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떤 몬순은 |임후성|

불꺼진 시중 은행의 모조 대리석 계단에 음각된
엉켜붙은 미끈한 남녀의 살덩이가 눈을 찌른다
이 밤이 측은하고 축생 같다, 이 밤이 술렁거릴 때
그들은 버려진 편안함을 느낀다, 여자는 너무 오래 참아왔다
비틀거리는 머리로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든다, 여자는 팔목을 붙잡고
어쩔줄 모른다, 이 밤을 못 본다, 초록 잎새들
손끝에서 검은 물이 뚝뚝 듣고 거리의 지붕 아래
습한 밤 속으로 퍼져나갈 때 여자는 못 본다, 바람벽이 흉흉하게 따라 걷는다
바람벽에서 생명이 보인다, 사람의 벗은 몸
밤이 운다, 이 밤이 너무 잘 보여서, 이 밤이 우는 것 같다
여자는 먹혀들어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가로수의 버팀목 하나가 부서져서
발목에 걸린다, 여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이 여자, 오늘 밤을 못 본다
이 검은 밤을, 이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또한 밤은 여자를
전부 삼키지 않는다, 퍼덕거리는 팔다리가 진정을 못 찾고 제멋대로 군다
젖꼭지 끝이 스치자 아예 옆구리에 붙어 비비기 시작한다
여자는 반드시 죽어가고 있다, 이 여자 별안간 숨을 쉬지 않는다
검은 바닥이 여자를 빨아들인다, 팔목을 붙잡고서
여자는 고꾸라지면서 헉헉거린다, 이봐 이봐, 한번 생각해 봤어
대로변 옆구리쪽으로 검은 골목들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여자는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 밤을 빨리 지나고 싶은데
뜨거운 입 속의 하얀 치아, 뜨거운 입 속의 하얀 치아 이 밤을 못 본다

* 몬순(monsoon) – 계절풍

* 임후성 시인은 시집 <<그런 의미에서>>를 펴냈다.
(2000.8.14)