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칼럼] 목소리의 색감(色感) | 황혜경 |

[6월의 칼럼] 목소리의 색감(色感) | 황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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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을 전공한 작은언니와 여동생. 그들은 도자기를 빚고 그림을 그리고 공예의 여러 도구로 상상하던 것들을 뚝딱 만들어내는 재주꾼들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둘 사이에서 제일 먼저 색을 버렸다. 내가 그린 나무가 아주 볼품없어 보이던 그날,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별로 관심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그들이 그리 부럽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색들이 궁금한 걸 보면 그때 나는 다양한 색들을 잘 챙겼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백지 위에 조용히 생각을 꺼내 적어야 하는 나와는 반대로 큰언니는 늘 연주를 하거나 흥얼거리면서 곡을 썼다. 언니의 악기들에서는 소리가 났다. 반짝거리는 빛깔 같기도 했다. 나는 언니가 나보다 더 재미있는 걸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늘 부러웠다. 한동안 목소리의 색감에 대하여 생각이 멈추지 않을 때였는데 길을 걷다가도 물끄러미,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의 목소리에 여러 방향으로 색들이 번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오래 전에 적어둔 메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음과 색이 연합하는 그 순간을 설명한 문장.

    

F#은 정신적인 음이며 짙은 청색과 연합하고
C장조, F장조는 물질적인 음이며 적색과 연합한다
                          ―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음악과 미술에 관한 연구』 중에서

                     

    

  2

    “미술에서 색깔마다 느낌이 다르고 의미하는 게 다르듯이 음악에서도 고유음마다 느낌이 다르거든. 의미하는 바도 다르고. 음에도 색깔이 있다고 느끼는 음악가도 있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끼는 사람도 있어. 나는 음빛깔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지. 그래서 내가 미술에도 아주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봐. 미술전시회에 가면 뜻밖의 수확을 얻게 될 때가 있어. 새로운 느낌과 발상을 얻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야. 네가 옆에 있다면 음계 스케일을 들려줄 수 있을 텐데 답답하다. 음계를 들어보면 느낌이 오는데, 한번 소리로 들어보면 너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텐데 아쉽구나.”

 

 F#
계이름 ‘파’를 반음 올린 음.
흰 건반인 ‘파’의 오른쪽 바로 위, 검은 건반을 누르면 나는 소리.
정신적인 음과 짙은 청색, 물질적인 음과 적색. 그러나 나는 눌러보지 않고서는 소리를 짐작할 수도 없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문장이었다. 그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관현악적 색채’라고 언니가 말했을 때에도 나는 언니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악에서도 색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음악가. 음색의 합성보다는 강렬한 대비를 통해 관현악을 높은 경지에 끌어올린 사람. 특히 그의 오페라는 환상과 유머가 넘치는 요정이야기를 그린 것들이고 그는 이 세계 속에서 상상력으로 현란한 그림들을 그려서 보여 준다. 소리로.

    

   

  3

    내가 듣는 나의 목소리에서 무지개가 뜬 걸 나만 아는 날이 있고,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져 비가 내리는 걸 들키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해도 어떤 목소리는 검고 어떤 목소리는 파랗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지개는 비가 온 뒤에 뜨는 것”이라고 너의 목소리가 말했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콘트라베이스의 검정과 회색 같고, 소프라노 여가수의 목소리는 밝은 노랑이나 주황, 그리고 언제나 읊조리듯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는 짙은 청색이거나 블루라고 나는 나의 목소리로 발음한다. ‘잊지 못할 목소리’라는 것은 어떤 느낌으로 남아있나. 

 

  목소리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구나.
  목소리는 배에 힘을 주어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구나.
  목소리는 감정의 확실한 통로이고,
  목소리는 자아의 상태의 증거이고,
  목소리는 가슴이 만들어내는구나.
                           -배우 오지혜가 출연한 연극 「대학살의 신」 관람 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의 목소리로 낸 그날의 소리.

    

    소리와 색. 수많은 느낌의 카테고리. 살아있는 동안만 가능할 감각에 관한 이야기. 가끔 어떤 날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폭력이다. 힌트도 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 색깔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면 더욱 공포스럽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들이 있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어 더듬거리는 날들이 있다. 나는 알고는 있다. 결코 우리의 마음은 모두 같지 않으니까. 목소리도 색깔도 모두 고유하니까 온도가 맞아 어울려 협화음이 되어도 좋겠고. 불협화음이라도 해도 비슷한 행동반경 안에서 함께 같은 시간을 지나가는 것, 마주본다는 것, 그것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 ‘깃들다’를 향해 가는 일. 나는 너의 낯빛과 목소리가 궁금하고 나의 얼굴에서 너를 보게 되기도 한다. 너의 목소리에서 나를 듣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오래 느끼고는 있지만 아직 찾지 못한 느낌의 색. 침묵의 색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소리 낼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나왔던 침묵의 세계와 자신이 들어갈 또 하나의 침묵의 세계 ―죽음의 세계―사이에서 살고 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중에서

    

                                                                [시인]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느낌씨가 오고 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