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수련 | 채호기 |

캄캄한 밤하늘에 환한 자국을 남기는 유성처럼
시선이 수련을 발견했을 때
핏줄을 타고 세차게 흐르는 흰빛의 덩어리는
몸 속을 떠다니며 하얀 멍들을 남긴다.

수심 깊은 가슴에 숨겨 두고 있던
물풀의 머릿속에 헝클어지는
형체 없는 느낌을 발음하려 할 때
혀는 돌멩이처럼 무겁게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마치 수련의 아름다움을 발음할 수 없는 것처럼.

수련을 발음하기 위해
혀는 햇빛을 받아야 하고
공기의 침대에서 뒹굴어야 하며
물의 맛들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분말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햇빛
투명하고 완만한 곡선의 공기
빈틈없이 감싸고 조여오는 물

혀는 햇빛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엉덩이를 핥으며
물의 깊음 속에 잠긴다.
곧 태어날 말의 양수와 같은
캄캄한 연못 속으로 환한 목청을
피워 올리는 수련의 알뿌리처럼

* 최근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취임한 채호기 시인은 <<지독한 사랑>>,
<<슬픈 게이>>, <<밤의 공중전화>> 등의 시집을 펴냈다.
(200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