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칼럼] 그 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 김미월 |

[8월의 칼럼] 그 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 김미월 |

 kimmiwol두 명의 영국 신사가 인도의 외딴곳에 있는 차 재배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클리브와 제프리였다. 클리브는 우체부가 올 때마다 한 아름씩 편지를 받는데 제프리는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제프리는 클리브에게 편지 한 통을, 당시로는 상당한 액수인 5파운드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좋아.”
  클리브는 편지를 제프리 책상 앞에 늘어놓았다.
  “자, 마음대로 골라봐.”
  제프리는 우편물을 살펴보다가 작은 편지 한 통을 골랐다. 그날 저녁, 클리브는 지나가는 말로 제프리가 고른 편지의 내용을 물었다.
  “상관할 것 없어.”
  제프리는 대답했다.
  “그럼 누구한테서 온 건지나 말해줘.”
  제프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궁금해진 클리브는 계속 졸랐으나 제프리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언성을 높여 말싸움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보름 후, 클리브는 두 배의 가격으로 편지를 되사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제프리는 “절대로 안 돼” 라고 했다.

 

   이상은 서머싯 몸이 쓴 글 「두 영국 신사(Two English Gentlemen)」의 전문이다. 얼핏 읽으면 쓰다 만 것처럼 느껴지지만 몸은 더 이상 쓰지 말고 그대로 마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좀처럼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클리브가 끝내 읽지 못한 편지가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게 만약 정말 중요한 편지였다면, 그래서 클리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아니, 클리브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해도 편지를 보낸 이에게는 중요했을 수 있지 않은가. 클리브가 그것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신인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또 어떻게 하나.
   남의 일로, 심지어 실존 인물도 아니거니와 실존했다손 쳐도 이미 한 세기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이들의 일로 나는 전전긍긍했다. 나중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의 숱한 사라진 편지들을 걱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누군가 내게 보냈으나 어떤 사고로 내가 받지 못한 편지, 내가 누군가에게 보냈으나 어떤 사정으로 그가 받지 못한 편지, 세상에 그렇게 사라진 편지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다못해 내 집 우편함에도 벌써 여러 해 전에 이사 가고 없는 전전 세입자 앞으로 편지가 온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옳거니, 사라진 편지들에 대한 소설을 써보자 하고 나는 결심했다. 그 후로 꼬박 두 해가 지났다. 그런데도 나는 편지에 대한 그 어떤 소설도 쓰지 못했다. 쓰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다 말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 말이다.

 

