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흰 광목빛 |나희덕|

먼 길 가는 모양이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늘 아래
어떤 부부가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다
조금은 엉거주춤하게 떨어져 선 두 사람은
목도리가 같아서인지 한눈에 부부 같다
지아비가 한 손을 올린 채 앞으로 나와 있고
지어미는 조금 뒤에서 웃고 있다
시골버스의 유일한 승객인 나는
그 부부를 발견하고 내심 반가웠지만
운전기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나치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늘 거기 서 있으면서도
한 번도 탄 적이 없었다는 듯이
아아, 버스로는 이를 수 없는 먼 길을 가는 모양이다
그 부부는 이미 오랜 길을 걸어 거기 당도했을 것이고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갈하게 풀을 먹인 광목 목도리는
누가 둘러주고 간 것일까
목도리에 땀을 닦고 있을 그들을 뒤돌아보니
미륵 한 쌍이 석양 속으로 사라져간다
두 개의 점, 흰 광목빛

* 나희덕 시인은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등을 펴냈다.
(20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