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가 뜨다 | 김정환 |

해산(解産)의 재탄생? 태양은 식전부터 선혈의 탯줄을 찬란한 빛물살로 풀며 뜬다. 피비린 역사는 미래의 홍조로 전화될 뿐, 평면도 곡면도 없고 그 사이 잊혀질 수 없는 것들이잊혀지는 이야기에 담긴 둥글고 붉은 망각의 외형(外型)처럼, 혹시 미래 전망과도 같이 뜬다. 미열(微熱)의 이마로는 마주칠 수 없고 충혈된 눈으로는 오히려 눈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매일(每日)은 장엄하게, 유구하게, 새롭게, 수천 수만년의 순서가 무색하게, 천근만근 아름답게 뜨고 고대의 마법사가 주문을 외고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해야, 간절한 것이 우주를 닮고 우주가 간절함을 닮아 이집트 피라미드와 앙코르 와트, 스톤헨지와 모아이 고대의 지상에서 뜨는 해가 내 젊은 날, 떴다, 최루탄과 백골단, 종로와 을지로, 코피 철철 흘리며 떴다. 무언가가 길길이 뛰고 그것 만이 이어지고 새벽길, 무너진 등 뒤로 떴다, 혈안의 눈동자. 그러나 수평선 위로 해는 언제나 뜬다. 언제나 모든 과거를 현재로 모든 현재를 미래로 모든 미래를 미래의 아름다움으로 만들며 뜬다. 지난한 문명의, 전망의 장면의, 일순처럼. 영원은 적멸로 고요하지 않고 열화로 요란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넘어서는 광경의, 멀쩡함의 기적 같은 것. 영원의 감각적인 육체. 아름다움의 주소. 욕망의 전망. 보라, 해가 뜨다. 발 디딜 곳 없는 희망의.

* 한국문학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환 시인은 <<지울 수 없는 노래>> <<황색 예수전>>에서 <<순금의 기억>>에 이르는 여러 시집 외에도, 많은 소설집·산문집들을 펴냈다.
(2000.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