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악몽 |김연경 |

아내는 한 해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아이를 가졌고 역시 한 해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아이를 지웠다. 그러던 어느 해, 그 해도 아내는 어김없이 아이를 가졌다. 열 한 번 째였다. 역시나 아이를 지우려고 했으나 여느 해와는 달리 날짜가 얼마 경과하지도 않았는데도 태아가 너무 커져 있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연중 행사를 치루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몸은 괴물이 되어 갔다. 모든 것이 임산부의 정상적인 증상이었으나 그 정도가 하나 같이 다 너무 심했다. 아이가 밖으로 나올 조짐을 보였다. 아이의 머리통은 뜻밖에도 몹시 작아서 쉽게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몸뚱아리가 너무 비대해서 쉽게 나오질 않았다. 의사는 적잖이 당황하는 척했으며 아내는 전대미문의 섬뜩한 비명을 지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열흘 동안 그렇게 신음한 끝에 의사는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결정, 이미 나와 버린 아이의 머리를 다시 아내의 자궁 속으로 집어넣은 뒤, 실상 기절을 하여 마취 상태나 다름없는 아내의 몸을 마취시키고 배를 갈라 아이를 꺼냈다. 이로써 제 어미의 자궁을 찢고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하지만 아이는 젖을 빠는 게 아니라, 어미의 젖꼭지를 깨물다못해 잘근잘근 씹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나도록 만들었다. 분유를 먹여 봤으나 고무 젖꼭지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먹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아이는 쇠약해지는커녕 나날이 비대해져 갔다. 아이의 불가사의한 성장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어미로서의 슬픔도 영 없진 않고 해서 몸져 눕고 말았다. 아내가 잠깐 의식을 잃은 동안 아이는 몸을 뒤로 엎었다가 바로 눕고 하는 기초적인 운동을 되풀이하다가 마침 나타난 바퀴벌레를 한 손으로 잡아 입안으로 가져가더니 잘근잘근 씹은 뒤 삼켜버렸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이의 수수께끼가 풀렸으니 말이다. 나는 아비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아이를 위해서 살아 있음의 상태에 최대한 가까운 신선한 살을 준비했다. 정육점에서 사온 각종 고기, 횟집이나 열대어 가게에서 바로 사온 살아 있는 물고기 등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빨라 생후 12개월이 지났을 땐 이미 열살 정도는 되는 아이 만큼 자라나 있었고, 살이 많이 찐 개나 토끼나 고양이 같은 것을 즐겨 먹고 있었다.
그 무렵 아내는 열 두 번째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냥 죽어버렸다. 우리는 이를 응당있는 연중 행사로 받아들였으며 제가 알아서 지워져버린 미지의 아이에게 무언의 감사를 표명했다. 그 동안에도 열 한 번째 아니, 첫 번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1년 뒤 아내는 열 세 번째 아이를 가졌지만 다시 실패했다. 이후 아내는 이런 식으로 열 번의 자연 유산을 했다. 그 동안 첫 아이는 아내의 몸 속에 뿌리를 내렸다가 사라진 스무 명의 형체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거대할 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주는 신성한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아이가 알아서 제 먹이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에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아이가 너무 거대해진 것이다. 아이는 결국, 기지개를 켜느라 몸을 한 번 뻗침으로써 집을 무너뜨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해에도 주기에 맞추어 아내는 아이를 가졌고, 응당 있어야 할 일이 있었다.
6천 5백 만년 뒤 어떤 존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화석 속에 묻힌 유전자를 조작해 부활시킨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부모의 본능으로 그것이 우리의 아이임을, 불행히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태초에 제 놈이 찢어 놓은 제 어미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니 급기야 어미의 몸 전체를 찢어 놓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발기발기 찢어진 어미의 몸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커다랗게 트림을 했다. 잠시 후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너무도 흔해빠진 시나리오를 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다.

* 소설가 김연경은 소설집으로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미성년>>을 펴냈다.
(200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