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내 목소리는 따뜻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아 | 김지녀 |

[9월의 칼럼] 내 목소리는 따뜻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아 | 김지녀 |

kimjinyo    몇 개의 단어로 생활이 점점 단순해져 간다. 단순해지니까 이외의 것들에 무심해지고 무심해지니까 화초가 잘 자란다. 지금의 삶은 이전보다 바쁘지 않고 이전보다 풍요롭다. 동시에 이전보다 심심하고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빈곤하다. 김빠진 콜라처럼 달기만 하고 아무도 마시려하지 않는 검은 물이 되어가는 심정이다.
   자정의 밤은 거대하고 적막한 영화관으로 변한다. 어젯밤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her)」를 봤다. 영화는 아내와 별거 중인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가 ‘사만다’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캐릭터와 사랑을 나누면서 겪게 되는 인간의 감정을 아주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특히, 목소리가 얼마나 섹시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따뜻하고 또 얼마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방식이 매력적이었다. 무뎌진 내 몸의 감각들이 살아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들어주는 귀 없이 혼자 말하는 꼴이 생각보다 쓸쓸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재생 버튼을 눌러 보았다. 내 목소리 속에 배여 있는 아침은 참, 안개 낀 창밖 같구나. 섹시하지도 따듯하지도 분노도 기쁨도 없는 그렇다고 고요하지도 않은 목소리다. 목소리는 잘 늙지 않는다는데, 내 목소리는 기력이 쇠한 노인의 그것보다 힘과 열정이 없다. 방충망에 매달려 크게, 크게, 우는 매미에게까지 진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만으로 상대의 기분을 금방 캐치하곤 했던 나였다. ‘괜찮아’라는 말이 정말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은 건지 구별해내고 상대의 말을 세심히 들어주던 나였다. 그건 그만큼 내 목소리에도 예민했다는 뜻이다. 상대에게 상처 혹은 명령이 되는 목소리는 아니었는지 반성하고 염려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나는 내 목소리는 진공상태처럼 떨림이 없게 되었을까? 어쩌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 모두 진부한 막장 드라마의 대사처럼 들리게 되었을까?
   사실 최근에 더 심해졌는데, 혼자 집에만 있는 것이 좋다. 갓 볶은 커피콩을 빠가각 빠가각 갈아 향을 즐기고, 말러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브라더 포의 음악을 듣고 대층 끼니를 때우고 먼지를 닦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책의 제목들을 훑고 이런 일들의 반복이 좋다.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내 목소리도 밖으로 흘리지 않는 것. 이것이 몇 개의 단어로 생활이 단순해진 이유이다. 이런 생활들이 쌓여 나의 세월이 되겠지. 세월호처럼 어이없이 바다에 고꾸라져 버리거나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그런 세월이 아니길, 아침에 들은 내 목소리를 들은 후 이런 생각으로 오늘은 좀 복잡하다. 이러다 나도 멀지 않은 날에 ‘테오도르’처럼 인공지능 운영체제 캐릭터인 ‘로지’(이 순간 떠오른 이름이다)와 대화를 나누며 섹스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수다 떠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를 알기에, 내 전화에 친구는 조금 놀란 듯 했다. 어쩐 일이냐고 한다. 그 말에 왠지 얼굴이 붉어진다. 밥은 먹었냐고, 몸은 어떠냐고, 친구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나도 따뜻해진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늦은 점심을 챙겨 먹는다. 흰 쌀밥이 그 어떤 초콜릿보다 달디 달다. 그 힘으로 이번엔 좋아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밥은 먹었냐고, 요즘 아이들은 잘 크냐고……

 

1978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2007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고, 시집 『시소의 감정』, 『양들의 사회학』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