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칼럼]  소회(所懷) | 김종호 |

[5월의 칼럼] 소회(所懷) | 김종호 |

kimjongho   가장 잔인한 4월로 기억될 한 달이 지났다. 무심하게 지나갔다.

   소설이나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그 질문이야말로 환상일 뿐이라고, 나는 늘 말해왔다. 마치 소설과 시를 쓸모 있는 도구라고 전제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십 년이 넘어가자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어쩌면 그것이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 생각도 꽤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생각들은 이제 망각 속에 묻혀 버렸다.
   쓸모없는 건 쓸모없는 것이다. 자꾸 그것을 꺼내 만지고 벼려내려 하지만 어떤 쓸모를 가질 것 같지는 않다. 의미를 의미화하는 것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뭐 이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할 수도 있고 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생략된 것들, 멀리 돌아 나가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일이 논증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어떤 어색함이 있다. 문장들은 조각나고 흩어지고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문학을 담배 끊듯 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좋고, 뭐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 좋다. 흙을 만지고 호미로 풀도 긁어주고 북도 주고, 그렇게 길러 낸 감자 한 알보다 더 가치가 없는 문학이라고 말해놓고 보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남들은 끈기도 없고 능력도 없으니 쉽게 포기한다고 혀를 찰 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와 보니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많고 쓸데없이 정력을 허비할 일이 없으니, 이 맛을 보지 못한 자들은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나을 것이다. 기껏해야 표현될 뿐인 글쓰기가 표현 되어도 좋고 아니면 그만인 셈이다.
   욕망들은 소실된다. 그 욕망이 나의 것이었는지 당신 것이었는지, 도시의 것이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내가 바뀐 것일지도 모르고, 그저 어떤 쳇바퀴에서 잠시 나온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대로 놔두고, 흙을 만지고 나무를 만지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그것들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일이 더 소중해졌다.
   나주에 내려 온지 일 년이 지났다. 얼마 전에는 다리를 절룩거리는 밤의 짐승이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다시 돌아갔다. 이 어린 짐승의 무연한 눈빛을 엊그제 상상하고는 조금 울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그 눈빛을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입을 조금 달싹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한 달이었다.
   모든 것들이 나의 말수를 줄이고 있다. 나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생(李生)이 했던 말이다. 소회(所懷)는 있지만 후회는 없는 날들이다.

 

1970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검은 소설이 보내다』, 『산해경草』, 『인어공주 이야기』를 펴냈다.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