 재와 검댕이 일어나 공중으로 흩어졌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목숨을 잃어버린 것처럼, 처음부터 목숨이라고는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쇼팽의 오선지 위를 가만히 걷는 달빛의 몸짓으로 굴뚝을 청소했다. 손에 힘을 뺀 채 깃털을 쥐고, 어깨의 힘이 팔목으로 손으로 깃털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채, 굴뚝 위에서 본 세상과 하늘을 상상하며 굴뚝을 청소했다. 그가 굴뚝으로 내려가는 횟수만큼 그의 폐는 검은 재와 검댕으로 두터워졌고 막힌 목을 그르렁거리느라 시도때도 없이 잠에서 깨어나야 했지만 날이 밝으면 또다시 굴똑 위에 올라 굴뚝을 타고 내릴 수 있었으니 그는 아침마다 깨어났고 그것에 안도했다.
   잎이 막 꽃처럼 피어나는 거야. 굴뚝 위에서 그가 말했다. 몇 개의 잎이 잎받침 안에 숨어 있다가 꽃처럼 밀고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만지고 싶은 것은 아코디언이야. 굴뚝 위에서 그가 말했다. 아코디언이 펼쳐질 때마다 사람이 피어나는 것 같다고, 비밀을 감춘 사람들이 피어나 비밀을 버리고 한 몸이 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가 추고 싶은 것은 탱고야. 굴뚝 위에서 그가 말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은 분수 같다고, 발산하고 수렴하고 멈추지 않고 그렇게 폭발한다고, 그래서 추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굴뚝 위에서 본 세상과 바람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 모든 말을 할 때의 그의 눈빛이야말로 꽃처럼 피어났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이 책은 내가 데리고 있다. 아직은 무사하지만 언제 땀에 절어서 쭈글쭈글해질지 모르지. 이 책을 구하고 싶다면 말린 망고를 준비해 놔라. 빌린 책을 미끼 삼을 정도로 그는 농담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한 농담으로 오래, 괴롭고 절망적인, 어쩌면 아름다운 편지를 쓸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힘들어. 그는 말했다. 자꾸 기우뚱한다고, 그래서 걷다가 멈추고 멈추고 멈추고. 평형이 사라졌고 이제는 평형이라는 낱말도 낯설다고. 사전을 찾아보니 분명 있는 낱말인데 아무래도 입에 붙지 않는다고. 평형은 원래 기우뚱이었을까. 그는 말했다. 평형은 기우뚱이어서, 검은 재와 검댕이 자꾸만 두터워져서, 이제는 굴뚝 밑으로 내려갈 수도 지상에 발을 붙이고 서 있을 수도 없는 게 아닐까라고 그는 말했다. 굴뚝으로 내려갈수록 궁핍이 커진다고도, 모든 게 도리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그가 굴뚝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던 것은 내려갈 굴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느 한 순간에 모든 굴뚝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었다.
   달빛을 흠뻑 맞으며, 굴뚝에서 날아올라, 종유석 같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자작나무숲을 지나, 가파른 산등성이를 올라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 자신의 시계를 멈추고, 다 닳아버린 세계를 지나, 자연의 질서를 거슬러, 살아있는 죽은 인간들의 세계로 몸을 날렸다. 몇날 며칠 비가 퍼부었고 서풍이 불어왔고 숲이 웅성거렸다. 아무도 그가 죽은 것을 몰랐으나 누구의 가슴도 아프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바람이 살아 있는 자들을 이끌었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의 영토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밤마다 흰 수의를 입고 죽음의 춤을 추었다. 아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이 세계에 분노했고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분노나 원망 역시 머지않아 서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가버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더불어 분노와 원망 속에서도 불필요한 언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에게 갈 수도 있었다.

소설가. 소설가.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등단.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