   십 년쯤 전이던가, 겨울이었고 뉴욕이었다. 나는 순전히 추위를 피하기 위해 페리를 탔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내려서는 이리저리 발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그러다 그 조그만 섬 한쪽에서 웬 야구장을 발견했다. 야구 시즌이 아니라서 구장 주변은 조용했고 행인도 없었다. 나는 동서남북 출입문이 모두 봉쇄된 구장 주위를 일없이 빙빙 돌았다. 요행 반쯤 열려 있는 쪽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주위를 살펴보고는 그리로 슬쩍 들어갔다. 텅 빈 관중석과 새파란 잔디밭이 드넓게 펼쳐진 그라운드가 시야 가득 들어왔다. 멀리 전광판 뒤로 내가 조금 전에 배를 타고 건너온 뉴욕만이 보였다. 바다와 면해 있는 야구장이라. 이곳에서 홈런을 치면 공이 담장을 넘어 바다에 퐁 빠지는 것일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홈에서 1루까지 천천히 걸어보았다. 잔디가 폭신폭신했다. 사방에서 향긋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맨해튼에서 아주 조금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인데 피부에 닿는 기온이 확연하게 달랐다. 온몸으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나는 한겨울에 이 야구장 그라운드를 걸어본 한국인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그건 내 나라의 말이었다. 얼른 뒤를 돌아보니 척 봐도 한국인임이 분명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 멀리 전광판에 새겨진 문구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RICHMOND COUNTRY BANK.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리치몬드 컨트리 뱅크 야구장으로, MLB 뉴욕 양키스 구단 산하의 마이너리그 팀들 중 하나인 스테이튼 아일랜드 양키스의 전용 구장이었다.
   그녀는 야구장 매점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점심을 먹고 매점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단다. 우리는 매점으로 갔다. 나는 그녀가 권하는 대로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카운터 아래 선반에 그녀의 개인 소지품들이 놓여 있었다. 털모자와 장갑과 목도리와 성조기 문양이 들어간 동전 지갑과 ‘verizon’ 마크가 새겨진 휴대폰을 무심히 훑어보던 나는 앗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거기 놓인 시집 때문이었다. 그것은 오장환의 『병든 서울』이었다.
   병든 서울이라니. 윤동주도 아니고 김소월도 아니고 오장환이라니. 뉴욕 스테이튼 섬 마이너리그 야구장의 매점 카운터에서 예기치 않게 찾아낸 그 시집을 손에 쥐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책 좋아하시면 가지셔도 돼요.”
   나는 화들짝 놀라 시집을 선반에 내려놓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한테 똑같은 책이 여러 권 있으니까요.”
   아무도 오지 않는 매점에 마주 앉아 그녀는 내게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남자애가 있어요. 과 동기 중에서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였죠. 걔가 제 생일에 시집을 한 권 선물해주었어요. 백석의 『멧새 소리』였어요. 2학년 때도 시집 선물을 해주었지요. 그건 노천명의 『사슴』이었고요. 3학년 때는 걔가 군대에 있어서 제 생일에 선물을 주진 못했지만 나중에 휴가를 나와서 김광균의 『와사등』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4학년이 되었을 때예요. 제 생일에 걔가 휴가를 나왔어요. 우리는 교보문고 앞에서 만났지요. 걔는 밤늦게 헤어지기 직전 종이 봉투에 든 책을 내밀더라고요. 그러면서 말하기를 23번째 생일이니까 23번 시집을 사려 했는데 서점에 그 책이 없어서 24번을 샀대요. 대신 24번째 생일에 23번을 사주겠다나요. 전 그때 알았어요. 걔가 해마다 사준 책이 한국대표시인선집 100권 중 각각 제 나이와 같은 번호의 책들이었다는 걸요. 20번, 21번, 22번, 이렇게요. 저는 그것들을 책장에 순서대로 꽂아놓고도 몰랐던 거예요. 걔와 헤어진 후에 봉투를 열어보니 24번은 오장환의 『병든 서울』이더라고요. 아차 싶었어요. 하필 똑같은 책이 집에 있었거든요. 책 속지를 살펴보았어요. 웬일로 축하 메시지 같은 것이 안 쓰여 있었어요. 완전한 새 책이었지요. 그래서 전 교보문고로 갔어요. 그 시집을 다른 책으로 바꾼 거예요. 그런데 다음날 군대에서 걔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시집 읽었냐고 묻기에 저는 뜨끔했지만 읽었다고 했죠. 걔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끝까지 다 읽었냐고 물어요. 다 읽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또 전화가 왔어요. 이번에는 시집 맨 마지막 장을 보았느냐고 묻더라고요. 거기 편지를 썼다는 거예요. 저는 당황했어요. 그래서 아직 못 봤는데 곧 읽어보겠다고 둘러댔지요. 그러고는 교보문고로 달려갔어요. 사실 그 시집이 잘 팔리는 책은 아니잖아요? 당연히 그대로 있을 거라 믿었죠. 그런데 믿어지지 않게도 그 책은 이미 팔리고 없었어요.”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 그녀는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오장환의 『병든 서울』을 찾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헌책방에서 그 책을 보면 무조건 사다 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렇게 모인 책들이 모두 열두 권. 그러나 그녀가 찾는 책은 없었다. 그게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결국 저는 걔가 어떤 편지를 썼는지 영영 모르게 되었지요.”
   나는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녀는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시집 마지막 장에 편지를 썼다고 전화로 이야기하고 나서 며칠 후에 친구는 죽었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참 소설 같은 얘기라고 중얼거린 것이 나인지 그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때 나는 그 시집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메일 주소를 받았다. 혹시라도 귀국 후에 헌책방에 갔다가 그녀가 찾는 책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가 끝내 읽지 못한 편지, 그녀가 끝내 펼쳐보지 못한 시집의 마지막장. 거기에는 무엇이 쓰여 있었을까. 그 편지는 지금 어디에 있나.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언젠가 내가 정말로 그 책을 찾아서 그녀에게 보내줄 수 있다면, 그때는 ‘소설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소설’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1977년생. 고대 언어학과,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장편 『여덟 번째 방』등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