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칼럼] 고통의 서사 | 이기호 |

[10월의 칼럼] 고통의 서사 | 이기호 |

leekiho   지난 봄, 무슨무슨 행사 참석 차 아일랜드 더블린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행사 중간에 그곳 작가들과 대담 프로그램도 준비된지라, 이런, 아는 체라도 하려면 제임스 조이스 정도는 읽어가야겠군 싶어, 부랴부랴 『더블린 사람들』도 읽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새로 들춰봤다. 그래도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아 오스카 와일드도, 사무엘 베케트도 속독으로 넘겨보았다(그러나 실제 대담 중엔 내가 읽어간 책들은 단 한 권도 거론되지 않았다. 걔네들은 이상하게도 자꾸 독자들에 대해서만 질문했다. 한국엔 책 읽는 독자들이 꽤 있니? 초판은 몇 부나 찍니? 하는 것들). 책만 읽으면 또 안 될 것 같아서 영화도 두 편 보았다(물론 그중 한 편은 『원스』였다). 그만큼 아일랜드에 대한, 더블린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한데, 거참, 가보니 별다른 게 없었다(후에 더블린에서 찍은 사진들을 몇몇 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돌아온 답은 이런 것이었다. “너, 춘천 갔다 왔구나?”). 건축물이 남다른 것도 아니었고, 풍광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날씨는 계속 우중충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이틀 사흘 계속 보고 있자니, 또 자연 이 나라의 역사가 떠올랐고, 지레짐작 ‘아하, 그래서 다들 이렇구나’ 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생각하기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촌놈들은 어딜 가나 꼭 자신이 짐작한 것을 확인하려는 버릇이 있어, 아일랜드 젊은 작가와 담배를 피우다가 말고 불쑥 이런 말을 꺼내고 만 것이다.
   “너, 보비 샌즈 아니?”
   그러니까 ‘보비 샌즈’는 내가 아일랜드에 가기 전 보았던 또 한 편의 영화, 스티브 매퀸 감독의 『헝거』에 나오는 실존인물이었다. 1981년 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의 리더, 교도소에 수감된 후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대해달라고 요구하다가,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지막 저항수단으로 단식 투쟁을 벌인 인물, 그리고 66일간의 단식 투쟁 끝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마는 인물. 나는 그의 최후를 다룬 영화를 세 번 되풀이해서 본 다음, 아일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 느닷없는 질문에 아일랜드 작가는 소리 없이 슬쩍 웃은 뒤, 두 손으로 ‘엑스’ 표 표시를 해 보였다. 그에 대해서 모른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았고, 그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였다(아일랜드 작가 역시 『헝거』는 보았다고 말했다). 보았으나, 말하고 싶지 않다. 보았으나, 말할 것들이 아니다……. 나는 ‘이 친구가 내 흑사병 같은 영어 발음 때문에 그러나?’ 그의 제스처에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후에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다 『헝거』를 만든 스티브 매퀸의 고약한 서사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 『헝거』는 러닝 타임이 1시간 30분 남짓이지만, 핵심 서사라고 할 수 있는 보비 샌즈의 단식 투쟁은 끝나기 20분 전까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교도소 내에서 그들이 겪는 폭력과 ‘안 씻기’ 투쟁들을 냉정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그저 보여줄 뿐이다(그 장면 장면들은 불규칙적이고 불연속적이다). 핵심은 ‘보비 샌즈’인데, 그리고 그의 단식인데, 이건 무언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감독이 서사적 배치에 실패한 것은 아닌가, 너무 ‘원인’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닐까. 나는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실존인물을 다루는 서사 장르의 경우, 우리는 은연중 연대기적 서술을 기대하고, 또 거기에 적응된 게 사실이니까. 그래야 인물에 대한 심리적 동조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스티브 매퀸의 『헝거』는 그런 동조 자체가 완고하게 차단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 동조 따위는 필요 없어, 자, 이 사람이 어떻게 말라 죽어가는지 똑똑히 봐두라고 친구.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니까……(그러고 보니, 이 영화가 왜 단식 투쟁을 이십 분 정도만 다루었는지도 알겠다. 이십 분만으로도 관객은 충분히 버거움을 느낄 터이니, 그 이상이면 대부분 극장 밖으로 뛰어나갔겠지). 스티브 매퀸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이 더 명백해졌다. 우리의 체험은 고통 속에 굶어 죽어간 보비 샌즈가 아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교도관들, 그 무기력한 방관자들의 내면과 합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보비 샌즈의 고통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고통은 느낄 수 있으니…… 그것이 더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그 통증이라도 최대치로 느끼라는 전언일 터. 아일랜드 작가가 내게 더 이상 ‘헝거’에 대해서, ‘보비 샌즈’에 대해서, 말하기 거부한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언어로서 말하는 것이 아닌, ‘서사’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감각으로, 오직 감각으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

   이 땅에서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46일 간 광장에서 단식을 이어나갔다. 그가 단식을 진행할 때, 이상하게도 이 땅의 많은 언론들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카운트다운을 하듯 ‘40, 41, 42……’ 숫자를 세어 나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몸소 실험에 나서기도 했다. 이 무작정 ‘결론’을 향해 내달리는 서사들과, 연대기에 몰두한 서사들은, 고통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위험하고 저열하다. 때때로 서사는 불규칙적이고 불연속적으로 진행될 때, 서사 자체가 말라비틀어진 종아리의 모습으로 변형될 때,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법이다. 특히나 고통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고통의 서사는, 필연적으로 동조가 아닌 체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972년 원주에서 태어났고,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김박사는 누구인가』,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등의 소설책을 펴냈으며, 현재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