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칼럼] 공중부양 | 김솔 |

[12월의 칼럼] 공중부양 | 김솔 |

kimsol   첫눈보단 숫눈이라는 단어가 더 인간적이다.
   – 숫눈: 쌓인 채 그대로 있는 눈
   모든 책은 태어나는 순간 헌책이 된다지만 당신의 삶에 이르는 모든 첫눈은 결코 당신부터 도착한 게 아니다. 당신의 정수리 위에 얼마나 많은 길이 있고 – 그 길 위로 비행기와 전파가 지나가고 철새와 전기가 지나가는데, 대부분의 길은 미로와 같은 구조여서 어느 고명한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를 살려낸다고 한들 그 처음과 끝을 찾아낼 수 없다 – 얼마나 많은 추억과 죽살이가 흘러가는지, 그리고 당신이 이웃보다 얼마나 낮은 곳에 살고 있는지, 당신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차라리 당신은 당신이 사는 곳에서 숫눈을 찾아내는 게 더 낫다.
   나처럼 역사와 예술 따위에 포섭되지 않는 비루한 사람조차도 당신의 머리 위로 매일 출근해서 오전 10시쯤 변기 위에 걸터앉아 경제신문을 읽는다.
   그러니까 상습 침수지대에 살고 있는 당신의 하늘에다 나는 매일 똥을 누고 있으니 당신이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고무통에 받아둔 빗물에는 나의 DNA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경제신문 1면에서 당신의 아들일지도 모를 사내가 구청의 구인게시판 앞에 서성이고 있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기사의 타이틀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대장의 움직임을 더욱 자극한다.
   “취직해서 장가 좀 가자.”
   그래서 나는 당신이 당신 아들에게 대물림한 외로움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신과 당신의 아내를 최근에 만난 것 같기도 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중풍으로 몸의 왼쪽이 완전히 마비된 채 ‘사단법인 장애인 권익신장회 강서지부’라고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고 등교 시간의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힘겹게 노란 깃발을 들어 올리고 있던 당신을 초면이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당신도 나를 알아보고 시선을 급히 돌렸던 게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투우장의 불친소처럼 내달리고 싶은 당신의 욕망을 알아 본 것이다. 욕망을 완전히 죽이지 않는 한 인간은 완전히 죽을 수 없다고, 적어도 당신이 스스로를 존엄한 인간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만큼 젊었을 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내는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출퇴근길에 무료로 나누어주는 신문을 건성으로 훑어 읽고 지하철 선반에 내려놓는 순간, 실은 신문을 올려두기 위해 선반을 바라보는 순간, 몽롱한 수면에서부터 물총고기처럼 날아오른 여자는 분명 당신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은 작은 키로 – 팔을 힘껏 뻗어도 선반에 닿지 않거나, 팔을 힘껏 뻗을 힘이 없어서 아예 선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 지하철에서 폐지를 줍는 일을 시작했을 리 없지 않은가.
   “아저씨, 저것 좀 내려줘요.”
   지하철의 목적지와 항상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당신의 아내는 회벽처럼 창백한 타인들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결코 오르지 못할, 당신의 아내의 팔이 결코 닿지 못하는 곳에다 나는 변기를 세우고 정화수 같은 물 위에다 점을 찍듯 매일 해우(解憂)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보다 행복한 건 결코 아니다.
   당신의 하늘에서 살기 위해 나는 지상에서 달리는 법을 포기하였다. 공포심에 붙들려 지상에 내려앉는 방법도 잊어 버렸다. 잃은 것들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저항하거나 타협하지도 못한다. 그저 노동을 위한 노동, 노동에 의한 노동을 하다가 나는 나와 내 가족을 소진해간다.
   그래도 가끔은 허기나 월급날을 확인하려고 유리창 밖을 내려가 볼 때가 있다. 그러면 평화상가의 옥상과 종로5가의 도로와 청계천 물길이 보인다. 그리고 흰 운동화를 신은 채 평화상가 옥상 위를 맴돌고 있는 남자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 남자도 당신의 하늘 위에서 산책을 한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당신의 아들이 구청에 공공근로 신청서를 제출하고 헛헛한 마음에 이끌려 청계천 물길을 헤엄쳐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이 당신의 발밑보다 더 낮은 것 같아 몹시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아들에게 당신의 하늘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비록 나처럼 매일 고층빌딩의 상층부를 청소할 수 있는 행운을 나누어줄 수는 없더라도, 공중에 잠시 머무는 능력을 지니게 해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원리는 간단하다. 몸을 공중에 띄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킨 뒤 영혼을 공중에 띄워 세상을 관조하는 방법이니, 망상을 앞세울 필요는 전혀 없다.
   합정역에서 홍대 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지나가다보면 오른쪽에 5층짜리 건물들이 여럿 보이는데, 그 중 2층 유리창에 ‘공중부양’ ‘축지법’이라는 문구와 함께 ‘인생상담’ ‘부부관계상담’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이 있다. 그곳에 들러 상담 받아 보길 추천한다.
   아직 취직을 못했으니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결혼을 하지 않은 자에게 ‘인생상담’이나 ‘부부관계상담’을 강권할 만큼 비도덕적이지 않다.
   세상과 절연한 채 수련하기 위해 대부분 유리창은 닫혀 있지만 가끔 환기를 위해서 유리창 몇 개가 열려 있을 때도 있는데, ‘공부상담’ ‘축생상담’ ‘인부상담’ 등으로 읽히기 때문에 자칫 목적지를 지나칠 수도 있으니 주의라고, 당신의 아들에게 그렇게 꼭 말해달라고, 소백산에서 30여년 수련하신 뒤 대중구제를 위해 하산하신 월령대사님이 묵언수행 닷새 만에 내게 말씀하셨으니,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이 광고문을 들고 찾아온 자들에겐 가입비의 10퍼센트를 할인해주는 특전을 베풀겠다.

 

 

1973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2014년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