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사포의 향낭 | 윤경희 |

[3월의 칼럼] 사포의 향낭 | 윤경희 |

yoonkyunghee   사포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명성은 실제 시를 접한 독자들의 감상보다는 그녀를 둘러싼 신화적 풍문에 의존해왔다. 사포의 시에 대한 칭송과 전기적 정보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헌에서부터 단편적으로 등장하지만, 파피루스에 기록된 상당량의 시는 20세기 초반에야 발굴되었다. 풍문의 내력은 수천 년이건만 실질적인 독해의 역사는 백 년 남짓뿐. 사포에 관한 사실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출처를 따지지 않은 호사가적 방담은 물론이고, 회화, 소설, 영화 등 그녀의 이름과 이미지를 차용해서 통념을 재생산하는 잡다한 2차 저작물들도 걷어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고전 문헌을 직접 해독하고 점검한 학자들의 신뢰할 만한 의견을 종합해보면,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사포에 관해 어떤 것도 사실로 확정할 수 없다. 생몰년도, 친족 계보, 사인, 게다가 명성의 요체인 성적 지향까지. 엄밀하게는 시도 그렇다. 사포의 시는 리라 반주의 노래였는데, 당대의 채록물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그런 게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사포 시를 기록한 매체는 파피루스, 양피지, 토기 파편으로, 대부분 시인의 사후 몇 세기가 지난 다음에 만들어졌다. 무수한 구전 세대를 거쳐 겨우 안착한 문자들이 시의 원형을 보존했으리라고 전제할 수는 없다.

   시는 과연 문자로 안착했나. 파피루스는 낡아 해졌고, 양피지는 누렇게 바래 찢어졌고, 항아리는 깨졌다.

   풍문은 문자의 일부를 문자 그대로 믿고 싶은 마음에서 나와 퍼진다. 시 속의 목소리가 자기를 주어로 노래하니 그녀는 시인 자신일 테다. 시 속의 남매와 딸은 시인의 실제 혈육이었을 테고, 여자들을 아름다이 부르니 연인일 테다. 저명한 문헌에 시인의 가계도 몇 줄이 나와 있으니 받아들이자. 거기서 친부로 추정되는 자 이름을 여덟이나 꼽은 사실에는 눈 감아버리고.
   일부를 전체로 믿어 속는 마음은 그렇게 천진한 착시와 맹안에서 비롯된다. 넝마쪼가리에서 여사제의 예복을 보고, 와륵 한 조각으로 웅장한 사원을 건설해내며, 필사한 낱말 하나에서 영혼을 유추하는. 복원의 쾌락을 모를 리가 있겠나. 그럼에도 사실은 무엇인가. 무엇이 사실인가. 너덜하게 풀린 솔기와 구멍이 사실이다. 모서리의 결이야말로 사실이다. 사실은 잉크가 지나간 자국이다.

