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문학상(2009) 심사평

심사에 앞서 우리는 오늘의 황폐한 문학 현실에 대한 탄식을 먼저 나눴다. 문학적 감수성과 감식안을 퇴화시키는 학교 교육, 문학적 가치를 가리지 못하고 소문을 쫒는 언론과 상업주의적 경쟁에만 휩싸인 출판계, 일회용 소모품이 되어 쇼를 벌이는 매문꾼들의 범람… 그러니, 그 그늘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진정한 자의식을 움켜잡고 문학적 사투를 벌이는 작가들을 찾아내고 힘을 북돋워주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다행히 그 나름의 개성과 역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결점들 또한 지적되었다. 이 사회의 치부를 신세대적 감각으로 드러내려던 시도가 자기 통제력을 잃고 황당한 통속 드라마처럼 변질되어버린 점(이홍의 <성탄 피크닉>), 우 형식을 통해 역사적 경종을 울리려는 기발한 착상의 에피소드들이 도식적 구도 속에 단순 나열되면서 장편 규모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점(김숨의 <철>), 뛰어난 인문주의적 자질과 감성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한 성찰이 깊이를 파지 못하고 감상주의에 묻혀버린 점(김연수의 <당신들 모두 서른살이 됐을 때>), 현실 비판적 의식의 과잉이 작품의 미학적 균형을 파괴하고 있는 점(전성태의 <이미테이션>) 등이 그 비판 내용이었다.
의외로 쉽게 수상작으로 합의된 한유주의 <막>에 대해서도 지적사항이 있었다. 일반 독자들의 눈으론 소설적 흥미를 찾기 힘든, 그래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러나 이 지적은 역설적 반전을 수반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독자의 보다 심화된 독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난해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때까지의 소설 독자들에게 주입된 그 현란한 이야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특이할 뿐인데, 거기서 새로운 미학의 문이 열린다.
<막>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이야기 과잉 시대에 그 “교묘하게 재단된” 이야기 자체의 진실성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라는 것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그 근원으로부터 어떻게 이야기가 짜여져 나오고 또 어떻게 풀어져버릴 수 있는가, 그 이야기의 요소들은 무엇이고 그것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질문들을 한정된 기차간 풍경 속에서 치밀하고 섬세하게 펼쳐나가는 이 작품은, 이야기를 거부하면서도 어떻게 소설이 구축될 수 있는지를, 그때 드러나는 소설의 다른 힘이 어떤 것인지를, 이 작가 특유의 암시적이며 음악적인 언어 구사(부정문의 효과적 사용은 특히 독보적이다)를 통해 경이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 적요한 아름다움이라니!
소설 이전의 소설인 동시에 소설 이후의 소설인 이 작품이, 한국문학이 도달한 또 하나의 성취로 향유되고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김치수, 이인성, 임철우 (대표집필: 이인성) [한국일보, 2009.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