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발제

― 내 작품을 말한다?

나는 대학에서 프랑스 연극을 전공했고 파리에서 1년간 체류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해서는 늘 각별한 친근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소설가’의 자격으로 지금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은 몹시 어색하기만 합니다. 나는 극동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에서 사용 인구가 1억 명도 되지 않는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언어나 역사적 배경, 삶의 환경과 방식이 너무도 다른 프랑스의 독자들과 과연 어떤 문학적 대화를 나눌 수 있을런지요? 프랑스어로 번역되긴 했지만, 내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가 과연 이곳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더구나 작가란 대개 작품 그 자체로 독자와 소통되기를 원하는 존재라서, 주최 측이 희망하듯이 내가 내 작품에 대해 2차적인 언어로―일종의 메타언어로― 말하는 것처럼 난감한 과제는 없습니다.
뭐랄까, 나는 지금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데도 뭔가를 말해야만 하는, 일종의 궁지에 몰려 있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와 있는 이상 피할 도리가 없으니, 어떻게든 용기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용기는 우정에 근거해 내 작품을 읽어준 몇몇 프랑스인 친구들의 반응에서 비롯됩니다. 그 반응들은 분명 어떤 소통, 더 나아가 교감의 증거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 작품의 번역자들과 나눈 교감의 사례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번역이 곧 총체적 교감이었다고나 할는지요. 특히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프랑스인 공역자와 나눈 그 길고 깊은 교감의 과정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리하고 섬세한 문학비평가이기도 한 그―이 자리를 함께 해주신 장 벨맹-노엘 씨입니다―는 한국어를 모르는 채 한국인 번역자를 돕는 입장에서 번역에 참여했지만, 점차 내 작품과 한 몸이 되어가듯 그 작업에 온 정성을 쏟았는데, 감히 말하자면, 그 과정에서 그와 나 사이에 이루어진 여러 방식의 소통을 통해 내 작품은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번역은 물의 거울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문학 텍스트와 그 번역 텍스트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의 간극으로 인해 끊임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어떤 유동적 의미의 물결들이 출렁거립니다. 작가는, 그 흐르는 물결 위에서 불분명한 형체로 흔들리지만 이제까지 몰랐던 자신의 또 다른 얼굴, 얼굴 뒤의 얼굴을 얼핏얼핏 바라봅니다…

