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칼럼] 문 앞의 찰간을 어떻게 넘어뜨릴 건데? | 김선우 |

[2월의 칼럼] 문 앞의 찰간을 어떻게 넘어뜨릴 건데? | 김선우 |

kso- 아마도 그래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중이다.

기이한 시절이 지나간다. 고여서. 무겁게. 끈적거리며. 흐른다고 말할 수 없이 아무튼 흐르면서. 아아, 이렇게 견디는 게 지겨워 미치겠어. 중얼거리게 될 때쯤 ‘꽃’이라고 생각한 그 무엇들이 헐한 주유소를 털어 단체로 가솔린을 흡입한 후 자지러져 버리거나. 붉고 탁한 눈이 캄캄하게 쏟아져 더러운 도시가 속절없이 더욱 더러워지거나. 여러 겹의 절벽들이 제멋대로 넘어지며 그럴듯한 건널목을 죄다 폐차장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그래도 시간은 끈적하게 흘러. 적진에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놓듯이. 잔혹을 ‘우화’로 받아들여야만 간신히 숨 쉴 수 있는 거리에서. 아무튼 세월은 흘러. 기이하게 삐걱거리며. 그러겠지. 아이쿠!

아마도 그래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중이다. ‘원효’라 불린 사람. 육체의 성별로는 남자사람. 1300여 년 전 이 땅에 살짝 다녀간. 어떤 붓다. 우수 어린 우주. 출중한 티끌. 사사무애(事事無碍). 신라판 나가르주나. 단언컨대 나가르주나보다 몇 갑절 탁월한 호모루덴스. 뜨거운 피. 자유의 감각으로 치자면 조르바와 막상막하. 햐, 사랑에 빠지는 게 좋긴 좋구나! 찬양에 인색한 내 손끝에서 이토록 줄줄이 찬양조라니.

의상: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지 않은 법당은 처음입니다.
원효: 부처께서 이리 많으신데 무슨 말씀이시온지.
(원효는 나직하게 답하며 주머니에서 두어 개의 조그마한 토우를 꺼내 연좌대 위에 올려  놓았다.)
원효: 이 마을엔 도공들이 많이 삽니다. 이집 저집 허드렛일을 도와주고나면 이런 선물을 주는 분들이 있지요.
(연좌대에 가득한 토우들. 괭이를 메고 있는 농부, 배를 젓고 있는 사람, 피리 부는 사람, 가야금을 타는 사람,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사람, 소, 말, 개, 호랑이, 거북, 물고기 등의 가축과 동물 형상이 오밀조밀했다.)
의상: 부처님들이 이리 많으시니 복된 절입니다.
(의상도 명민하긴 하지만 원효에 댈 바 아니다.)
의상: 원효스님! 저와 함께 당나라에 가시지요.
(원효는 법당 문틈으로 보이는 목백일홍을 건너다보았다.)
원효: 소승도 한때 도당을 모색했으나 발이 묶였소. 발이 묶이고 보니 이곳에서도 할 일이 많더군요.
의상: 당나라 현장스님이 천축국 유학을 마치고 장안으로 돌아와 자은사에 주석하며 역경작업과 후학 기르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효: 너희는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만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이 밖의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의상: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여라! 단 한 시각도 아깝고 아깝습니다. 인생은 짧디 짧으니!
원효: 불조법맥 1조가 되신 가섭존자에게 나투신 세존의 삼처전심을 기려보기에 좋은 시간이군요.
(원효가 연좌대 옆에 놓여있던 거문고를 끌어당겨 무릎에 뉘었다. 술대 끝에 ‘일심’이 새겨진 붉은 광목 매듭이 달려있었다. 해가 지듯이 소리통이 울렸다.)
원효: 영산회상 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원효가 읊조리자, 의상이 원효의 노래를 서사의 시로 받았다.)
의상: 영산의 붓다께서 법문 하시던 어느 날 허공에서 연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네. 설법을 멈춘 붓다께서 한 송이 꽃을 주워들고 가만히 그 꽃을 들어 보였네. 붓다의 뜻을 알 수 없어 다들 황망한 그때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네. 이심전심 염화미소 8만 설법의 문자나 교리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미소로 나타낸 가섭존자를 붓다는 사랑하셨네.
(의상은 흘러가는 물결처럼 거침이 없었다. 원효의 얼굴에 미소가 그윽이 떠올랐다.)
원효: 다자탑전 분반좌 (多子塔前分半坐)
의상: 붓다께서 다자탑 주위에 앉아 설법하실 때 가섭존자가 분소의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였네. 설법을 듣던 수많은 수행승이 가섭의 분소의를 얕보며 헐뜯었네. 이때 붓다께서 가만히 가섭을 불러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그를 곁에 앉히셨네.
(술대를 잡은 원효의 손에 신명이 붙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하하하, 웃음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원효: 사라쌍수 곽시쌍부 (沙羅雙樹槨示雙趺)
의상: 임종 무렵 붓다께서 사라수 여덟 그루가 둘씩 짝지어 마주선 사이에 자리를 깔게 하고 열반에 드시었네. 임종하는 자리에 부처의 으뜸 제자 가섭이 없었네. 부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되, 가섭이 오거든 정법안장을 드러내리라 하셨네. 토굴에서 수행하던 가섭이 갑자기 수승한 광명을 보고 곧바로 붓다께 왔으나 붓다의 육신은 이미 관 속에 들어 있었네. 여래의 열반이 어찌 이리도 급작스러운가. 가섭이 울었네. 이 육신을 버리고 먼저 홀로 가셨군요. 가섭이 관 주위를 돌고 세 번 절하며 슬피 울며 말하였네. 그러자 갑자기 관 속으로부터 붓다의 두 발이 나와 이를 내보이셨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원효가 거문고를 내려놓았다.)
원효: 지금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합니까?
의상: 부처님의 금란가사를 전해 받은 가섭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원효: 나는 붓다의 맨발을 생각하오.
***

