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칼럼] 인연 없는 것들과의 인연 | 김병익 |

비행기는 아마도 인도 대륙 상공을 날으고 있을 것이었다. 창밖으로 보인 것은 어둠뿐이었는데 그 아래로 날씨가 맑았는지 드문드문 불빛들이 보였다. 외따로 하나짜리도 있었지만 서너 개쯤 동아리로 모여 있는 것도 있었다. 저 지상의 작은 불빛들이 6,7천 미터나 떨어져 있을 여기까지 보인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때 문득 내게 든 궁금증은 엉뚱하게도, 저기 누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캄캄했기에 불빛만 알아볼 수 있을 뿐, 그 주변이 숲인지 논밭인지 알 수 있기는커녕 사실은 이곳이 인도 대륙이라는 것도 분명하지 않은 터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내가 결코 알 수도 없고 알아봐야 별일 있을 것도 아닌 것에 공연히 안달이 나는 것이었다. 저기 서넛의 불빛은 몇 채가 모인 작은 동네일까 혹 우리 식으로 마을 회관일까 아니면 절 같은 것일까. 좀 멀리 떨어진 외로운 불빛 하나는 외딴 집일까 다른 무엇일까. 저기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가무잡잡한 인도인일 것인데 식구들은 얼마나 될까, 생활은 어떻게 할까. 이 뜬금없는 궁금증에는 오래 전 인도의 도시와 마을에서 본, 가난하고 찌들은 인도인들의 궁상스런 풍경들이 끼어들었다.
그때 나와 인연 없는 것들에 대해 내가 왜 그처럼 궁금해했는지 모르겠다. 옆자리의 일행들과 다른 승객들은 불끈 기내에서 불편한 대로나마 잠을 자고 있고 나만이 기창 밖으로 깜깜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외로움이 나의 덧없는 상념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그것이 나처럼 깨어 있음을 보여주는 불빛에 덧없는 호기심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나와 무연(無緣)한 것들의 존재성을 생각하며, 세상의 무궁한 전개를, 하염없는 인간의 한계성을 연상하며 옅은 설움에 잠겨 있었다.
근 10년 전의 이 바깥 풍경과 그때 내가 느낀 내 안의 정서는 그 후로도 문득문득 내 기억 속에서부터 솟아나오곤 한다. 차를 타고 낯선 곳을 가며 무심히 차창 밖의 경치를 바라보다가도, 한밤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며 뜬금없는 것들이 내 속을 떠돌고 있는 것 중에도, 인도 대륙이었을 그 밤하늘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본 지상의 캄캄하고 외로운 풍경들이 문득 나를 찾아와 회상에 젖게 만든다.
그 회상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궁금해했던 일이 풀릴 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언제 어디서 찍은지도 기억되지 않는 스냅 사진 같은 것이지만, 그 무의미한 것들이 늘어서 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의미 있는 경험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을 내게 일으켜주는 것이다.
내 추억의 창고에는 또다른 스냅 사진이 있다. 이번에는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였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내 시선에, 뽀얀 얼굴의 열 예닐곱쯤 될 한 소녀가 뒤를 돌아보고 환한 웃음을 터트리며 뛰듯이 깡충거리며 지나는 모습이 잡혔다. 작은 동네였던 것 같고 그 소녀는 작은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을 것이며 계절은 늦봄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소녀는 아마 소설쯤이지 싶은 책을 말아쥐고 있었다.
한순간으로 스친 그 풍경을 용케 잡은 나는 달리는 버스 속에서 또 공상에 들어갔다. 여고생쯤이었을 그녀는 어쩌면 빌린 책을 돌려주려 친구 집에 가는 중이었을 것이며, 또 모르지, 그런 핑계로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일지도 모르며, 나는 미처 못 본 제 오빠나 엄마에게 명랑한 인사로 안심시키고 있는 듯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도, 알 길도 없고 또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녀가 궁금했고 그녀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해내려 하곤 했다.
그 소녀는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대학을 갔을는지, 따져보면 결혼할 나이도 지났을 그녀가 행복해 있을는지, 그 강원도 어느 마을에 살고 있을지 아니면 서울이나 어떤 타향에 살고 있는지, 길을 걷다가, 혹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다가 10년 전의 그녀 또래를 보면 문득문득 그 뽀얀 소녀의 환한 웃음이 회상되고 그녀의 신상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참 덧없는 관심이고 어이없는 호기심이지만, 한 컷 짜리의 회상 속에 그러나 결코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있을 수 없는 그녀의 존재성은 내가 울적해 있든가 세상이 난잡해 있음에 불평을 품든가 할 때, 아니 그런 것과도 관계 없이라도 문득, 내게 다가와, 의미 없음으로써 그 정경을 의미화하는 기묘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나의 회상이 어찌 그 한밤 인도의 상공과 한낮 강원도의 산길에서만이겠는가. 레닌그라드의 호텔에서 본 매우 신분 높아 보이는 세련된 여자, 페루의 쿠스코, 인디언들의 태양의 축제에서 유달리 눈에 띈 백인같이 살결이 흰 소녀, 뉴욕의 할렘에서 넋없이 한쪽만 시선을 고정시킨 백발의 흑인 남자…… 그런 회상은 생각보다 많고 예상보다 갖가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스냅 사진 같은 회상들이 또 어찌 나만의 그것들이겠는가. 숱한 사람들이 숱한 사람들과 숱한 무연한 장면들에 마주칠 것이고 그 마주침에서, 무관심까지 포함해 숱한 느낌들을 가질 것이며 그 숱한 것들은 잊혀지거나 소중하게 싸안거나 간에 우리의 의식, 무의식의 회상의 창고에 산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엉뚱한 시간에 문득 우리의 기억으로 되살아나와 눈 앞과 눈 속의 빈 공간을 무의미한한 것들의 존재성으로 채워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그리고 인간은, 깊이 보면, 인연 있는 것들, 이해 관계로 얽혀 있는 것들, 의미 있는 것들로 무진장 쌓여 있는 가운데, 그럼에도, 인연 없는 인간들, 이해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물들, 무의미한 장면들이 그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엄청 많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그것들은 숨겨져 있어 거들떠보여지지 않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팽개쳐져 있고 그리고는 아주 잊혀질 것들이긴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중 하나가 불쑥 일어서 생생한 모습으로, 모호한 의미를 쓰고서 전생의 인연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때 세상은 달라보이던가?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던가? 아닐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막힘없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은 전과 다름없이 바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의 존재성은 나의 이기적인 존재성 속에서 새로운 샘물처럼 신선한 생기를 따라주며 인연 없는 것과의 인연감을 키워주는 것이다.
무연한 것들에 대한 나의 기억이여. 앞으로 남은 것보다 지난 기억이 훨씬 많아진 나는 이제, 그것들에, 따뜻한 안녕의 인사를 보낸다.
* 계간 <<문학과 지성>>의 창간 동인이며 문학과지성사 창립 후 최근까지 그 대표직을 역임했던 평론가 김병익은 <<지성과 반지성>> <<한국문학의 의식>>으로부터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무서운, 멋진 신세계>> 등에 이르는 다수의 평론집, 산문집을 펴냈다.
(20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