번역자들이 내 소설에서 주목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글쓰기(écriture)’ 자체였으므로, 거기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나는 번역이 흔들리는 의미의 공간이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번역 이전의 내 소설이 이미 의미를 흔드는 ‘글쓰기’의 공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본질적 의미로부터 유배된 어떤 결핍의 상태, 의미의 “지속적인 동요 속에서” “실재가 흔들리고” 있는 상태를, 내 소설이 펼쳐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번역자들의 비평적 안목 덕분에 내 소설이 존재 이유를 부여받은 것은 대단히 기쁘지만, 솔직히 고백컨대, 내가 그런 소설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첫 소설『낯선 시간 속으로』을 쓰던 무렵,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쓰고 있는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써야 하는 것이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써져야 할 것을 기다리며 썼던 것일까요?
한참 후에야 내 머릿속에 정리된 주관적 견해를 밝히자면, ‘작가’란 원래 자신이 잘 모르는 세계를 자신이 잘 모르는 글쓰기 방식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상상의 미로 속을 헤매는 존재인 듯합니다. 잘 아는 세계를 잘 아는 방식으로 쓰는 것은 상상력의 몫이라기보다 지적 능력의 몫입니다. 잘 아는 세계를 잘 모르는 방식으로 쓰려는 시도는 허영이나 속임수의 소산이기 십상이고, 잘 모르는 세계를 잘 아는 방식으로 쓰려는 시도는 마치 부조리한 것을 조리 있게 설명하려는 것과 동일한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언젠가 베케트(Beckett)는 “혼란에 적합한 형태를 발견하는 것, 그런 것이 오늘날 예술가의 임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혼란이든 전혀 다른 질서든,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들은 그것에 눈을 뜨게 만드는 어떤 새로운 형태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언어의 어둠을 더듬거리며 그 끝을 향해 다가가는 자, 그가 바로 작가가 아닐까요?
작가로서의 나는, 내 안에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차 들끓고 있는 무엇인가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이 될지도 모르는 채, 막막한 심정으로 써보고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쓰고 하는 반복의 과정을 한없이 살아갑니다. 나이를 조금 먹다보니 힘들어 죽을 지경이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지극히 사소하고 사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내가 메모를 하거나 초고를 작성할 때 유독 의문문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의문문만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는 계속 물음표를 지울 수밖에 없었으나,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내심 내가 쓰는 모든 긍정문도 물음표를 품고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요즘엔 무슨 오기가 났는지, 언젠가 의문문만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작은 소설을 써볼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지워진 물음표들이 “실재의 흔들림”과 관련되어 있었을까요?
아무튼, 그 반복되는 물음표들이 내 소설의 서사 방식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각각의 문장들이 행위―외형적이든 내면적이든―의 최소 단위들이라면, 물음표는 그 행위들의 연결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행위들 사이의 인과론적 관계를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야기의 진행이 거부되어 자꾸 원점으로 되돌려지거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가능성을 두고 복수의 이야기들이 증식하며 중층화됩니다. 당연히, 이야기들이 제각각 흘러가는 길들에 따라 화자도 여럿으로 갈라지며 다성화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의 상황에 여러 목소리가 들릴 수 있으니, 일종의 혼돈(chaos)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혼돈은 일면 바쿠스 축제와 같은 것이어서, 술에 취한 듯한 환상을 불러들입니다(한 한국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고통의 축제”라고나 할지요). 프랑스인 번역자가 말하는 “일상적 환상”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컨대, 내 소설들은 대체적으로, 하나의 절대적 진실로 수렴되지 못하고 분열하는 이야기들이 일상적 환상의 변주곡들처럼 조각조각 연주되면서 접속곡처럼 이어져 흘러가는 듯합니다. 이 점을 나 스스로 의식하게 된 것은『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쓰는 과정에서였는데, 그래서 이 소설은 그런 면모를 적극적으로 형태화시킨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때 나를 정면으로 사로잡고 있던 것은 광기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 논리를 부여하기 힘든 수많은 삽화들, 퍼즐 조각들이 내 앞에 널려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과연 무엇으로 짜 맞출 것인가? 다름 아닌 시였습니다. 논리를 대신하여, 자유로운 비약과 깊은 몽상을 허락하는 시! 그 순간, 주인공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어떤 서사의 형태가 가능할 것인가? 그건 시적 이미지들의 서사였습니다. 행동(action)의 서사를 대신하여, 이미지들이 운동하며 전개하는 서사! 그러자, 이야기 조각들의 첫머리마다 시인-화자가 질투하는 시들이 내걸리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덧붙이겠습니다. 시적인 것에의 탐닉은 언어 그 자체에의 탐닉과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나는 내 소설의 언어가 다른 무엇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육체적 생명체가 되기를 꿈꾸며 그 가능성을 이렇게 저렇게 실험해 보곤 합니다. 그런 꿈 자체가 내 독창적 발상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이 유구한 문학의 역사 속에서 그럴 리가 없지요). 그러나 나는 그런 꿈을 실현하는 나만의 실존적 방식을 어떻게든 찾고 싶습니다. 내 텍스트가 “언어에 성적인 힘을 부여하려는 의도(l’intention d’érotiser le langage)”를 “실천에 옮긴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프랑스인 번역자는 나의 그런 욕망을 눈치 챘던 것 같습니다. 뭐, 그걸 들킨 것이 그리 싫지는 않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내 육체적 언어로 독자를 끌어안고 싶으니까요. 그것도 열정적으로! 다만, 그러기엔 너무 초라하고 앙상한 내 언어의 육체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독백하듯 혼자 중얼댄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프랑스 2011년 5월 4~6일에 프로방스 지방의 세 도시(엑스-앙-프로방스, 아를르, 아비뇽)에서 열린 한국문학 포럼을 위한 발제문으로 작성되었으나, 행사 방식이 변경되면서 공개석상에서 발표되는 대신 인쇄물로 제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