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신작시] 익산 주먹 | 서효인 |

[봄맞이 신작시] 익산 주먹 | 서효인 |

 

    눈을 뜨면 고향일 것 같아, 꿈은 대부분 이뤄지지 않고 기차는 진작부터 천천히 달렸다. 이리가 고향이라는 선배는 죽을 때까지 맞아본 적이 있느냐 물었다. 선배는 일제 때부터 있었던 곡물 창고에서 한가마니에 담긴 쌀 알갱이만큼 두들겨 맞았다. 눈을 뜨면 죽었을 것 같아 꼭 눈을 감고 있었지. 다시 눈을 감았다. 익산을 넘어가면 매 맞는 자의 멍한 슬픔이 조곤조곤 말을 걸기 시작한다. 여기부터 남쪽이야, 얼마나 맞아봤어. 도로 눈을 뜬다. 눈을 감으면 죽을 것 같아 부릅뜨고 지켜온 시간이 있다. 그곳이라면 누군가를 죽기 직전까지 때렸던 사람들이 선량하고 맑은 이웃으로 잘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싶었다. 눈을 뜨면 고향일 것 같아서, 눈을 감고 비옥한 매질을 온통 참아내고 있을지 모르고, 마른세수를 하는 내 두 손바닥이 이리처럼 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복수를 하는 꿈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심하게 맞았던 꿈은 곧잘 우리의 일이 되어, 곧게 뻗은 선로처럼 주먹에게 몸을 내어준다. 기차가 달린다. 진작부터 우리는 천천히 맞고 있구나. 아마도 일제 때부터 곡물창고였던 곳에 우리는 모여 멍멍한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한 채, 다음 역을 기다리지만.

 

 

1981년 광주 출생. 2006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 대전』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