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 질 무렵 |심재상|

– 에릭 사티를 위하여
빠리 남쪽 외곽 라 쁠라스 역에서 그닥 멀지 않은 꼬쉬 가(街). 프랑스 공산당의 영원한 텃밭 한복판, 달려오는 2차선 도로를 둘로 쪼개내면서 쐐기처럼 박혀있는 삼각형의 5층집. 지금은 아랍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 건물 2층에서 사티는 1898년부터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그 스물 일곱해 동안 입 무거운 그 사나이의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쿵쾅대는 옛 도시의 심장을 가로질러
저녁마다 나는 걷는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소란한 까페 너머
낯익은 술꾼들 자욱한 담배연기 너머
보드빌 너머 싱코페이션 너머
다시 옛 도시의 허파를 가로질러
나 혼자 걸어올 허정(虛靜)한 새벽 너머

천천히 떠오르는 빈 방 하나
푸른 달 하나

언제나 닫혀 있는 덧창 뒤에서 그는 몇 개의 음들이 띄엄띄엄 벙글었다 이우는 짧은 피아노곡들을 썼다. 이따금 해 질 무렵에 그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은 흡반처럼 자신들을 빨아들이는 느리디 느린 종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일요일 오후면 세상끝에서 걸어온 듯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 집 앞에 떠 있다. 천천히 이우는 햇살, 들리지 않는 종소리에 취해 아득한 포즈로 사진들을 찍는다.

* 관동대학 불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시인 심재상은 시집 <<누군가 그의 잠을 빌려>>를 펴냈다.
(200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