원효: 가섭존자가 아난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원효가 의상 쪽으로 몸을 휙 돌리더니 의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효: 아난이여!
의상: 네.
(엉겁결에 나온 대답이다.)
원효: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원효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자, 의상은 물론 옥문 밖 군졸들 모두가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하여 어리둥절했다. 찰간을 왜 넘어뜨리래? 어수선히 수런거리다가 이윽고 주섬주      섬 침묵했다. 그때 누군가 표주박에 담긴 물을 옥문 안으로 넣어 전했다. 원효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의상에게 주었다.)
옥리들: 그런데 아난존자님은 왜 그렇게 늦되어 말귀를 못 알아들었소? 지혜 제일이었다면서요?
(창을 든 채 옥문에 바싹 붙어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옥리가 불쑥 물었을 때, 원효가 파안대소하였다. 어찌나 시원하게 웃는지 모여 있던 모두가 실실 웃음을 흘릴 지경이었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원효가 정색을 하더니 말했다.)
원효: 아난아.
옥리: 네!
(질문했던 옥리가 엉겁결에 큰 소리로 대답을 하자, 원효가 빙긋이 웃으며 옥리를 향해 허리를 구부리며 합장했다. 놀란 옥리가 얼른 허리를 구부리더니 감옥 바닥에 넙죽 이마까지 대며 조아려 절하였다.)
원효: 가섭존자께서 ‘아난아’ 불렀을 때, 무엇이 아난으로 하여금 “네” 라고 대답하게 했을까요. 아난은 누구인 걸까요. 스스로 자신이 아난이라고 생각한 그 아난은 과연 누구일까요?
(옥문 밖에 모여 있던 이들이 어리둥절하면서도 뭔가 심각한 얼굴로 저마다 골똘하고 있을 때, 의상의 눈 속으로 깊고도 광대한 빛이 스쳐갔다.)
의상: 온 마음, 전 존재로, ‘네!’라고 답한 그 아난. 진짜 아난!
(의상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입 밖에 내어 말을 한 순간, 아하! 좌중이 감탄을 터뜨렸다. 원효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효: 그런데 우리는 약한 존재입니다. 아난은 자꾸 흩어지니까요. ‘진짜 나’라고 하는 것이자꾸 흩어져서 괴로워집니다.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이 말은 손가락입니다. 진리의 언덕으로 건네주는 뗏목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뗏목과 손가락에 집착합니다.

