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신작시] 집들이 | 윤병무 |

[봄맞이 신작시] 집들이 | 윤병무 |

겨울, 집 팔고 전세로 이사했네
버려도 버려도 가득한 짐들
짐들의 꽃
책상을 거실 가운데 자리 잡았네

    

첫 손님은 열 시에 찾아온 햇빛
내 맨발 옆에 햇살이 앉네
안녕하세요 차를 차려놓듯 공손히
왼발을 햇볕에 내놓네
홀로 혼혼한 우주를 건너온 다스한 손님
발등의 강줄기 같은 푸른 혈관이 부푸네

    

일제히 하늘을 겨냥한 활대 같은
세탁소용 옷걸이에 매달린 빨래들
하루를 지탱한 양말이 마르고
불면에 주름진 잠옷이 마르고
식은땀에 젖은 런닝구가 마르네

    

장미보다 안개꽃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지 함박눈 내리는 날
빨래 걷어 입고 걸어볼까

    

그러고 돌아온 눈 그친 밤
아득한 곳에서 달을 빌려
손톱무늬로 갈아입은 해의 달빛을
이불 삼아 끌어 덮고 잘까

    

우리 집 놀기 좋아 아침에 온 손님이
밤에는 달빛으로 또 찾아와
아예 묵고 가네

 

1966년 대전 출생. 1995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5분의 추억』, 『고단』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