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칼럼] 쿠바의 향 | 구광렬 |

[3월의 칼럼] 쿠바의 향 | 구광렬 |

kugwangyul   나라마다 고유한 것으로 치부되는 향이 있다. 보통 그것은 특산물이나 의식주 등 생활문화 아이템에서 비롯된다. 콜럼버스가 ‘지상의 낙원’이라 극찬했던 쿠바의 향은 어떨까.

   쿠바의 향은 일차적이거나 독자적이질 못하다. 후각적이라기보다는 청각적이며 청각적이라기보다는 시각적, 촉각적이다. 다음을 상상해보라. 왼 손엔 시가가, 오른 손엔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반질거리는 고물자동차의 핸들이, 발밑엔 통째로 굴러다니는 사십오도 럼주 병들, 찍찍거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살사, 룸바, 멜렝게에 맞춰 마구 흔들어대는 몸통들. 하지만 이 다분히 복합적인, 5+1채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비입체음향과 함께하는 HD 화면 같은 파노라마도 진정한 쿠바의 향을 뿜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쿠바의 향에는 오감으로 닿을 수 없는 사이버 향 같은 게 있다. 바로 핏줄 속 서로 다른 피톨들이 내는 피범벅 내음이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José Martí)는 혼혈이야말로 “쿠바의 본질(La esencia de Cuba)”이라 주창했다. 레오폴도 세아(Leopoldo Zea) 역시 혼혈은 “우리의 존재(nuestro ser)”, 그 자체임을 밝혔다. 하지만 쿠바에서의 혼혈은 백인 남성의 성노리개로서의 인디오 여성, 흑인 여성 간, 즉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 역사처럼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이뤄져왔다.
   쿠바의 국민시인 니콜라스 기옌(Nicolás Guillén)의 시엔 혼혈에 관한 것들이 많다. 기옌은 쿠바에서의 혼혈을 변증적으로 푼 바, 아프리카의 흑인을 정(正), 유럽의 백인을 반(反)으로 놓고 보면 합(合)은 물라토가 된다.

 

   가죽과 나무로 된 북과 뾰족한 뼈를
   창끝에 매달아 던지는 내 흑인 할아버지,
   회색 갑옷에 목에 두툼한 깃 장식을 두른
   내 백인 할아버지. 

   맨발에 돌 흉상의 흑인 할아버지,
   남극의 유리 동공의 백인 할아버지.  

   귀가 먹어버릴 징소리와
   습윤한 정글의 아프리카.
   아, 죽겠네(돈 파쿤도의 말씀)
   쿠바산 악어 카이만이 득실대는 늪지대,
   코코넡의 푸른 아침.
   아, 지겨워(돈 페데리꼬의 말씀)
   씁쓸한 바람의 촛불,
   황금에 불타는 범선……
   아, 나 죽어!(돈 파쿤도의 말씀)
   오, 유리구슬에 속은 처녀 목 같은 해안들! 
   아, 지겨워(돈 페데리꼬의 말씀)
   열대의 쳇바퀴에 갇힌 순전히 세공된 태양;
   원숭이들의 꿈 위에 뜨는 둥글고 흰 달!
   (두 할아버지의 말씀)   

   아, 그 많은 배들, 배들!
   그 많은 검둥이들, 검둥이들!
   사탕수수의 긴 광채,
   검둥이노예를 다루는 채찍!
   울음과 피의 돌,
   터진 혈관과 눈동자들,
   텅 빈 새벽, 궁리의 저녁,
   산산조각 내는 목소리,
   아, 힘 찬 목소리.
   그 많던 배들, 그 많던 검둥이들!
                   -니콜라스 기옌의 시 「두 할아버지의 발라드」 중에서

   위 시에서 돈 페데리꼬(Don Federico)는 스페인계 할아버지 즉, 친할아버지 쪽을 가리키며 돈 파쿤도(Don Facundo)는 아프리카계 할아버지 즉, 외할아버지 쪽을 가리킨다. 정과 반, 물과 기름, 채찍을 든 자와 채찍을 맞는 자 간의 결합. 그래서 그런지 기옌의 시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위 시에서처럼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트릴 듯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향은 후각적이다. 신체적으로는 코와 관련이 있다.’는 극히 당연해 보이는 글귀들이 쿠바에선 선듯 다가오질 않는다. 그 피범벅 내음, 혈관 깊숙이 잠겨있는 까닭이다.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나 멕시코 국립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울산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1986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를 통해 스페인어 시인으로 데뷔했으며, 한국에서는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5권의 스페인어 시집을 펴낸 그의 한국어 시집으로는 『불맛』,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슬프다 할 뻔했다』 등이 있다. 그 외에 장편소설『가위주먹』, 『반구대』 등과 산문집『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체의 녹색노트』 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