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무제(無題) | 정영문 |

그날 오후 나는 그 얼마 전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에게 갔다. 그는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어머니는 그의 병상 옆 의자에 앉은 채로, 그 사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듯, 목을 떨군 상태로 잠이 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인공 호흡기가 부착되어 있었고, 팔의 혈관에도 투명한, 가느다란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호흡은 미약하게,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라도 하듯, 느리게 이루어졌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의 그 모습을 잠시 구경했다. 조금 있자 어머니가 눈을 떴다. 그녀의 얼굴 역시 아버지의 것 못지 않게 초췌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이후로 여러 날 동안 제대로 쉴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사이 아버지의 상태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이제 그녀는 최초의 충격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고, 이후에 아버지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일어날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조금 후 나는 어머니와 교대를 했다. 이제 어머니는 집에 돌아가 조금이라도 쉴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 며칠 사이 그녀 역시 기력이 쇠해 환자처럼 힘들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고, 나는 병원 현관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나는 잠시 현관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아버지가 있는 병실을 향해 올라갔다. 병실은 5층에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렸을 때 그곳에는 중환자실은 없었다. 중환자실은 6층에 있는 게 분명해,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기 위해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데 복도 중간에 신생아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였고, 나는 그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췄다. 복도는 조용했고,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커튼이 조금 벌려져 있는 창문 사이로 신생아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열 명도 넘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이 요람에 담겨진 채로 눕혀져 있었다. 이제 막 부화한 애벌레 같은 아기들 모두는 잠이라도 든 듯 무척 조용했다. 나는 어떤 무서운 장면을 볼 때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손가락 틈 사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기들은 너무도 가만히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이 과연 살아 있는지 의심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한 채로, 그 아기들을 향해, 이제 눈을 떠봐, 하고, 어떤 주문을 외듯 조용히, 하지만 엄숙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랍게도, 꼼짝도 않고 있던 그 아기들이 일제히 눈을 번쩍 뜨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후,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마치 나를 비난하듯, 또는 내게 어떤 지시를 내리기라도 하듯, 뭐라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얼어붙는 공포를 느끼며 간신히 걸음을 옮겨 복도를 지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다행히도 6층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중환자실이 있었고, 나는 아버지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 후 문을 단단히 잠갔다. 조금 전의 그 이상스런 경험으로 인한 공포를 털어내며, 나는 아버지 옆에 살며시 앉았다. 그는 조금 전 내가 보았던 그대로 누워 있었는데, 이제는 눈은 뜬 채로였다. 나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그에게 얘기해주었다. 물론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면,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는지도 몰랐다. 내가 뭔가를 잘못 본 걸까요, 내가 말했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은 그의 얼굴 위에 부착된 인공 호흡기를 살며시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본 건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여전히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헛걸 본 게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내려가볼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말했다. 그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조금 움직였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요, 내가 말했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는 듯 아버지의 눈동자가 딴 곳을 향했다. 나는 호흡기를 잡고 있는 나의 손에 힘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고, 조금씩 의식적으로 그것을 그의 얼굴에서 떼기 시작했다. 혹시 이런 말을 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내가 말했다. 나는 그의 호흡이 가빠지며 얼굴이 붉어지며 일그러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나는 어떤 열정 같은 것을 느끼며 그의 호흡이 조금씩 느려져 마침내는 끊기는 것을, 마치 투명한 주전자 속의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듯, 목격했다. 어느새 내 쪽을 향한 그의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숨이 멈춘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살며시 갖다댔다. 그런 다음 입술을 그의 귀에 갖다댄 후 말했다. 혹시 이런 말을 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그 순간, 조금 전 그 아기들이 외친,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들이 내 귓속에서 요란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 소설가 정영문은 장편 및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핏기 없는 독백>> 등을 펴냈다.

(20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