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갓 파더, 마피아 이야기 | 박청호 |

구제금융 시대 한국을 떠나 태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도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위 부도를 내고 도망친 사람들이다. 갑도 그 당시 태국으로 갔었다. 그러나 도피가 아니라 우연히 생긴 티켓 때문이었다. 일본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왔다가 동행이 급히 귀국하는 바람에 티켓이 한 장 남았다며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태국의 뒷골목 구경이 아주 그만이라는 유혹에 갑은 흥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갑은 사실 인도엔 여러 차례 갔었다. 잡지사에서 부탁하는 원고를 쓰기 위해서였다. 몇 번 인도에 들락거렸더니 이젠 인도통이 되었다. 하지만 동남아는 처음이었다. 태국 그리고 방콕. 태양의 나라와 환락의 도시를 구경한다는 생각에 지루한 줄을 몰랐다. 비행기 안에서는 식사가 두 번이나 제공되었다.
드디어 방콕에 닿았다. 밤 11시, 갑은 곧바로 호텔로 들어가려는 친구를 졸라 방콕의 야경을 구경하자며 기어이 거리로 나왔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트럭을 개조한 택시에 타고 유흥가 한복판에서 내렸다. 화끈한 라이브 쇼를 제일 먼저 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곳에 가자는 말은 못하고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 녀석이 문을 연 술집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십년 만에 만난 동창은 이러저러한 사업을 전전하다 결국 술집을 냈다고 했다. 한 때는 주먹깨나 쓰는 녀석이었다.
술이 조금 올랐을까, 갑자기 이상한 놈들이 쳐들어왔다. 알루미늄 야구 배트를 하나씩 들고 다짜고짜로 술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깨진 술병이 날아다니고 테이블과 의자가 박살나서 바닥을 뒹굴었다. 갑은 친구들과 계속 술을 마셨다. 술 마실 때는 주위 눈치 보지 않는다는 게 갑을 비롯한 친구들의 철칙이었다. 놈들은 부술대로 다 부숴 놓고는 씩씩대며 숨을 골랐다. 손님들은 혼비백산 다 도망치고, 남은 사람이라곤 갑과 술집 주인 오, 일본에서 온 한뿐이었다.
갑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봐, 영어할 줄 아는 놈 있어?”
그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니 두목을 데리고 내일 다시 와.”
갑이 세게 나가자 놈들은 엉거주춤 물러났다.
다음날 두목이란 녀석이 나타났다. 덩치가 산만한 놈이었다. 갑은 다짜고짜로 소리를 질렀다.
“너 말고 진짜 데리고 와!”
그 다음날 진짜 두목이 나타났다. 작달막한 키에 야윈 몸, 매서운 눈초리의 사내였다.
“우린 한국에서 왔다. 돈은 좀 있지만 너희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모든 걸 정리해서 떠나겠다. 우리 사업이 좀더 커질 때까지는 애들을 보내 씨끄럽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갑이 으름장을 놓았다.
두목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너 영화에 출연할래. 내가 영화 사업에 손을 댔는데 지금 찍고 있는 갱 영화에 한국 조직 보스 자리가 갑자기 펑크 났거든. 어때 생각 있나? 그럼 우리도 여기서 손 떼지.”
“우화하하하.”
갑의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야, 갑. 저 친구들 진짜 영화 하는 놈들 맞나봐. 어떻게 범죄형 얼굴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냐.”
갑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이봐, 난 진짜 보스야. 연기는 배우들이나 하는 거지. 나더러 실연을 하라면 날 잡아잡수 하는 꼴이잖아.”
그래서 갑은 졸지에 프리랜서 작가에서 조직의 보스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생긴 것은 며칠 뒤였다. 첫날 대면에서 통역을 맡았던 영어를 잘 하는 녀석이 찾아와 사업을 같이 하자며 들러붙었다.
“태국엔 한국에서 사고 치고 도피해온 부자들이 아주 많다. 당신은 한국 경찰이 되고 난 인터폴 소속 태국 경찰이 된다. 부자들을 잡아다가 족쳐서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다. 돈을 뜯으면 반반씩 나누자. 10억이면 5억씩 벌 수 있다.”
갑은 짜증이 머리 끝까지 났다. 갑은, 돈은 좋아하지만 귀찮은 걸 아주 싫어했다. 인도에서도 길에서 유물을 발견했을 때 그저 주워오기만 하면 수억을 벌 수 있는데도 한국까지 가져오는 게 귀찮아서 그만 두었었다. 그런데 사람을 잡아다가 족치자니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이봐. 이 사업 아이템 니네 두목도 아냐?”
갑이 담배를 눌러 끄며 물었다.
“아니다. 알면 난 맞아 죽는다. 사업 결정은 오직 보스만 할 수 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이런 일을 한다는 걸 우리 아버지가 알면 난 맞아 죽어.”
“아버지?”
태국 마피아는 물러갔다. 아마도 그 마피아 똘마니는 할리우드 영화 <갓 파더(God Father)>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한테 맞아 죽는다는 말에 혼비백산 달아난 걸 보면 말이다. 역시 아버지는 위대한 존재 아닌가.

* 시인으로 출발하여 소설가로 더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박청호는 시집으로 <<치명적인 것들>>, 소설집·장편소설로 <<단 한 편의 연애 소설>>,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 <<소년, 소녀를 만나다>> 등을 펴냈다.
(200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