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없이 낮은 숨결- 이인성 소설의 제목을 빌어서 | 김혜순 |

동이 트면, 내 몸에서 먼동이 터 오면
마당을 깨끗하게 잘 닦은 다음
거기다 메아리가 편지를 쓰게 하고 싶었다
소름을 스칠 듯 말 듯한 가는 입술로
산들바람에도 흩어지고 말 목소리로
이 몸 속에서 나와 저 몸 속을 헤매는 동안
더 작아져 버린 내 숨결보다 더 여린 붓으로
메아리가 하루종일 편지를 쓰게 하고 싶었다

산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수몰 마을에 도착했다
마루에 가방을 얹어놓고 나자 마지막 햇발이 마당 위에 날렸다
아직도 메아리를 다 뱉지 못한 산이 먼저 어두워지고
맨나중에 길이 어두워졌다
밤이 큰 새처럼 내 두 귀를 덮자
세상의 모든 살 가진 것들이 내 속에서 섞여 버렸다
저 높은 가지 끝에선 어린 새가 밤새도록
내 머리 속을 두근거리고
피투성이 깃털펜들이 우우우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가기도 했다
나는 내 몸 밖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밤이 더운 피를 다 쏟아내자 먼동이 터 왔다

* 서울예술대 문창과 교수이기도 한 김혜순 시인은 <<또 하나의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화>>,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등의 시집을 펴냈다.

(2000.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