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칼럼] 도착 | 김종옥 |

[5월의 칼럼] 도착 | 김종옥 |

kimjongok이 홈페이지와는 인연이 깊다. 그 깊이에 등수를 매기자면 나는 적어도 3등 내에 든다. 어느 날 강의를 기다리며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1999년 즈음에는 강의실 앞 복도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친구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하는 걸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그 친구가 십 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는 집지기 정재혁이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꽤 선명하게 떠오른다. 강의실에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학생들이 들어차 있고, 나는 복도 창틀에 기대, 남향이라 잘 드는 볕을, 살찐 고양이처럼 받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강사가 올라오면 나는 얼른 담배를 끄고 강의실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일이 끝나고, 다음 일이 시작되기 전의 짧은 시간. 그것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연결되는 복도 같은 시간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시간을 좋아했던 것은 그것이 언제든 끝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정확한 기억이 아니다. 재혁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이 홈페이지의 탄생은, 아니 내가 기꺼이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런 분위기에서였다.

최근에 ‘문지 술자리’—이게 일반적인 명칭인지, 나 혼자만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에서 누군가로부터 그 술자리가 그동안 거쳐온 술집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중에서 나는 ‘예술가’라는 술집을 기억했다. 십 여년 전, 이 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이인성 선생님과 재혁과 꽤 여러 번 들락거렸던 술집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문지 술자리’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 자리에 모이는 모든 사람이 정식으로 초대를 받는 건지, 아니면 누구라도 그저 지나다가 쓱 들를 수 있는 건지, 매주 금요일마다, 한 주도 빠짐없이 술자리가 열리는 건지, 그리고 애초에 왜 시작되었는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봐도 일단 십 년은 족히 넘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알 수 있는 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문학과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소위 등단한 작가들이었다.

그곳에서, 십 여 년 전, 우리는—재혁과 나는— ‘이인성 작가 홈페이지 제작자’였다. 처음에는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거니까. 간혹 가다 있을 법한 특별한 게스트였고, 우리로서도 한 번쯤 구경 차 들러봤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출입이 반복될수록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공통된 주제와 맥락을 가진 사람들, 이를테면 한동네에 사는 이웃들끼리 모인 파티에 우연히 집주인을 따라온 배관공이거나 지붕수리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홈페이지 제작자라고 소개되는 것이, 저희 집의 싱크대를 고쳐준 사람들입니다, 새로 지붕을 깔아준 사람이에요, 하는 것처럼 들렸다. 상황을 더 미묘하게 만든 건, 당시 내가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점이었다. 얘기를 발전시키자면, 지금은 배관공이지만 언젠가는 열심히 돈을 벌어서 이 동네에 이사 오고 싶어하죠, 이런 느낌이다. 술자리에서 대개 그러듯이 선생님이 다른 자리로 옮기면,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면, 그 느낌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또래이거나 심지어 더 어린 나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미래에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소설가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기분을 이제 와서 정확히 떠올리기는 어렵다. 얼마쯤은 자괴감을 느꼈을 수도, 또 정말 열심히 돈을 벌어서, 그러니까 열심히 소설을 써서 어서 빨리 등단을 해야겠다는 열의를 불태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은 지극히 순간적인 기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게, 작가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 인연으로 문단 술자리에 참석하는 일들이 내게는 지나가는 것에 불과했다. 강사가 올라오기 전까지 강의실 앞 복도에서 피우는 담배 같은 것이었다.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고,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내가 꿈꾸는 미래를 살고 있다 해도, 어쨌든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 친구가 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다.

확실히 내게는 그런 경향이 있다. 심지어 사랑조차도 그랬었다. 또 어쩌면 소설을 쓰는 일조차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게 지나가는 거라면, 비록 내가 좋아하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끝날 거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인생에는 뭐가 있을까? 내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십 여 년이 흘러서 나는 다시 ‘문지 술자리’에 가게 되었다. 장소는 달랐지만, 이제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이 십 여 년 전 내가 갔었던 바로 그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배관공에 불과했고, 그 자리는 그냥 지나가는, 나의 인생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소설가였고, 말석이나마 문단에 이름을 올린 처지였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서, 그 술집의 문을 열면서,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었을까?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와 비슷한 자리, 문단 사람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참석했었다.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십 여 년 전 배관공으로 참석했던 ‘문지 술자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엉뚱한 장소, 나의 인생과는 전혀 무관한 어떤 자리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너무 늦게, 너무 늦은 나이에 등단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평론가나 편집위원들이,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이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문단 경력으로 치자면 그들은 모두 나의 선배들인 셈이었다.

그런 자리 중 하나에서 이인성 선생님이 내게 바로 이 글을 부탁했다. 이 홈페이지에 실을 칼럼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 글을 부탁한 건 전화상으로였고, 그 후에 술자리에서 다시 이 얘기가 나왔었다. 그때 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내가 이곳에 글을 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영광스럽다고 말했는데, 그건 진심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내가 십 여 년 전에 이 홈페이지와 맺었던 인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지금까지 내가 쓴 얘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도저히 결론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걸까? 몇 번이나 썼다 고쳤다 하면서 나는 하릴없이 이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십 여년 전 내가 ‘열린 사랑방’에 익명으로 올린 글도 발견했고, 어쩐지 그리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십 년 동안 이곳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바로 그랬기 때문에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조금은 낡아 버린 느낌이다. 조금은 변했어야 하지 않나.

그러다 ‘탁자 위의 작가 앨범’이라는 페이지에 눈이 갔다. 그중에서도 ‘집지기가 찍은 작가 2000, 2010’ 시리즈가 그랬다. ‘2000’은 이전에 이미 본 사진들이었다. 아마 내가 직접 사진들을 올렸을 수도 있다. ‘2010’은 이번에 처음 본 것이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은 재혁이 사진을 꽤 잘 찍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사진도 좀 이렇게 멋지게 찍어주지 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계속 바라볼수록, 특히 ‘2000’과 ‘2010’을 번갈아 살펴볼수록 나는 점점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안타깝지만 그 기분을 여기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설명할 문장들을 몇 개 떠올렸지만 어떤 것도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해야 거기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는 것 정도다. 거기에는 우선 십 여 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그리고 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분명히 어떤 슬픔이나 비애도 담겨 있다는 느낌이다. 그건 그냥 모든 세월이, 인생이 원래 담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 환희나 기쁨,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들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우정이나 신뢰, 사랑, 그리고 어떤 믿음도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지나쳤던 것들, 무심히 외면했던 것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생이라고? 그게 소설이고, 예술이라고? 이런 나의 말들에는 분명 지나친 과장이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말했듯이 그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나는 잘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로소 내가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어딘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실, 언제나 나는 그곳에 이미 도착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

데뷔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 수상 2013년 제4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