   복원의 심미안은 잠시 잠재우고, 돌이킬 수 없이 잃은 게 있으니 그것 이후를 살아 읽으려 한다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사포 파피루스가 아홉 두루마리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한 두루마리에 1300여 행이 적혔다 하고, 도합 10000여 행 중 오늘날 남은 것은 650행이다. 완벽하게 보존된 시는 단 한 편, 나머지는 전부 파편들. 그 외 고전어 문법서나 시작법서 여기저기에 필경된 인용문 몇 개, 당연히 전부 파편들. 2013년에 새로 발견한 파피루스 몇 점. 한마디로, 한줌만 남기고 다 바스러지고 다 사라졌다. 외국어 부스러기 앞에서의 심리적 바리케이드를 넘기만 하면, 현존하는 사포 시를 다 읽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시가 낡는 것은 시간. 시가 삭는 것은 습기, 불, 좀, 곰팡이. 하지만 이런 것들만 시를 망가뜨릴까. 독자 앞에 갓 쓴 시를 가져다준들 그는 그것을 부술 것이다. 읽어가며, 읽은 것을 잊어가며, 몇 편의 인상과 몇 개의 낱말만 남아, 감상과 숙고를 구실로 몇 줄을 오려 베끼며. 읽기는 사실상 강력하게 파괴적인 행위다. 게다가 시인도 자기 시를 온전히 기억할지는 회의적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의 파괴는 기억술과 구전의 시대 이후 점점 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문자는 결코 시를 안착시키지 않는다. 시는 기억의 도구이자 대상으로서의 위상이 점점 약해지고, 기억의 책무에서 점점 자유로워진다. 시는 파괴 취약성을 내장하며, 정형의 완결보다는 지속적인 파괴의 국면마다 잔존하는 것들의 배치에서 미를 구한다. 그리고 그 배치는 복원을 목적하지 않는다.
   단일한 재질의 어떤 기록물이 수 천 년 동안 각종 물리적인 자극에 노출되어 점진적으로 마멸해왔을 때, 용케 잔존하는 쪼가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지, 그 부분의 내구성이 비교적 강해서라거나 그 위의 말들이 삭아 사라진 말들에 비해 특별히 유의미해서가 아니다. 그 무상한 자의성 때문에라도 사포의 시편들은 파피루스나 양피지 이미지와 함께가 아니라면 제대로 감각할 수 없다. 심각하게 파손된 동식물성 기록물은 희랍어 문맹자의 눈에 나무껍질 화석, 고지도 속의 군도, 무념무감의 상태에서 뜯어낸 굳은 살, 염습의 베처럼 보이기도. 나아가, 어느 번역본을 읽든, 행과 행, 낱말과 낱말 사이를 무심히 메우지 말 것이며, 공백의 절대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경각까지. 달리 말해, 이 생물성 잔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부서져 떠돌다 모인 말들인걸, 독자 마음대로 다시 헤집어 그러모은들 어떠랴, 파괴적 배치의 충동을 허용한다.
   파피루스와 양피지는 언어의 잔해이자 음악의 잔해다. 곡조도 잊히고 가사도 희미하게 지워진 고대의 노래에 우리가 여전히 매혹된다면, 그것은 언어에 남은 음악의 흔적이 어떤 정서를 힘차게 환기하기 때문이다. 몇 마디 읊조림에도 갑자기 심장이 고동치거나 온몸이 떨릴 정도로. 단숨에 향연 분위기를 돋우는 제신찬미가나 결혼축가가 특히 그런데, 장미, 사프란, 아니스, 유향, 몰약, 계피, 술, 병아리콩 등 맛있고 향기로운 것들이 키타라, 플루트, 리라, 캐스터네츠 반주에 맞춰 시편 여기저기에 풍성하게 흩뿌려져 있다. 이때 시들마다 험하게 찢겨나갔다는 사실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의 완벽한 원형을 다시는 읽을 수 없다는 서운함을 초월해서, 그것들이 정형에 옹색하게 갇히지 않고 제멋대로 활기를 발산해서 그런 양, 축제적 사치의 감각을 증폭시킨다. 운율이 유리 향수병처럼 깨지면서, 파편마다 어지러울 정도로 관능적인 말들이 난무한다. 현란하고 화려하다.
   파피루스의 풀려나간 격자 올에서, 양피지 표면의 주름에서, 무희와 들러리 처녀들의 사른거리는 치맛자락을 떠올리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시 자체에 직물과 의상이 유달리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파편들만 읽어보아도 사포는 옷의 감각이 월등한 시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예를 들어, 그녀는 섬세한 아마사 내의에 감싸여, 그녀의 옷자락을 보면 너는 설레고, 시골 소녀의 누더기는 미처 발목을 덮지 못하건만 너의 마음을 빼앗고. 누더기에서 시의 운명을 예견할 것까지는 없지만. 옷은 유혹한다. 헝겊 조각은 사랑을 촉발하는 매개물이다. 그리하여 이런 구절은 어떤가. 에로스는 자줏빛 클라뮈스를 두르고 강림한다. 클라뮈스는 마치 가리비처럼 자잘하게 주름지며 퍼지는 남성용 겉옷이다. 사랑은 옷을 입고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인용한 고대 문법서에 따르면, 클라뮈스라는 어휘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포라 한다. 사포를 옷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사물로서의 의복을 시의 감각적 소재로 삼은 데 그치지 않고, 의장의 언어를 발명하고 그것을 시가 되게 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옷을 입히니, 죽음은 헐벗어 애통해 하는 것. 아름다운 아도니스가 죽어갈 때, 아가씨들은 묻는다. 아프로디테여,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이까. 가슴을 쳐라, 그리고 너희들의 옷을 찢어라. 아가씨들의 찢어진 옷에서 시의 운명을 예견할 것까지는 없지만.
   의상뿐만 아니라 장신구도 마음을 홀리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머니의 머리를 묶었던 띠, 머리카락을 감싸는 너울, 머리띠를 고정시키는 핀, 내가 딸에게 줄 수 없는, 화관, 무지갯빛 샌들, 발목을 두르는 끈… 역시 찢어지고, 끊어지고, 떨어져나갔다.
   사포 시편들 중에는 우표만 한 파피루스 쪼가리에 문장은 고사하고 낱말 한두 개만 간신히 잔존하는 것들도 상당하다고 하여,

sappo_papirus

   치마
   목걸이

   아름다운
   그리고 옷은

   자줏빛
   양탄자들

   옷자락이 떨어지며

   이런 것들이 겨우 남았다. 누더기 위에. 넝마 위에. 떨어진 옷자락 같은 문자들이. 헐벗어.

   사포가 발명한 말 하나 더. 그뤼타. 고대 문헌에 따르면, 사포는 향료를 비롯한 장신구를 담는 주머니를 그뤼타라 부른다. 향낭이다.

   그것이 남았다.

문학평론가.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