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칼럼] 푸른 병 속에 담긴 채로 | 강성은 |

[9월의 칼럼] 푸른 병 속에 담긴 채로 | 강성은 |

kangseongeun오래전 기억할만한 어느 여름 오후. 장마철이었고 우리 가족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 위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찐 감자와 옥수수 같은 것을 먹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나와 동생들. 내가 몇 살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인 것으로 기억한다. 마당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것들이 꼬물거리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폭우를 피해서 지붕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채 눈도 뜨지 못한 빨간 생쥐들이었다. 우리는 생쥐들이 아주 느리게 겨우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빗소리 사이로 간간이 어른들이 갓 태어난 생쥐들도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겨우 비를 피한 생쥐들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자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마루를 내려가 한 손으로 냉큼 그것들을 잡았다. 그리고 바구니에 담아 어디론가 가져갔다. 며칠 후 나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몰래 들어간 광에서 그 생쥐들과 조우했다. 생쥐들은 컴컴한 광의 안쪽에 늘어서 있는 몇 개의 푸른 병속에 담겨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물속에 잠겨있었다. 나는 그 병을 들어 살짝 흔들어 보았다. 물이 출렁였고 생쥐들은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을 뜨지는 않았다. 나는 생쥐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생쥐들이 아프기 때문에 약을 먹고 치료중이라거나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인큐베이터 같은 것. 

   그 무렵 내겐 몹쓸 병에 걸린 친척 오빠가 있었다. 광수오빠. 그는 스물이 조금 넘은 청년이었는데 얼굴이 맑고 부드럽고 선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또 여자처럼 수줍음이 많아서 어른들이 걱정을 했다. 그런데다 병까지 얻어서 언젠가부터 볼 수 없었다. 아파서 누워있다고, 외출을 못한다고 했다. 그는 내 아버지와 매우 친했다. 나이 차가 꽤 많았는데도 그에게 형제가 없었던 탓인지 형제처럼 지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다. 한번은 아버지가 양봉업을 할 때 장마철 산 위에 저수지가 터져서 산 아래서 벌통을 지키고 있던 그가 휩쓸려 떠내려가서 죽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좀 엉뚱한 사람이었는데 학교선생이 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나와서 소, 돼지, 꿩도 키우고 실험실도 차려놓고 양봉업도 했다. 그러다가 망하면 다시 학교 몇 년 근무하고 다시 그만 두기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오빠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엉뚱한 일에 가담하곤 했다. 그리고 어린 나를 무척 예뻐해 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톱질해서 의자를 만들어주고 상자와 필통도 만들어 주었다. 무섭고 엄한 할머니에게서 나를 구해주는 것도 오빠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죽었다. 짧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첫 사람이었다.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할머니가 그를 위해 몹쓸 짓을 했는데. 할머니는 병속에 든 쥐들을, 그리고 또 더 많은 다른 약들을 구해다 주었다. 나는 그 병들이 모두 오빠네 집으로 가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용도인지는 몰랐다. 난 죽음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의 죽음이 내가 경험한 최초의 죽음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어른들이 울고 있을 때 그럼 오빠도 그 생쥐들처럼 푸른 병속에 담겨 눈을 감고 출렁이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죽음은 그런 걸 거라고. 푸른 병속에 담겨 있다가 언젠가 눈을 뜨고 깨어나는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오빠가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났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스승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 죽는 건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거야. 푸른 병속에 담긴 채로. 지금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