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시 재수록] 한없이 낮은 | 최하연 |

[헌시 재수록] 한없이 낮은 | 최하연 |

선생님, 오른쪽으로 꺾으면 섬입니까
모텔입니까
까마귀의 궁리입니까
이제 길의 끝은 다 물이어서
당신의 눈망울을 닮은 안개는
홀수 길과 짝수 길을 지우고
고래, 사슴, 암소와 나선형의 소용돌이가
‘이별의 순서’를 기다립니다
선생님, 왼쪽으로 돌아가면
바람에 뒹구는 부처의 얼굴입니까
누구의 무덤입니까
다 해진 관음의 뒤태입니까
채울 수도 없고 채워지지도 않는
술잔입니까
아침의 끝은 다시 아침이어서
꿈은 버석거리고
길은 밤마다 저 혼자 자라나봅니다
선생님 모쪼록
오른쪽으로 꺾으면 섬입니까
혼자 바위입니까
어떤 선조의 눈보라입니까
선생님

    

* 제목은 이인성 소설집 『한없이 낮은 숨결』에서 따옴.
* ‘이별의 순서’는 이인성 선생이 개인적으로 편집하고 구워 주변에 나눠준 노래 씨디들 중 하나의 제목.

 (『문학동네』, 2014년 봄호 수록)

 

1971년 서울 출생. 2003년에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피아노』, 『팅커벨 꽃집』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