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추억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 김동식 |

– 김일 선수의 은퇴 소식을 접하고

1.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거나 자기자신을 냉철하게 반성하는 일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별다른 가치나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재미있는 기억이나 추억들을 되살려 보려 해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물론 일시적 것이겠지만, 뒤를 돌아보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동안 심하게 부대끼며 살아왔기 때문인지, 생물학적인 나이가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
지하철 가판대에서 500원을 주고 집어 올린 스포츠 신문에 김일 선수의 은퇴 소식이 실려 있었다. 1면 톱은 역시 박찬호의 동정에 대한 것이었고, 김일 선수에 대한 기사는 스포츠 종합면에 5분의 1 크기(하단 광고면 제외) 정도로 다루어져 있었다. 김일이라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 불리는 역도산의 수제자였고, 전설적인 박치기 왕이 아니었던가. 김일이 이마를 찢고 철판을 넣었느냐 아니냐를 놓고, 1970년대 초반의 동네 꼬마들은 설전 끝에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다던가. 믿거나 말거나.
김일은 차범근, 이애리사, 조오련 등과 함께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국민적인 영웅이었다. 당시에 고인이었던 이소룡이나 역도산의 신화가 완결된 텍스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김일은 살아있는 신화였고 열린 텍스트였다. 바둑이 끝나면 복기를 하듯이, 중계가 끝나면 꼬마들은 어른들이 외출한 집으로 모여 김일 선수가 보여주었던 신기술에 대한 분석들을 저마다 내놓았고, 경기의 시퀀스를 재구성해서는 역할을 돌려 맡으며 재연해 내곤 했다.

3.
김일과 한국프로레슬링을 주제어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WWF에 대해서는 잘 꾸며진 여러 개의 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프로레슬링에 대한 사이트는 하이텔 레슬링 동호회의 홈페이지밖에 없었고, 그나마 내부 사정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약간의 자료를 구해 볼 수 있었다.
역도산의 수제자 그룹인 사천왕에는 안토니오 이노끼, 바이언트 바바, 오오키 긴타로, 매머드 스즈키가 있었다고 한다. 오오키 긴타로가 바로 김일이다. 1963년 김일은 미국 WWA 헤비급 태그매치 세계챔피언에 오른다. 그러나 1963년 12월 8일 역도산이 괴청년의 칼을 맞고 세상을 떠나게 되자, 당시 미국원정 중이었던 김일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이 생황을 하게 된다. 신원 보증인이었던 역도산의 사망으로 비자 연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김일의 팬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귀국을 추진해서 7년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된다. 박 대통령은 비원에 체육관과 합숙소를 마련해 줄 정도로 열성적인 후원자였다.
세계 챔피언 김일이 등장하면서 장영철과 천규덕으로 대표되던 프로레슬링계의 판도는 크게 변하게 되었고, 달라진 사회적 위상 속에서 엄청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1965년 ‘장충체육관 사건’으로 장영철이 프로레슬링계를 떠나고, 이후에 “프로레슬링은 쇼다”라고 한 발언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파문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였나. 1970년대 초반, 중계를 보던 어른들이 “프로레슬링, 저거 다 쇼야”라고 하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4.
<<신화지>>에서 롤랑 바르트는, 로마시대의 레슬링과 비교하면서 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니라 쇼 비즈니스의 차원에 속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바르트의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해 본 내용은 크게 4 가지 정도이다.
1) 스포츠는 정해진 규격의 경기장을 사용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선수나 주요한 경기 도구가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벌점을 주거나 경기가 일시 중단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링뿐만 아니라 링 사이드, 관람석, 심지어는 라커룸이나 주차장에서까지 경기를 벌인다. 프로레슬링에는 엄격하게 규정된 경기장이 없다.
2) 스포츠에서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심판은 중립적인 존재로서 승패를 엄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서 심판은 언제나 시선 유도를 당하는 존재이다. 체육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실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심판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심판은 경기의 흐름에 관여하지 않는 제 3의 존재가 아니라 무대 위에 올려진 하나의 소품이거나 꼭두각시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3) 스포츠의 경우, 반칙에 대해서는 판단의 유보가 없다. 파울이 지적되면 벌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에서 반칙은 다섯을 세는 동안 하나의 공격 기술로서 허용된다. 격투기의 성격이 일부 반영된 결과이겠지만, 반칙을 기술로서 인정하는 경기를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
4) 스포츠에서 선수의 네임 밸류에 따른 심리적인 개입이 분명히 존재한다. 상대방이 주눅든다던가, 심판이 경력을 인정해 점수를 더 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징적인 개입은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필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히바우도의 왼발에 걸렸다고 해서 매번 골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만화나 오락에서나 볼 수 있는 ‘필살기’는 프로레슬링의 상징적 핵심인 동시에 기술적 핵심이다. 김일의 박치기, 이노키의 코브라 트위스트, 자이언트 바바의 16문 킥, WWF에서 많이 볼 수 있는 DDT 같은 기술이 그것이다. 필살기의 상징성은 관객의 기대지평과 선수의 행위를 하나로 엮어 한 편의 드라마를 구성한다.

5.
프로레슬링이 스포츠가 아니라 쇼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링 위에서 쇼맨쉽이 연출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링에 올라오기 직전까지 엄청난 양의 연습이 있어야 하고, 또한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내밀한 규칙이 지켜져야 한다.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에서 프로레슬링을 쇼라고 한다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승패를 조작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김일 선수가 일생동안 몸담았던 프로레슬링을 매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또한 바르트의 기호학적인 분석에 기대어,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프로레슬링이 담당하고 있었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검토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김일 선수의 은퇴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과거에 대해 참으로 무관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모든 추억에는 이데올로기적인 편린이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
그렇다면, 잔인하기는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수화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추억으로 감싸는 과정과 나란히 나아간다는 생각이 그것. 추억은 면죄부를 부여받은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노이로제 때문에 추억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별 이상한 고민을 다 만들어냈다는 생각. 해 놓은 것 없이 넓죽넓죽 먹어 치우기만 한 나이 때문일 것이다.

* 계간 <<문학과 사회>>의 편집 동인인 비평가 김동식은 <상처의 계보학, 또는 의미의 생성론>(이인성론) 등 다수의 평론을 쓰며 활동 중이다.

(2000.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