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언제나 첫 만남 | 조연정 |

[2월의 칼럼] 언제나 첫 만남 | 조연정 |

 choyeonjung 그리 길지 않은 글인데도 이 첫 문장을 쓰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매번 이렇다. 나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글을 써왔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나 이렇게 배워본 적 없는 일을 처음 하는 사람 마냥 막막해진다. 분명 쓰고 싶어서 쓰겠다고 한 글일 텐데 막상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할 말이 있기는 한 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첫 문장 뒤에는 어떤 문장을 이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들 마찬가지라고 한다. 근데 나는 정말로 나만 이런 것 같다. 절대 불가능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처럼, 실패가 뻔해 보이는 일을 무력하게 시도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불가능 앞에서의 자학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일인 것처럼, 글쓰기 앞에서 매번 이렇게 초라해진다.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만날 때마다 호감을 표시하지만 그때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는 말을 되돌려 받는 지인 아닌 지인을 마주한 듯한 무력감에 언제나 짓눌리는 것이다. 머릿속에, 가슴 속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다면,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밥 먹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백지를 채워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안 되니까 그냥 읽기나 한다. 읽고 있을 때 맘이 가장 편하긴 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차분히 정리해놓고 계획된 대로 글을 쓰기보다는 거의 대부분 우연에 따라 글이 완성되다 보니 예기치도 못했던 글이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내 안에서 넘쳐났고 그것을 누군가와 은밀히 나누고 싶어서 평론이라는 형태의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한 두 마디 툭툭 내뱉는 식의 대화에나 익숙할 뿐이지 누군가가 나를 주목하는 것도, 오랫동안 혼자서 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한 평소의 성격대로, 글에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서툴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대개는 담담한 척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을 나는 왜 하고 있을까. 써야 할 글이 있을 때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따로 있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며 시간을 다 보낸다.   
   그런데 왜 쓰고 있을까. 글을 쓰고 있을 때 가끔씩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연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거짓말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생경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쓴다는 행위가 그 자체로 나를 고양시키는,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체험이 되어왔던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주기가 꺼려지는 것은 그만큼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리고 내가 쓴 글이 내가 알던 나와 많이 다르게 느껴져서인 듯하다. 글을 쓰면서 가장 자주 느끼는 보람이 그저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 정도라고 한다면 너무 자기 충족적인가. 이렇게나 사소한 마음으로 이제껏 그 많은 지면들을 낭비해온 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글쓰기가 더 힘들게 느껴지고 어쩐지 쓰고 싶은 욕망도 예전 같지 않은 이즈음, 내가 나를 다 알아버린 듯 오만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가 나에 대해서조차 흥미를 잃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언제부터, 대체 왜, 나에게 흥미를 잃은 것일까. 내가 나를 다 알아버린 것 같다는 착각은 분명, 이제는 어느 정도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는 오만과 통해 있을 것이다. 나도 이 세상도 도통 내 맘 같지 않다는 반복되는 무력감이 방어적으로 이 오만을 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점점 커져만 가는 이 무력감과 오만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일밖에는 없는 것일까. 글쓰기에 대해 밥 먹듯 익숙해질 수 없다는 절망을 소중히 여기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나. 이 짧은 글을 쓰며 나는 또 돌림노래나 부르고 있다. 글쓰기는 왜 아직도 낯설까. 낯설기 때문에 써야 하는 것일까. 정말 글쓰기 어렵다…  

1977년 서울생.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현재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동중이다. 문학평론집 『만짐의 시간』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