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책, 빌려주고 기다리고 | 이이체 |

[6월의 칼럼] 책, 빌려주고 기다리고 | 이이체 |

yiyiche1누가 빌려간 책에 대한 감정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야속함일 것입니다. 책을 자주 선물하는 나로서는, 아끼는 문장을 떠올리면 수많은 이유 가운데서도 유독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 야속함을 늘 꺼내게 됩니다. 책이라는 진부한 선물을 굳이 고르는 까닭은 좋은 책이 많기 때문이기도, 좋은 책을 같이 읽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탐날 만한 책을 미리 진상해두는 습관으로써, 부디 내 책을 탐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묵언 속에서 조심스럽게 건네기도 합니다. 책을 주거니 받거니 빌려 읽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이겠습니까마는, 책을 빌리곤 저 스스로 먼저 잊는 벗들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책을 빼앗긴다는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 책을 빌려주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우습게도 그 관계에서 책을 빼앗는 주체는 없건만 나는 그 책을 결국에는 빼앗기고야 맙니다. 그 책을 빌렸다는 사실을 그이가 잊음으로써 말입니다. 잊지 않은 자는 언제나 남겨진 채 기다립니다. 나는 잊지 않은 자입니다. 빌려간 자보다 빌려준 자가 기억해주어야만 하는 기묘한 수탈을 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겁니다. 이 몸부림은 어쩐지 그 책을 잃고도 내 안에 남겨진 문장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애달픕니다. 그 문장을 침묵으로 숨기려니 불편하고 말로 내뱉자니 우스꽝스러운 것이, 바로 이 같은 모호한 슬픔 아니겠습니까. 나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빌려간 자들은 그것을 감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다림은 기억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빌려간 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기다립니다. 내가 기억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는 내 책을 빌려간 자들이 갖고도 잊은 내 책을 기다립니다. 나는 영원히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1988년 충북 청주 출생. 200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