***

(모닥불을 피운 채 불가에 누워 잠잘 준비를 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던 참이었다. 장안의 최신식 문물에 대해 들은 바를 이야기하던 의상에게 원효가 문득 물었다.)
원효: 천 년 동안 천축국에서 전해진 부처님 법을 가지고 중국에 도착했던 보리달마 말입니다. 그는 자기 운명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을까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의상이 몸을 일으켜 앉자 원효도 그리 하였다. 자작나무 삭정이로 지펴놓은 모닥불이 연기 없이 타탓 튀었다.)
원효: 달마가 중국에 온 때는 남북조시절, 도착한 곳은 양나라였다 하니, 한 130년쯤 전이 되겠군요. 그때 우리 신라는 법흥대왕 시절, 이차돈의 순교가 일어나기 7년쯤 전이구요. 양무제는 이미 나라 곳곳에 수많은 절과 탑을 짓고 경을 편찬하고 있었지요. 뭐 어느 나라나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는 방법은 비슷할 테지만, 양나라의 황제는 우리의 법흥대왕처럼 진심으로 부처님 말씀을 사모했던 면도 분명 있었던 듯합니다. 양무제는 부처의 금란가사와 바리때를 전수받은 고승이 중국에 온 것을 기뻐하며 달마를 영접했지요. 그리고 이리 물었다 합니다. “짐이 황위에 오른 이래 수많은 절을 짓고 경을 쓰고 중들을 기른 것이 셀 수없이 많소. 내게 어떤 공덕이 있겠소?” 그러자 우리의 달마대사께서 이리 답했다 하지요.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
(하하하, 원효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의상도 슬그머니 따라 웃었다.)
원효: 양무제는 속이 상했겠지요. 그래서 달마에게 따집니다. 그때 달마가 알듯모를듯한 말을 합니다. “이는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듯하나 실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효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원효: 중국에 불교가 이미 융성했던 그때, 수많은 절과 탑들이 모두 실제 있지도 않은 거짓 형상이자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달마의 말은 무서운 충격이었을 거예요. 암, 그럼요. 양무제는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공덕이오?” 달마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청정의 지혜는 묘하고 완만하여 본체가 텅 비고 고요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의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불법의 근원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 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
(원효가 의상 앞에 있는 자작나무 가지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것들을 의상은 타는 불 위에 얹어 놓았다.)
원효: 달마는 그 길로 궁을 나와 낙양 쪽의 숭산 소림사에 들어 침묵으로 7년을 면벽했다지요. 그리고 달마는 첫 번째 제자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혜가를 만나게 되는 거지요. 달마가 혜가로 이름을 고쳐준 신광말입니다. 이후 달마가 중국을 떠나고자 할 때, 혜가에게 금란가사를 주면서 이런 전법송을 전했다 합니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깨우치려는 것인데, 한 송이의 꽃에서 다섯 꽃잎이 나니 열매는 자연히 맺어지리라.” 이거야 원! 이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전법송으로 하다니 달마께선 그 무렵 퍽이나 중국이 지긋지긋했던 모양이에요. 아니면 고향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셨거나. 쯧! 달마는 또한 예언하기를, “내가 서쪽으로 떠난 지 200년 뒤에는 자칫 서로 다투는 빌미가 되기 쉬워 이 금란가사를 전하여 종지를 삼는 일은 그치게 될 것이고, 불법은 항하의 모래알처럼 세계에 두루하여 가만히 도를 깨치는 사람들이 무수하리라. 그대는 아직 깨닫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생각 돌이키면 본래 깨달은 것과 같으니라.” 그런데 가여우신 분! 달마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소.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에 의해 오래도록 쫓기며 여섯 차례나 독살당할 처지에 놓이자 결국 스스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단정히 앉아 숨을 거두었지요.
(의상이 가만히 침묵했다. 밤 부엉이 우는 소리가 고적하게 들려왔다.)
원효: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가 참으로 시시합니다.
(적막을 깨며 원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원효: 내가 궁금한 것은 중국의 현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는 겁니다. 진리가 삶속에 구현되는 방식 말이오.

기이한 시절이. 고여서. 무겁게. 끈적거리며. 흐른다고 말할 수 없이. 아무튼 흘러갈. 날이 저문다. 이 저녁의 마지막 시간. 불현듯 프리모 레비가 왜 떠오르는지. 나도 원효도 의상도 모르겠지만. ‘불현듯’ 조차 연기(緣起)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이미 아는 때가 되어 버렸으니. 원효와 프리모 레비 사이. 천삼백 년의 시간이 웜홀처럼 이어져. 어느 어이없는 날들에 삶에의 전의가 바닥나고 있다고 느낄 때면. 그들을 떠올려두고 커피콩을 간다. 다 저녁에 분나세레모니를 준비하듯이.

원효: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지금 이순간의 삶이오. 붓다의 말씀이 이 순간 속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프리모 레비: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인간인가』중에서)

[시인]

출생 1970년 (강원도 강릉) / 학력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 학사 / 데뷔 1996년 창작과 비평 등단 / 수상 2007년 제9회 천상병시상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